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韓, 정년연장·연금개혁 미루다간 심각한 대가 치를 것"

스웨덴 군나르 안데르손 교수



"(한국이 현재의 정년제도와 국민연금에) 아무 문제가 없는 척하다가는 시간이 지나서 더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군나르 안데르손(Gunnar Andersson)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인구통계학과 교수는 지난달 26일 스톡홀름대 교수연구실에서 뉴시스 기자와 만나 이 같이 말했다.

안데르손 교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최대 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스웨덴 스톡홀름대에서 인구통계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다. 그는 사회정책·가족학 연구기관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각종 인구통계학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 기관과 언론에 수년째 자문을 한 덕에 한국의 현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정년 연장에 관해 "한국은 정년제도에 있어서 융통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년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며

 "인구학 측면에서 기대수명을 고려해야 한다. 비스마르크에 의해 19세기에 연금제가 도입됐을 때는 67세가 기대수명이었을 때다. 지금은 85세에서 90세까지 기대수명이 올라갔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데르손 교수는 국민연금 개혁에 관해서도 융통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연금제도에 융통성을 갖는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국민연금 기여금을 더 많이 내도록 하고 그만큼 연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스웨덴에서 연금수령액은 근무경력에 따라 달라진다. 오래 일할수록 연금을 더 많이 받고 일찍 은퇴할수록 연금을 덜 받는다"며 "스웨덴 연금제도 자체에 이런 융통성이 있었기 때문에 고령화 추세에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스웨덴 연금제도는 인구학적인 측면도 고려돼 있다. 기대수명이 빠르게 올라가면 그만큼 은퇴시점과 연금수령연령이 늦춰지거나 연금을 적게 받아야 한다"며 "이런 요소들이 스웨덴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강화시켜줬다"고 설명했다.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스웨덴 특유의 문화 역시 연금제도에 기여했다.

안데르손 교수는 "지난해에도 연금 수급연령을 둘러싼 일부 조정이 있었지만 항의가 별로 없었다"며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연금 수급자들이 저항했지만 스웨덴에는 연금제도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령자나 청년이 서로를 착취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이는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 사람들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 실용적으로 접근을 한다. 관계된 이들이 모여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한다"며

 "1970년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할 때 모든 지표 측면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지자 스웨덴은 가족정책을 바꿨다. 다른 나라에서는 수십년 후에 이뤄진 일이 스웨덴에서는 이미 그 당시에 진행됐다. 1990년대에 이뤄진 연금 개혁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스웨덴의 복지제도를 한국도 구현할 수 있을까. 저부담 저복지 체계에서 고부담 고복지로 전환할 수 있는 열쇠는 복지비용 부담자와 수혜자를 전 세대와 계층으로 확대시키는 것이라는 조언이 나왔다.

안데르손 교수는 "고부담이 가능해지려면 노인뿐만 아니라 복지의 모든 영역에서 소득에 관계없이 혜택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중산층 역시 혜택을 받기 위해 복지로 인한 세금 부담을 지려고 할 것"이라며

"모든 사람이 노인돌봄이나 교육, 보건 등 모든 복지 혜택을 받는다면 기꺼이 부담을 지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고령자를 위한 시설들이 '님비현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안데르손 교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스웨덴에서는 노인보호주택을 일반주택과 최대한 비슷하게 짓고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는 "시끄럽게 하는 주민이 있다면 인근 주민이 강하게 항의하겠지만 그런 문제로 항의하는 일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노인보호주택을 지을 때도 최대한 일반적인 주택처럼 짓게 하기 때문에 이웃은 사실 잘 알 수 없다. 일반적인 주택으로 보이기 때문에 누구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데르손 교수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도 고령자가 항상 복지혜택을 누렸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고령자 복지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고 이 합의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안데르손 교수는 "스웨덴에서도 고령자가 항상 공경을 받아온 것은 아니다. 200여년 전에는 농장에서 살다가 은퇴하면 인근의 작은 오두막 같은 곳에 가서 혼자 살았다"며

 "스웨덴의 현 시스템도 고령자를 위한 천국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고령자를 배려한다는 경제적인 이유와 사회적 합의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