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경술국치가 든 달에 대법원 법정에서 전직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열렸는데 선고내용이 유별나 눈길을 끌었다.
대법관들을 배석시킨 주심재판장인 대법원장은 나약한 목소리로 항소를 파기해 2심을 한 고법으로 환송하니 다시 재판을 하되 뇌물죄를 재심함에 있어 말 세 필을 피고가 뇌물로 수수하였음을 가중시켜야 옳다고 했다.
변호인단이나 방청객들이 혹은 놀라 안색이 어두워지고 혹은 속이 앙앙불락 하여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고법의 재심을 지시하는 것은 법리상 해석이나 형량의 부과에 무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상고와 재심이라는 절차는 상하 급 법원이 피소된 피의자에게 내릴 형량이 공정하게 매겨지도록 설치한 장치일 것이다. 따라서 항소와 원심파기 환송재심이라는 절차의 되풀이는 어디까지나 피소 인이 억울하지 않게 운용돼야 옳을 것이다.
아뿔싸, 이게 어찌된 대법원의 가혹한 불호령인가?!
고법의 뇌물죄에 대한 판단이 미흡하니 말 세 필, 구입가 기준 34억 원의 뇌물수수 액을 추가시켜 판결을 다시 하도록 파기 환송한 것이다.
고법이 재심을 할 경우 법률가들의 이구동성인즉슨 형량이 가중될 공산이 다분한데 무엇보다도 최고형을 맞을 경우 대통령의 사면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우려였다.
일국의 대통령이 국정을 농단했다 탄핵을 그것도 촛불을 들고 시위에 나선 시민들의 지지를 앞세워 성사시킨 맥락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정중한 배려는 고사하고 치욕스럽게도 말 세 필의 수수뇌물이 빠졌으니 재판을 다시 하라 하다니, 대체 고법에서는 그 정도의 세심함도 챙기지 못한단 것인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형량을 높여 선고해서 몇 년을 더 바깥세상을 볼 수 없게 만들겠다는 저의를 형법 129조에다 외견상 합당하게 숨기고 장차 제기될 재판의 부당함을 일단 고법 재심에 떠넘기려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대관절 말 세 필의 뇌물성 여부와 그 비중이 이토록 심각한 이유가 나변에 있는 것인가 답답하다.
필자는 법을 공부한 적이 없으며 따라서 전문가적 법률지식이 부족한터이나 법이 공정하게 집행돼 당사자들에게 억울함이 없어야 된다는 법 정신의 기본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유죄 여부나 형량을 매김에 따르는 다툼에 있어 그 어떤 무리나 불합리함이나 유무형의 억압도 개입해 작용함으로써 관계자의 판단에 잘못된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저 파기 환송한 재판만 해도 다툼의 여지가 다분하며, 항간에 고조되고 있는 국민들의 대법원의 판결에 의아해하는 눈총이 매우 따갑다. 정당한 다툼의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말 세 필을 뇌물로 추가시켜야 한다는 대법원의 단정에 무리가 있다는 중론이다.
그게 뇌물이 되려면 특정 직무행위(일테면 삼성 이 부회장이 어떤 청탁을 해서 대통령이 직권을 행사하는)에 대한 대가의 정도가 뇌물성이 분명할 경우이어야 하는데 말 세 마리를 지원하도록 종용한 사실 이외는 그 어떤 뇌물의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수수한 뇌물은 실체가 수수한 사람에게 소유된 사실이 증명돼야 하는데 그 말의 경우 뇌물조가 아니라 종용에 의한 국가적 지원계획에 호응한 희사 이었다는 주장을 무시할 반증이 없다.
피의자들 모두가 직권을 이용한 뇌물의 수수라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검찰의 예단에 의한 뇌물 단정이 무리였기 때문이다.
잠깐 상식사회로 가서, 사회에 흔하게 일어나는 ‘주고받는 문화와 윤리’를 보자. 거기에는 사법부가 신주 모시듯 하는 성문법 외에 거래상이나 관계에 있어 성문법의 합리(合理)보다 훨씬 가치 있고 무난하게 통용되며 사람들이 즐겨 준수하고 사용하는
도리, 양심, 질서, 인정, 경우 같은 불문율이 있는데 그걸 모두 아우르는 이치를 화리(和理)라고 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합리라는 소승(小乘: 작은 수레)이라면 화리는 모두의 화합을 도모하는 대승(大乘: 큰 수레)으로 보다 큰 의와 명분과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오죽 못났으면 쩨쩨하게 말 세 필에 뇌물이라는 불명예를 자청했을 것인가? 혹시 좋은 일을 하자는 의도에서 한 일이 직권의 남용의 결과가 된 건 아닌지?
형법129조의 뇌물죄성립요건은 세 가지가 사실임을 입증해야만 된다.
그건 뇌물을 받으려는 의사를 나타내는 요구나, 작정하고 뇌물을 받겠다고 청구하는 청탁과, 받는 것이 뇌물임을 알고 받는 수수 세 가지 요건이 입증돼야 한다.
그런데 그 세 가지 요건이 모두 시인되었거나 입증된 게 아니잖은가.
그렇다면 대통령 직권을 이용하여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게 아니라 이미 한국동계스포츠센터(영재센터)에 지원을 하고 있는 맥락에서 말을 희사하게 한 것이라는 주장이 더 타당하다.
19세기 펜화의 대가인 외젠 들라크루안 작품에 <산에서 사자의 공격을 받는 세 마리 말>이라는 괴이한 펜 그림이 있다.
산에 살지 않는 사자와 말을 굳이 산에다 몰아넣고 말들이 사자의 공격에 필사의 저항을 하는 사투장면을 펜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걸 잠시 바라보노라니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오며 눈시울이 젖어왔다. 교도소라는 산에 갇힌 전직대통령이 딱 말의 신세로 뇌물수수라는 엉뚱한 사자한테 공격을 받아 살려고 발버둥치는 참경이 가슴 아픈 것이다.
말 들은 공포로 갈기가 올올이 곤두서고 절박한 눈망울은 두려움으로 희번덕거리고 입은 신음과 절규하는 소리를 피 토하듯 내지르며 앞 다리는 속수무책의 허공에다 애처롭게 버둥거린다.
그야말로 처절한 생지옥이다.
한데 어쩌다가 부모를 흉탄에 여의고 일신의 행복한 삶을 포기한 채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나섰다가 억울하게도 국정농단이라는 탄핵으로 큰 죄인이 되더니 이제 와서는 수치스럽게도 뇌물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기어코 뇌물이라는 사자를 시켜 탄핵이라는 숲속에 갇힌 말의 신세를 물어뜯으라는 것이다. 기어코 비정한 끝장을 보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는 부끄럽게도 정녕 저 식으로 백년하청 하자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