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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義人 故 이수현

2001년 1월 26일 도쿄 JR신오쿠보역서 취객 구하려다 사망
편집자 주
지소미아 종료 문제로 가뜩이나 살얼음판 같던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만 파묻힐 수만 없는 것이 현 시대의 국제관계이며 더우기 한미일 동맹이 더욱 절실한 요즘 한국과 일본, 각각의 나라를 위해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내던진 의인(義人)들인 일본인 선교사 소다 가이치와 한국인 재일유학생 이수현씨를 재조명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일본이 우리에게 했던 만행을 잊어서는 안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과거의 역사에 파묻혀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망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또한 일본과 의도적인 갈등을 만들어 정치적인 책략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더더욱 안될 것이다.

지난 2010년 부산 금정구 부곡동 내성고등학교 앞에 있는 ‘이수현 의행 기념비’에서 ‘아름다운 청년 이수현 모임’ 소속 한일 대학생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故 이수현.
고 이수현 씨는 부산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4년 휴학 후일본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2001년 1월 26일 도쿄 JR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남성을 구하려고 일본인 세키네 시로 씨와 함께 선로에 내려갔으나 세 명 모두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역사적으로 갈등의 뿌리가 깊은 한국인이 일본인을 구하다 숨졌다는 점에서 한일 양국에 추모 분위기가 형성됐으며, 이 씨는 양국 우호 관계를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일본에서는 그다음 날 모든 매스컴에서 ‘정의감 철로 위에 지다’ ‘목숨을 바친 위인’ 등의 기사로 이수현의 의로운 죽음을 대서특필했다.

이수현의 추모비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부산 어린이 대공원 내의 교육문화회관 양지바른 앞 뜰에 세워져 있다. 의인(義人) 이수현은 그가 사망한 지 18년이 지난 오늘에도 한국과 일본에서 의인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이수현의 이 같은 의로운 행동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의 실천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참다운 시민 정신을 일깨워 준 고귀한 희생이었다. 그

의 죽음은 가깝고도 멀기만 한 한·일 관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도쿄 신오쿠보역에는 이수현 님을 기리는 추모의 글, 장학사업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다음은 이수현이 남긴 글이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젊다.
나는 내가 젊다는 것을, 건강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울 것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울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건강한 젊은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나는 젊고 건강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다. 나는 이수현이다.


의인 이수현은 2001년 1월31일 의사자로 선정되어 국민훈장을 수여받았고 그의 모교인 고려대학교에서 2월24일, 개교 후 처음으로 명예졸업장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를 기리는 추모기념비는 부산어린이대공원과 그의 모교인 낙민초등학교, 내성고등학교, 고려대학교에 세워져 있으며 도쿄 신오쿠보역 현장에서도 정기적으로 추모식이 열려 그의 행동과 용기를 되새기고 있다.

이수현의 양친은 사고 후 일본 전국에서 들어온 위로금을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장학기금으로 기부하고 ‘LSH 아시아 장학회’를 통해 일본에서 공부하는 해외 여러 나라 젊은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왔다. 

어머니 신윤찬 씨는 저 하늘로 떠난 아들의 마음일 것이라고 믿고 무료급식 봉사활동에 동참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부산의 봉사단체와 함께 130여 분의 밥과 반찬을 만들어 허기진 어르신들에게 전하고 있다.
전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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