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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의 얼

하림산책 - (박하림 / 수필가, 전 (주) 휴비츠 고문)
배달민족이라는 표현은 민족을 높여 이르는 말로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용어로 요사이는 우리나라에서조차 잘 들을 수 없다. 그만큼 민족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이 퇴색한지 모른다.

우리 한민족이 배달민족이다. 우린 배달민족임을 자랑으로 여겼다. 요즈음에 그것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이유란 분명해 보인다.

새천년 시대정신이니 신 패러다임이니 신사조나 하는 것 때문이다. 아니 그것들보다 더 날렵하고 더 호기심을 자아내며 선동적인 ‘밴드왜건 bandwagon’ 바람몰이 마차 때문이다.

그 모든 새 물결의 주체는 화성인이 아니고 우리이고 그 우리가 다름 아닌 민족이고 한(韓)민족인 것이다.

한민족은 한반도에 정착한 이래 그 땅에서 농사자은 산물을 먹고 자식을 낳아 키우며 강토를 지켜 혈맥을 뻗었으니 그 세월이 반만년 역사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예의도덕이 서고 정기(精氣)가 배어 민족의 얼이 뭉쳤으니 수없이 외침을 당해 백성이 도탄에 빠졌을지언정 그 얼은 멸실되지 않았다.

나라를 사랑하는 그 얼은 조선이 일제에 강제 합방되었을 때는 항일운동의 불을 댕긴 만세운동으로 전국에 불타올랐고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는 나라를 지키려는 의병으로 전선을 지키다 장렬히 산화했으니. 조국의 수호신은 그 얼이었다.

얼이란 무언가.
그건 정신이고 기상이며, 넋이고 혼이다. 한 민족의 얼은 침략자의 무자비한 칼날에도 스러지지 않았고 가난 때문에 굶어죽는 지경에도 선비정신은 그 빛을 잃지 않았음은 한민족 특유의 기개와 지조 때문이었다.

그 얼은 남녀노소나 반상의 구애가 없어 불의에 맞서 기꺼이 목숨을 버렸으니 기미년 만세운동이 터진 병천 아우내장터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었다. 손에 태극기를 든 3천여 백성들은 일본헌병들의 총칼 저지에도 굴하지 않고 행진했다.

일본헌병이 맨 앞에서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나아가던 청년기수를 칼로 찔렀다. 기수가 무너지면 대열이 흐트러질 판국이었다. 기수는 살신성인 결기로 칼날을 움켜쥐며 꾸짖어 일갈했다. 노도와 같은 함성이 일었다. 겁먹은 헌병이 난도질로 기수를 도륙했다.

기수의 죽음은 성난 시위대를 격분시켰다. 시위대를 지휘하던 대장이 헌병을 향해 몸을 날리는 순간 총성이 울리고 그 대장이 고꾸라져 숨졌다.

동시에 대열이 주춤 물렸다. 그때 허공을 찢는 쇳소리가 울리며 한 노파가 튀어나와 대장을 끌어안았다. 어머니였다.

아들의 선혈이 금시 어머니의 적삼을 붉게 물들였다. 눈이 뒤집힌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도끼눈을 부릅뜨고 헌병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엔 총이 아니라 총검으로 어머니를 찔러 죽였다.

동시에 시위 군중을 형해 무차별적인 총질이 시작되었다. 장터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무려 19명이나 총 맞아 죽고 수백 명이 총상을 입었으며 유관순열사를 위시하여 수백 명이 잡혀갔다. 
 
 양순한 평민에게도 민족의 얼은 살아있어 우매한 임금과 비루한 매국노 중신들이 팔아먹은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못난 임금 탓에 주권이 위태로울 때마다 그나마 나라의 명맥을 지킨 것은 저 민족의 얼이었으며, 폐허에서 경제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경제부흥 또한 한 얼 다운 띠앗 정신으로 뭉쳐 땀 흘린 결과였다.

그런데 오늘 날 그렇게도 소중한 한민족의 얼은 다 어디에 있으며 대체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가. 민족의 얼은 한민족 고유의 기상(氣像)일진대 자존감과 자부심을 당당하게 유지해야 하는바 부끄럽게도 시대의 고물이 되어버린 공산주의 같은 이념에 치어 그 기품을 잃고 있다.

오늘의 현실인즉 그 얼이 빠진 거지주머니가 너무나 많다. 얼빠진 바보들이 이상한 바람 (트렌드)에 놀아나 밴드왜건을 올라타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특히 청맹과니가 되어버린 정치가 그렇다. 바로 보지 못하고 제대로 듣지도 못하면서도 진실하게 보려하지 않으며 경청하여 깨닫고 바르게 행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면 자연히 판단이 흐려져 독단하게 되고 억지를 주장만 하게 되어 소통이 막히고 진영논리에 함몰된 패거리 정치를 답습하게 된다. 지금 우리 형편이 여러 모로 어려운 터에 정치 양태가 저 모양으로 되어가니 국민의 근심이 항간에 자자하다.

민족의 얼이 찬연하고도 처절하게 빛났던 3.1절을 맞아 잠시나마 그날의 울분과 의로운 항거를 회상함은 그러한 민족의 얼이 지금 우리를 향해 어떤 질정을 하고 있는가를 헤아려 보기를 권유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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