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직전 남긴 ‘신과 인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 24가지’
철학자 김용규 박사의 책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을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설명
이 글을 쓴 노재환 목사는 삼성에서 11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그는 입사면접과 컴퓨터 한글 모니터개발전시를 격려하기 위해 코엑스를 방문하셨을 때 유일하게 이병철 회장님과 대면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그러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백만장자의 질문’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회장님이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서 궁금해했던 질문에 철학적 접근 혹은 신학적 접근보다 오히려 중학생 같은 편안한 마음의 시골 목사로서 이 회장님의 질문에 답하고저 한다고 밝혔습니다. 독자의 흥미를 위하여 대화 형식으로 각색하였습니다. 앞으로 10회에 걸쳐 연재를 시작합니다.
고 이병철 회장이 묻고 철학자 김용규 박사가 답하는 신과 인간에 관한 근본적 통찰을 담은 저서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직전 남긴 신과 인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 24가지를 다룬 책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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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서 예술품을 관람하는 이병철 회장. |
노재환 목사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서로 상극으로 알고 있는데 왜 기독교 국가들 특히 천주교 국가들이 동구라파나 남미에서 공산화 또는 사회주의화 되었느냐는 말씀아닙니까?
이병철 회장 그래, 상극이 아니고 오히려 평등을 추구하는 공통본질이 있어서 그런게 아이가?
노 목사 아이고 회장님 천만의 말씀입니다. 절대 아닙니다. 동구나 남미공산화는 미소패권시대에 공산주의혁명을 일으킨 소련영향권에 들어간 지역이니 당연히 위성국가로 공산화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수 세기 동안 전통적 기독교 신앙과 문화가 있었어도 정치 군사적으로 공산당 폭력 혁명세력 정권이 짓밟아오니까 하루 아침에 무너졌지요.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고 구소련이하루 아침에 무너진 거 아닙니까?
이 회장 소련이 하루 아침에 무너진거 보면 거 참.
노 목사 회장님 간단해요. 기독교의 평등사상은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피조물이니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처럼 이웃 역시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그들을 사랑해야 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또 다른 나를 사랑하는것이 됩니다. 기본 출발이 사랑입니다.
이 회장 노목사 너무 흥분하지 말고 살살 말해라.
노 목사 아 네 죄송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혁명은 지배당하는 즉 피지배자가 지배자에 대한 미움에서 출발했습니다.
왕에게 지배당해서 왕을 끌어내리고 공화제가 되었지만, 이젠 다시 산업화로 자본주에게 지배당하는 노동계급이 되고보니 이를 쟁취하겠다고 자본주를 끌어 내리고 공산당이 그 권력을 차지하게 된 집단이 공산사회주의 공산당 아닙니까?
자본주의 사업가를 끌어내리고 보니 당연히 사업이 안되고, 인간의 기본 본능인 소유욕과 시장경제의 기본을 무시하니 결국 다 같이 망하게 된게지요.
이 회장 노목사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만, 네 요약은 간결해서 참 이해가 잘 된다.
노 목사 아 회장님, 또 자랑하지만, 제가 물리를 전공해서 간결화를 좋아합니다.
이 회장 원래 물리는 복잡하고 머리 아프지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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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환 목사 |
노 목사 네 복잡한 것을 간단히 만들어 설명하는 게 물리입니다. 제가 재미있는 예를 들께요. 좀 어렵습니다만, 힘은 물리에서 벡터로 표시합니다.
즉 크기와 방향이 반드시 있지요. 그런데 컬 오브 그레디안트가 빵(0)이 되는 것을 수학적으로 풀면 거의 한 칠판이 됩니다.
그런데 그걸 물리적으로 설명하면 풍선을 아무리 쓰다듬어도 (컬은 풍선 표면으로 이동하는 성분) 풍선은 커지지 않는다(풍선표면의 수직방향이 그레디안터)는 걸 보면 아주 쉽게 설명이 됩니다. 벡터의 방향이 90도 수직이니 컬의 힘은 그레디안트에 아무소용이 없는 힘이지요
이 회장 노목사! 그건 물리이야기고 안 그런 것도 있다 내 나중에 알려줄께.
