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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지에서의 가을을 맞으며...

두레박 - 반윤희(본사 객원기자 / 수필가 / 화가)
그렇게 태울 듯 하 던 폭염도 세월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어느 사이 풀벌레 소리에 잠이 깨어나서 만상의 생각들이 흐른다.

예전 갖지 않게 가만히 있으면 잡념이 생기고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 세월이기는 장사가 없다더니 내가 지금 딱 그렇다.

오늘도 새벽에 깨고 말았다.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시간이 촉박해졌다. ITX를 타고 인사동으로 달려갔다. 일찌감치 도착한 노익장의 화백님들의 열정과 열심인 것을 보면 농땡이를 칠 수가 없다.

가평 상면 봉수리의 사생지에서 이곳저곳 찾아다니다가 큰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마를 지나자, 다리에 모기떼가 달라붙어 자꾸만 물어댄다. 손바닥으로  떼려도 자꾸만 달려들어서 소용이 없다.

그런데 나무 위에서 무슨 새인지 짝을 찾는 유혹의 소리가 듣기가 좋지 않다.
새들도 요즘 짝을 찾기가 쉽지가 않은 가!

무슨 새소리가 숨넘어갈 듯 껄~얼~껄, 히~이~헉~헉하다가 멈췄다가, 또 울어 되고 도대체 신경질이 나서 훠이 훠이 소리를 질러도 소용이 없다.

와~아 새소리가 이렇게 스트레스로 다가올 줄 몰랐다. 새소리라고 다 좋은 게 아니다. 문득 요상한 생각이 든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점잖지 못하게 짖어대고 나부대면 듣기 싫고, 꼴불견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잡생각이 들어서 그림 그리기가 제대로 되지를 않는다.
그림조차도 어두워지고 뭉개지고 있다. 대충 그려놓고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 놓고, 올라가다니까 가게 집 어린아이가 내 손을 잡고 할머니 신기한 것 보여 줄까요 하면서 끌고 간다.

무엇인데 하였더니, 타고 노는 자전거에 가더니 자전거에 달린 방울을 눌리면서 신기하지 않느냐면서 천진하게 웃는다. 여아가 할머니 고기 줄까 요 하면서 가게 안으로 데리고 간다.

재무님이 푸짐하게 삶은 고기와 반찬들을 차리고 있다. 아이가 또 그네를 타자고 한다. 가게 구석 쪽에 그네가 있다. 데려다 놓고는 또 다른 곳으로 이리저리 다니면서 말을 거는 아이가 예쁘다. 굉장히 반죽이 좋은 아이 같다.

문득 내 어린 날의 추억들이 오버 랩 되어서 돌아간다. 길고 긴 세월이 지나갔다.

어느 사이 종심의 중반인 붉은 노을 속에 서서,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의 어린 날을 떠 올린다.
조갑지 같은 손으로 꼬물거리며 그림을 그리던 내 손은, 이제 이리저리 밀리는 쭈글거리는 노파의 손등이 되었다.

마음만은 아직도 저 아이와 같은데 세월은 무심하게도 노을 속으로 데려 오고 말았다.

그네를 타라며, 아이가 또 다른 동료 화가를 데리고 왔다. 그림쟁이 세 여인은 아이가 시키는 대로 아이처럼 그네에 몸을 싣고 세월을 거스르고 하하 호호 건들거리면서 그네를 마구 흔들며 타고 놀았다.

노을 속의 환상을 그리며 박장대소를 하면서 아이가 되어서 주위의 동료 화가들에게 웃음을 날려 보냈다.

◆ 작가소개

한국문인협회 회원(전 남북 문학교류 위원)
국제 팬클럽 회원 / 현대 사생회 회원

시조사 출판 100주년 기념, 작품 공모전 최우수상(논픽션)
동서커피 문학상 수필 심사위원
2019 제2회 K-SKAF 아트페어 추천작가 전시(예술의 전당) 

수필집: 타이밍을 못 맞추는 여자. 맨드라미 연가. 소망의 황금마차. 내 인생의 앙상블(詩畵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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