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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Par' 소고(小考)

최중탁 미국 골프 티칭프로(USGTF)의 재미있는 골프이야기 71

가끔 누가 라운드 갔다 와서 잘 맞았다고 자랑하면 스코아 카드를 보여 달라고 할 때가 있다.
특히 훈수 해 줬던 문화생 골퍼들이 라운드 후 돌아오면 스코어 카드와 회초리를 대령하라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카드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 스코어카드의 신빙성이 극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첫홀 올파(소위 1파 만파 또는 1보기 올파 아니면 무조건 올파) 마지막 홀 올파로 기록된 것이 눈에 띈다.
그러나 첫홀이나 마지막 홀의 해당 코스에서의 난이도(핸디캡 순번)를 살펴보면 거짓인지 아닌지 거의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스코어 조작요령도 진화되어 첫홀 또는 마지막 홀은 그대로 다 기록하고 중간의 어느 특정 홀에 올파를 적는 지능적인 수법도 있다.

그보다 더 진화된 방법은 네 사람이 각각 다른 홀에서 순번에 따라 파를 기록해 주는 묘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다른 사람이 발견해 내기가 몹시 어렵다.

이런 스코아 조작에 익숙해진 사람은 엄격한 룰이 적용되는 공인시합에 나가면 스스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약자가 되어버린다.

모든 홀에서 사실 그대로 정확히 적기 시작하면 심리적으로 긴장 초조해지고 근육이 경직되어 스윙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골프에서 속임은 정직(Honest)과 매너라는 골프 기본정신을 훼손시키고 우리의 골프문화까지 왜곡시키는 해악행위다.

스코아만 잘 나오면 훌륭한 골퍼라는 굴절된 시각으로 라운드에 임한다면 그는 정신부터 수양 후 필드로 나와야 당당하고 올바른 골퍼가 될 수 있다.
골프정신이 확립 되지 않은 골퍼는 혼이 없는 짝퉁골퍼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 오래 거주하고 있는 한 일본인 골퍼가,
"한국산 스코어카드에서 정확한 타수는 올파 두 홀 멀리간 최소한 2회를 따져서 최소 5~6타 뺀 타수가 정상 타수"라고 말해서 속으로 정말 낯뜨거웠다.

서구나 일본 등 골프 선진국에 가서 현지 골퍼들과 동반 라운드를 해보면 우리 골프문화와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으며 가끔 당황스러워진다.

룰과 매너는 기본이고 스코어카드에 대해서는 더더욱 엄격하다.
올파 올보기 이야기를 하면 의아해 하며 그것은 골프가 아니라고 웃는다.

서구에서도 우리나라 처럼 '셀프 멀리간'을 버릇처럼 하는 골퍼들도 있다.

그러나 올파 올보기는 절대 없고 스코어는 최대한 사실대로 본인이 손수 기록 한다.
스윙을 아무리 잘해도 규칙과 매너를 모르면 큰 수치이고 또 초보자 취급을 하여 가르쳐 주려고 접근해 오기 일쑤다.

이런 올파 올보기 문화가 생긴 배경은 우리나라 초창기 골프가 주로 특수층의 전유물로 여겨져서 접대와 배려 베풀기 정신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양반사회적 풍토에서 탄생했다고 본다.

골프가 부와 명예 또는 권력의 상징이었으므로 누군가를 접대하고 베풀기 위해서는 엄격한 룰 보다는 상대방이 편하게 부담 없이 칠 수 있도록 융통성과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고 여기는 데서 비롯 됐다.

스코어에 너무 집착하여 엄격히 기록하게 한다면 상놈취급 당하고 상대방에게는 큰 결례로 여겼기 때문이다.
캐디들의 룰에 어긋날 정도의 스코아 과잉서비스도 이런 의식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동방예의지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아서  라운드 중에도 예의와 아량을 룰 보다 중요시 했다. 또는 캐디가 손님에게 잘 보이고 좋은 도우미로 평가보고서를 써 줄것은 기대해서 올파 또는 올보기로 기록해주는 과잉친절까지 베풀기도 한다.

눈치없는 캐디에게는 "요즘은 첫 홀 올파로 인쇄가 된 스코어 카드가 나온다는데..."
또는 "요즘 새로 개정된 룰은 첫홀은 올파로 기록 한다로 변경되었다던데 아직 몰라? " 라며 은근히 압력을 넣기도 한다.

이는 '룰의 게임'인 골프의 본질을 훼손하고  매너와 정직이라는 골프정신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너 좋고 나 좋다며 규정에 반하여 비정직 비양심 플레이를 유도 한다면 궁극적으로는 스스로를 속여서 자신을 망가지게 하는 골프 자해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자신에게 엄격해야만 자신을 성숙 시켜서 게임능력도 향상시킬 수 있다.

골프는 그날의 운수라고도 한다.
오늘 잘 맞았지만 내일은 엉망으로 칠 수도 있다. 종이 위에 올파 올보기를 적어 놓은들 자기 실력 자기 양심이 아닌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기의 참모습을 종이 위에 그려서 그것을 바탕으로 필드에서 자신의 내일의  모습을 그리려는 자세가 현명한 골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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