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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무역의 날 ‘수출의 탑’ 표창을 받은 필자. |
대학 졸업후 20년 가까이 금융계통에서 월급쟁이를 하다가 건축자재 관련 사업으로 외도(外道)를 했다. 당시 일본에서 아파트 욕실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조립식 욕실(Unit Bath Room)이 향후 한국에서도 전망이 좋을 것으로 판단하고 그 U.B.R.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본기술을 (주)럭키에서 도입하였고 우리는 럭키의 OEM생산 협력업체로 합류한 것이다.
어느해 럭키의 부서장과 협력업체 대표 5명이 U.B.R의 원천기술을 가진 기업인 일본 닛보리사로 산업시찰을 하게 되었다. 당시 일본측 안내자는 공장장인 이또 쇼지(伊藤正二) 이사였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IMF를 지나면서 럭키의 경영방식이 바뀌면서 우리도 럭키와 거래를 청산하고 독자 생존의 길을 찾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한화그룹이 중개하는 시스템으로 일본에 간접 중개 수출을 택하게 되었다.
2008년 6월 서울에서 광우병 촛불시위가 요란했던 시기에 우리 회사 천안공장을 일본인 바이어 3명이 방문했다.
수년간 한화를 통해 우리 회사 제품을 수입해 가는 일본회사 자재 책임자가 품질 검사와 시설점검을 위해 무역담당자 2명을 대동하고 찾아온 것이다.
그 때 나는 부재중이었는데 일본 바이어 중 이또 쇼지 이사가 회사 사무실에 걸린 내 이름과 사진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직원들에게 사장이 노상(盧樣) 이냐고 물었다.
20년 전 자기들 공장에서 나와 처음 만난 사연을 이야기 하면서 나를 꼭 만나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몇 달 후 이또 쇼지 이사와 요시모또(吉本明義)사장이 우리 회사를 다시 방문한다고 하여 공장으로 내려가 그분들을 영접했다. 일본의 대기업 사장이 우리 회사를 방문한다는 것이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일본 닛뽀리사 일행을 만나는 순간 나와 이또 쇼지 이사는 서로 얼굴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전에 업무를 끝내고 점심을 서해안 삽교호 근처 장어집으로 안내했다. 식사를 하면서 이또 씨는 20년전 이야기를 여러 사람 앞에서 다시 늘어 놓는다.
내가 서울대학교 출신이란 말도 강조를 하면서 그 당시 (주)럭키 협력사 산업시찰단 일원으로 자기들 공장을 방문하였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 당시 내가 복도에 떨어진 휴지조각을 슬그머니 주어 멀리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고 한다. 그 장면을 보고 공장관리 책임자인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들 수 없었노라고 회상했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전혀 기억도 생각도 나지 않는 일이었는데 그는 20년이 지난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으며 지금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 작은 일 하나가 일본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지만 훗날 우리 회사와 유대를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회사 사장과 함께 우리 공장을 방문하고 나서부터 그 회사는 대기업을 통해 간접으로 수입하던 방식을 우리와 직거래로 바꾸고, 품목도 확대하여 매월 균일하게 수출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공장 관리 시스템과 나를 믿고 대기업에 연대책임을 지우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신뢰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 결과로 2013년 무역의 날에 단일 품목, 단일 거래처 실적으로 작은 ‘수출의 탑’을 표창 받게 되었고, 우리는 20년 넘게 계속적인 고정 오더로 매출의 20%를 확보함으로 안전적인 경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도 대일 외교문제가 뒤숭숭하여 염려했지만 전혀 관계없이 올해도 12월 선적분 까지 오더를 보내주고 있는 상태다.
20년 전 어떻게 보면 사소한 행동에 불과한 ‘휴지 한 조각’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회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