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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일(排日)보다 극일(克日)이 더 시급하다

하림산책 - 박하림(수필가 / 전 (주)휴비츠 고문)
지금 한일 간의 첨예한 대립양상의 상황에서 배일이 아닌 극일을 하자고 한다는 게 그다지 시의적절한 것 같지 않아 보일지 모른다. 그러함에도 그런 제안을 호소하는 것은 그게 상생을 위한 최선이기 때문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제관계는 평화공존이 최선이고 공동번영이 이상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데 지금 한일 양국은 무얼 위해 우방이라는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면서까지 감정대립을 계속하고 이제는 물리적인 손해를 입히는 실력행사를 하기에 이르렀는지 그 숨긴 의도가 자못 궁금하다.

 과거의 쓰라린 양국관계사를 굳이 상기하자 들춰낼 의도는 없으나 지금 꼬일 대로 꼬인 한일관계를 이해하고 푸는 데는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야욕을 어떻게 드러냈었든가 그 전력이 세상에 잘 알려져 있다.

16세기 임진왜란으로 한반도를 침략해 7년간의 전란을 통해 한반도를 사정없이 약탈하고 유린했다. 조선은 노동력을 잃고 사회제도가 무너졌으니 전화복구에 무려 한 세기나 걸리는 실로 전대미문의 참담한 대가를 치러야했다.

그럼에도 억울한 병과에 대한 그 어떤 단죄를 하거나 배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일본은 남의 나라를 침략해 비극적인 불행을 안긴 범죄인답지 않게 뻔뻔하게 큰소리치며 물러났고 조선은 저들의 만행을 제대로 규탄하지 못하고 명나라의 종전 주선을그저 감지덕지해서 숨을 죽였을 뿐이었다.

 그러한 참변과 수치를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 조선 조정이 국방의 힘을 갖추지 못한 비극은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면서 재연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장장 4백 년이나 흘렀는데 조선의 무지몽매한 시대의식이나 거안사위居安思危하지 못하는 국방은 일본의 야욕을 한반도로 향하게 했다.

일본은 기세등등한 전승국의 위세로 조선조정을 겁박하여 이미 뇌물과 출세보장의 미끼로 회유한 중신들을 앞세워 한일의정서라는 외교문서를 만들었으니 국제외교에 무지한 조선은 어정쩡하게 동의하고 말았다.

그리고 일본이 암계로 짜 놓은 대로 이어 조선을 병탄하는 을사늑약을 반강제로 체결하게 하였으니 조선이 국권을 잃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 식민지 종살이가 그 후로 36년간이나 계속되었으며 그로써 한일은 원수지간이 되었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한일은 광복 후 70여 년간을 과거의 원한을 씻고 우방국으로 지내왔다.

그간의 무역거래나 인문교류, 국제관계의 협조 등이 6.25 한국전쟁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한국의 경제부흥에 일조를 단단히 하였다.

그렇다고 한국국민이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굶주리다 못해 인육을 먹고, 순결한 딸자식을 위안부로 빼앗기고 36년간 식민종살이에 이름마저 보존하기 어려울 정도로 문물을 약탈당하고 말살 당한 원한을 잊은 것도 용서한 것도 아니었다.

한일 양국은 그 어떤 원한풀이도 한 적이 없다. 두 차례 사과를 했으나 많은 한국인들이 미흡하게 여긴다.

그러고도 일본은 여전히 온갖 구차스러운 정치성 발언이나 후안무치한 외교수사로 우리를 개탄하게 만들고 한 술 더 떠서 독도는 일본 땅이니 한국국민의 분노를 격발시키고 있다. 그리고 계획한 듯이 이제는 실력행사를 하겠단다.

 대일관계에 있어 한국은 늘 서툴다. 그 역사적 배경이 복잡하고 그 현실적 원인이 미묘하지만 분명한 우리의 약점은 우리가 저들을 능가하는 국력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국제관계란 하나에서 열까지 힘 위주임이 진실이다.

우린 극일에 있어 저들이 전후 부흥하는 일에 저들이 한만큼 우리는 절치부심하지 못했다.

그런 민족자존자립 정신의 함양에 있어서는 북한은 한국국민이 아니라 공산주의 이념의 시녀였다. 그러므로 우린 사실상 감정적으로 배일은 했어도 실익을 지양하는 극일에는 무계획했다.

그러는 사이 일본이 얼마나 강대국으로 발전했던가를 알아야한다.

일본의 현재 국력은 미국과 대등하게 견줄 정도로 초강국이다.

우선 경제적 지위에서 일본은 세계 제일이다. 일본은 세계 제일의 채권국이다. 일본한테 빚진 나라가 외교적으로 친일적임은 상식이다.

특허출원도 1위이니 창조성에서도 제일이다. 제품신뢰도가 제일이므로 제조업기반이 가장 튼튼한 것이다.

무엇보다 미래의 일본의 국력이 어떻게 변할까를 짐작함에 있어 일본이 뛰어남은 일본이 노벨상 수상에 있어 세계2위라는 사실이다.

우린 더러운 소문이 난무한 평화상만 한 개를 수상했을 뿐으로 문리화학상을 일본의 경우 교토대학 한 곳에서만도 8개나 받은 실력을 감안컨대 장차 어떻게 경쟁해서 이길 건가 아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촌스럽고도 시대사조에 걸맞지 않게 일본을 배척하는 건 현명치 못한 객기다.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여겨 공연히 비하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런 유의 외교적 무지나, 어느 대통령이 일본의 하는 짓이 못마땅한 나머지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유치한 폭언을 했다가 개망신을 당한 것 같은 인식부족은 버려야 한다.
 
이쯤해서 우린 냉정하고 긍정적인 마인드에서 자문해봐야 한다. 엄연한 사실이고 분격함이 마땅하다 해서 우리가 배일감정에 매몰돼 일본을 적대시해서 한일관계를 끌고 간다면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 건가를 말이다.
 
아주 냉철하게 손익계산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게 외교의 실익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반일감정을 순화시켜 합리적인 극일로 전환시켜 나간다면 우리의 득실은 무엇일까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일본을 대함에 있어 당장의 배일정서를 따라가는 게 국익인지 정서에 거슬릴지라도 국익을 위하여 우호적으로 끌고 가는 게 현명할 런지를 가름하되 우리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극일하자 결의를 다짐이 옳다.

이 시대는 이념의 편 가르기 따위는 고물이 된지 오래고 호혜적이고 평화로운 공존공영의 사회와 삶을 지향함이 이상이니 어떻게 극일 할 것인가 국론을 모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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