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30일 장기요양 보험료율을 사상 첫 10%대로 인상했지만, 당기수지는 내년에도 95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당장 내년 연말이면 누적 적립금은 15일분만 남겨둘 수 있게 된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등 감염병에 따른 급격한 의료비 지출에 대비해야 하는 건강보험과 달리 장기요양보험 재정은 1개월분만 있어도 문제가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급격한 고령화 등을 고려하면 장기요양 재정에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기요양위원회는 2020년도 장기요양보험료율을 10.25%로 결정했다. 2008년 7월 제도 시행 이후 사상 첫 10%대 보험료율이다.
그러나 장기요양 재정은 내년에도 당기수지 95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이대로라면 2020년 말 누적수지는 6073억원으로 연간 지출액의 15일분 수준밖에 남지 않는다. 18일치(0.6개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6168억원이 남을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보다 상황이 악화되는 것이다.
이 같은 재정적자는 고령화에 따른 수급자 급증과 지출 증가가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제도 도입 당시 21만4000명이었던 수급자는 지난해 67만1000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8월 기준 장기요양 등급 인정자 수는 73만5690명으로 전체 노인인구(781만명)의 9.3% 수준에 달하고 있다.
고령이나 치매 등 노인성 질병으로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지출액도 2008년 5731억원에서 매년 급증해 지난해 6조6758억원으로 10년 만에 11.6배 뛰었다. 여기에 지난해 8월 본인부담 감경 대상 확대 등 수급자와 혜택이 늘면서 올 연말이면 지출규모가 8조2374억원으로 1년 만에 1조5616억원 늘어날 전망이다.
보험료를 인상해야 할 시기도 놓쳤다.
현재룡 국민건강보험공단 요양기획실장은 "재정이 나빠진 건 보험료를 올려야 될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라며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보험료를 동결하다보니 (수입과 지출) 밸런스(균형)가 깨졌고 지난해와 올해 보험료율을 올렸지만 밸런스를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 올해까지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2008년 4.05%였던 장기요양보험료율은 2009년 4.78%에 이어 2010년 6.55%까지 올랐지만 그때부터 2017년까지 8년 연속 동결됐다. 이후 지난해 7.38%, 올해 8.51% 등 2년 연속 보험료가 인상됐지만 국민 부담 완화를 위해 적립금을 활용하는 수준에서 보험료 인상은 최소화됐다.
이미 재정에는 '빨간 불'이 켜졌다.
보험료 등 수입과 지출을 비교해 보면 현금흐름 기준으로 당기수지는 이미 2016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그 규모도 2016년 432억원을 시작으로 2017년 3293억원, 지난해 6101억원에 이어 올해는 7530억원 발생할 것으로 복지부는 예상했다.
일단 보험 당국은 누적수지상으론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15일에서 1개월분의 적립금만으로도 장기요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김현숙 복지부 요양보험제도과장은 "누적수지는 0.5개월(15일) 정도도 괜찮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은 갑작스러운 감염병이나 질환 등으로 환자들이 병원에 많이 가면 지출이 늘어날텐데 장기요양보험은 이런 급성질환을 치료하는 게 아니다"라며 "급성기 질환이 발병해도 3개월이 지나야 인정조사를 하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여지가 있다. 월 한도액도 있어 그 이상을 넘어갈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미 제공한 장기요양 서비스를 청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도 최대 1개월분을 적립해 두면 재정적으로는 충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기금 소진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경고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8~2027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전망' 보고서를 보면 향후 10년간 장기요양보험료율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누적 준비금은 2022년을 기점으로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연평균 지출 증가율(10.6%)이 수입 증가율(9.6%)을 앞서 적자폭은 2027년 8조4419억원에 달할 거란 전망을 했다.
향후 보험료율 추가 인상은 불가피하다.
현재룡 실장은 "올해와 내년에 보험료율이 적정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면 그 이후에는 고령화로 인한 영향만큼만 보험료를 올리면 돼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며 "단기적으로만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보험료율 인상폭의 문제일 뿐 보험료는 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건강보험공단이 누적적립금 1개월 유지 상태를 가정했을 때 장기요양보험 지출 규모는 내년 9조5637억원에서 2021년 11조2365억원으로 10조원대를 넘어선 뒤 2023년이면 15조292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예산정책처도 보험료율을 명목임금인상률(3~4%)만큼 올리면 2021년부턴 재정수지가 흑자로 돌아서 누적준비금이 늘 것으로 내다봤다. 1개월분에 해당하는 누적준비금을 위해선 건강보험료율과 장기요양보험료율을 모두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