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泣斬馬謖 읍참마속 - 눈물 흘리면서 마속의 목을 벤다

손주들을 위한 할아버지 書堂

삼국지 촉지(蜀誌), 마속전(馬謖傳)에 보면, 촉나라 부장(部將) 마속(馬謖)은 가정(街亭) 전투에서 제갈량(諸葛亮)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지 않고 싸우다가 패했다.

이 때문에 제갈량은 할 수 없이 군대를 이끌고 한중으로 퇴각해야만 했다. 마속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옥중에서 제갈량에게 〈속임종여량서(謖臨終與亮書)〉라는 글을 올렸다.

「승상께서는 저를 자식처럼 대해 주셨고, 저는 승상을 아버지처럼 대하였습니다. 곤(鯀)을 죽이고 우(禹)를 흥하게 한 뜻을 깊이 생각하시어 평생의 사귐이 이 때문에 무너지지 않도록 하시면 저는 비록 죽지만 황천에서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襄陽記曰, 謖臨終與亮書曰, 明公視謖猶子, 謖視明公猶父. 願深惟殛鯀興禹之義, 使平生之交不虧於此, 謖雖死無恨於黃壤也.)」

제갈량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마속에게 참수형을 내렸다. 다시 구하기 어려운 장수이므로 살리자고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법을 엄정히 지켜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었다.

이를 ‘읍참마속’이라 한다. 이 이야기는 《삼국지 · 촉서(蜀書) 〈마량전(馬良傳)〉》에 나오는데, 마속이 옥중에서 제갈량에게 올린 서신은 《양양기(襄陽記)》를 인용한 주(注)에 실려 있다.
사랑하는 신하라도 법을 어기면 법대로 처단해 바로 잡는다는 의미다.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위해서는 아끼는 측근이라도 희생시킨다는 뜻.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엄정히 법을 지켜  바로 세우는 일에 비유하는 성어(成語)다.

제갈량의 엄중하고 추상(秋霜)같은 자기 결단은 현대의 정치 사회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갈량(諸葛亮)의 제1차 북벌은 결과적으로는 인선(人選)의 실패로 어이없게 무산되고 말았다.

그런데 제갈량이 이런 인선을 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있었고, 마속(馬謖)의 목을 베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가정(街亭)은 최전방의 전선은 아니지만 보급로의 거점으로, 촉(蜀)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전략적 요충지이고, 위(魏)나라 입장에서는 반드시 빼앗아야 할 요지였다.

제갈량은 가정을 지킬 장수로 중신들이 추천하는 맹장들을 제쳐 놓고, 마속을 기용했다. 맹장들은 본대 전력의 핵심 요원으로 공격에 쓸 말이지 수비에 쓸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조운(趙雲, 조자룡(趙子龍))은 기곡(箕谷)에서 이미 위군의 발을 묶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으며, 위연(魏延)은 위군 본대의 주력을 격파하는 선봉장으로서의 대임을 맡고 있었다.

하여 제갈량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본대에서 빠져도 크게 전력 부담이 없는 마속을 파견한 것이다.

물론 제갈량도 마속이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장으로 왕평을 붙여 주었다. 마속의 임무는 가정, 즉 후방의 보급 거점을 굳게 수비하는 것이었고, 만약 제갈량이 지시한 대로 길가에 목책을 세우고 길목을 틀어막고만 있었다면 충분히 가정을 지킬 수가 있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마속의 목을 베지 않을 수 없었던 제갈량의 고충을 마속을 베면서 흘린 그의 뜨거운 눈물이 말해 주고 있다.

곡(哭)이 눈물을 흘리는 대신 소리 내어 우는 것이라면, 읍(泣)이란 소리 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곡참마속(哭斬馬謖)이 아닌 읍참마속(泣斬馬謖)인 것이다.

최근의 사용의 예;
“대통령은 조국 장관에 대해 마음의 빚 운운 하지 말고 泣斬馬謖의 심정으로 그의 목을 쳐서 엄정한 국정운영의 본을 보여라”(모 일간지 사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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