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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세력 포노 사피엔스

하림산책 - 박하림(수필가 / 전 (주)휴비츠 고문)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전자정보혁명 등 과학기술에 의한 변혁이 거대한 제3의 물결로 닥칠 것이라 예언한 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다른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예언에 담긴 분류에 의하면 그건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이행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그러한 변혁의 물결을 제일 먼저 타고 신천지 장르라도 탐험하려는 듯이 <포노 사피엔스>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에 이어 제3의 산업혁명의 산물로 스마트폰 신인류가 탄생한 것이다.

아직은 그 변화의 물결이 우리 사회나생활에 얼마나 다양하고 심각하게 영향을 미칠 지가 의문이지만 그 풍미허는 기세가 자못 거세다는 현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스마트폰의 생산과 소비 두 가지에서 세계적으로 일등이고 선도적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저 포노 사피엔스의 패러다임이나 의식. 생활문화, 행태, 덕목 등이 어떻게 변화할 건지가 너무나 중요하다.

신세기의 총아는 뭐니 뭐니 해도 이른바 스마트 폰으로 우리 일상생활에서 그 역할이 너무나 다양하고 긴요해서 그것 없이는 살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것 가지고 하는 일이 교신, 정보검색, 뉴스청취, 음악 감상, 장보기, 은행거래, 온라인 강의, 녹화 녹음, 위치추적, 사람 찾기, 상식 멘토링, 사진촬영, 선물보내기 등 수없이 많다.

더구나 스마트 폰의 사용자나 지배자가 젊은이들이라는 게 폰 제네레이션 (폰세대)라 불리기에 무리가 없다. 해서 <포노 사피엔스 Phono Sapiens>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그 용어는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데우스와 같은 속의 개념으로 이 시대상을 대변하는 총아다.

우리는 그 분신 같기도 하고 애물단지 같기도 한 전화기의 주인임에 틀림이 없으면서 때로는 노예요 종처럼 그것의 부림을 받으며 산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포노 세대의 생활철학이나 사고방식, 인간관계와 가치관 등은 다르고 바뀌어야한다.

새로운 표준의 인간이 등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포노 사피엔스는 스마트폰, 유투브, 인터넷, 모바일 거래, 페이스 북, 아마존 등 신세기 의 신 개척 세계(장르 시장)의 지배자로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방송, 유통, 은행거래, 교육, 교통수단 등 일상에서 새로운 문명을 심고 바꾼다. 세계 지배자의 판도가 포노 사피엔스의 등장으로 바뀌어  거인 거래자로 통하게 되었다.

저런 추세라면 포노 사피엔스가 미래의 스마트한 다수로 시장은 물론 사회, 가정까지 장악하는 신흥 지배자로 군림할 것이 분명하다.

모든 대화, 정보와 자료관리, 명령과 지시, 오락, 모든 거래가 저들 방식으로 가능할 것이므로 포노 형 신 윤리, 질서, 기준, 방식, 가치 등이 제시될 것이다. 어쩌면 신구 질서 간의 갈등과 충돌로 인한 대혼란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문화의 충돌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예컨대 조상제사의 변모를 보자, 한 가문의 종손 된 자식이 제 자식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제사를 여행 노정 중간에 머물 콘도에서 지낼 셈으로 제사상차림 전문 업체에다 주문을 넣었다.

그 가족이 콘도에 도착한 날 어김없이 제사상은 차려졌고 30분도 걸리지 않아 제사가 끝났다. 제주는 가슴속 짐을 덜었고 가족은 편리한 제사에 감탄하며 새삼 돈의 위력과 스마트폰의 편의성에 반했다.

그들은 이미 스마트폰의 맹신도가 된 것이다. 저들한테 어떤 유교적 윤리관이나 가정에서 통했던 도리 같은 가치관은 힘을 잃었다. 저들 가장의 가슴엔 주저하며 받아들인 새 제사방식이 낯선 만큼 편해서 편의만을 좇아 제사를 함부로 바꾼 죄책감을 툭탁쳤다.

그 은근히 매력 있는 폰은 현대판 알라딘의 램프이고, 폰의 편리성은 램프의 신인  마신이다.

그 마법의 신을 손가락 까딱(클릭)으로 원하는 대로 부릴 수가 있다니 꿈만 싶은 신분상승과 짜릿한 능력발휘에 살맛이 나는 것이다. 누가 감히 그러한 대세를 막아설 거며 그 마법에 가까운 능력의 허위성을 지적할 수 있는가 .

아, 그러나 그 폰은 의존도라는 매우 무서운 독을 품고 있다. 의롭고 정결한 영혼이지만 경험이 없어 다치기 쉬운 청춘이 그것을 의지가지로 삼으면 삼을수록 그 독에 중독돼 모든 정상을 잃고 무기력해진다.

폰 맨(Phonman)은 한 손에 샌드위치를 들고 다른 손으로 마우스를 쥐고 눈은 화면을 응시한 채 입을 놀려 샌드위치를 먹으며 몇 시간 째 게임을 즐기고 있다. 그러는 사이 광복절도, 아버지 생일도, 음주운전 조사차 출두일도, 병원예약일도 다 잊혀 지나갔다.

그런 폰 맨은 비온 뒤 죽순 자라듯 빠르게 늘고 머잖아 그들이 주도하는 세상이 올 거라는 예언자들 예언이 왜자하다.

정녕 이번 세기는 ‘클릭만사형통시대’인가. 설마하니 얼굴은 백랍에다 팔다리는 가늘게 길고 머리통만 큰 기형인간이 포노 사피엔스의 정형인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니겠지 애써 부인해본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는 우리의 변화를 강요한다. 깊은 사유를 싫어하고 엄숙한 도리를 성가셔하며 눈물어린 기도를 귀찮아하는 신 인간의 등장은 불가피하다.

지식은 검색창에서 언제나 척척박사로 뜨고 입맛 따라 메뉴를 정해 전화주문하면 총알처럼 배달한다.  만 리 밖 애인도 옆에 앉히듯 대화방으로 불러 최근 안부를 듣고 담소할 수 있으며 지시만 내리면 목적지까지 착오 없이 안내한다.

산다는 게 이 정도가 되면 폰 맨으로 사는 게 점점 자연스러워져서 더욱 충실한 폰 맨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런 개인의 변화가 당장은 외부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지 않아 가정과 사회의 정상이 병들고 있음을 알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그런 폰 맨은 비온 뒤 죽순 자라듯 빠르게 늘고 머잖아 그들이 주도하는 세상이 올 거라는 예언자들 예언이 왜자하다.

정녕 이번 세기는 ‘클릭만사형통시대’인가. 설마 얼굴은 백랍에다 팔다리는 가늘게 길고 머리통만 큰 기형인간이 포노 사피엔스의 정형인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니겠지 애써 부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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