물리 이야기 나중에 하고 결론은 기독교는 사랑이 출발이고 공산주의는 미움에서 출발되었다는 거 아이가?
노 목사 네 기독교는 히브리인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하비루’(밖에 있는 사람들)의 어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즉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 밖 떠돌이 신세였고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병자들은 성밖에서 살았지요.
서울로 말하자면 남대문 밖 옛날 해방촌이나 후암동 같은 곳을 생각하시면됩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관심을 쏟으시고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반면 공산사회주의는 자신을 지배하는 권력에 대한 반발이나 증오심에서 그 권력을 빼앗아 내가 누리겠다고 투쟁하여 뺏어온 것입니다. 방법은 폭력이고, 결과는 또 다른 공산당의 피지배 계급을 만들어내는 모순이니 망할 수 밖에 없지요. 시간문제지요.
이 회장 니는 중국도 소련처럼 망한다고 보나?
노 목사 거짓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공산사회주의화된 남미나라들도 다들 쪽박차지 않았습니까?
이 회장 그러고 보니 내 질문이 말이 안되는구먼.
노 목사 아닙니다. 우리가 레미제라블에나오는 쟝발장을 돌보고 사랑한 미리엘 주교 처럼 이웃을 잘 보살폈다면, 아니 우리 모두가 미리엘 주교였다면 공산주의는 처음부터 맥을 못 추었을 것입니다.
이 회장 그래 생각해보면, 세상 사람들은 말도 많고 오해도 하지만 지난 날을 돌아보면 내가 삼성장학회와 삼성문화재단을 세운 게 참 보람도 있었고 또 잘했다고 생각해.1964년 65년이지 아마.
노 목사 회장님 기억력도 참 좋으십니다.
이 회장 그때 중앙일보 세우고 성균관대학교 인수 할 때니까 기억이 생생하지.
노 목사 회장님,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께 아주 오래 전에 들은 설교 말씀인데 지금도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진정한 내 것은 내가 베풀어 남에게 준 것 뿐이다’라는 설교말씀입니다.
이 회장 참 진리의 말씀이네. 그래 예수 믿으면 이런 좋은 말씀을 교회에서 자꾸 들으니 예배보러 가겠구먼.
노 목사 아이 회장님! 예배 드리러간다고 하십시요. 장로교신학대에 정장복교수님이라고 예배학 교수님이 계시는데 원래는 ‘예배하다’가 맞고‘예배드린다’는 틀린다고 하셔요.
그런데 우리 언어는 관습과 상징이므로 세배드린다 하듯이 예배드린다가 저는 더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물질을 드리는 개념과 혼돈되고 어원에 충실하셨겠지만, 예배를 드린다라는 표현은 우리 말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 전에 성경 번역과 찬송가도 많이 고쳤는데‘십자가 든든히 붙잡고’를 어법에 안맞다고 ‘십자가 단단히 붙잡고’로 고쳤어요.
상징이므로 어법을 초월해 저는 ‘든든히’가 더 신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예수님을 ‘당신’이라고 표현한 것을‘주님’이라고 고친 것은, 3인칭 극존칭을 2인칭으로 고쳐 하나님께 직접 대화형으로 바꾼 것은 매우 신앙적입니다.
이 회장 그래 교회 댕기면 많이 배워야 겠다.
노 목사 교회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예수믿고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아주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사랑의 근본 위에 이웃사랑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잘못 하나님사랑없는 실천적 이웃사랑을 강조하다 보면 사회주의적으로 기독교가 변질됩니다.
십자가가 세워지려면 반드시 하나님 사랑인 기둥이 먼저 곧게 서야 합니다. 그래야 가로 십자가 이웃사랑이 달리게 되어 온전한 십자가가 이루어집니다.
기둥없는 십자가는 애초부터 존립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예배가 반드시 바로 정립되어야 이웃 사랑도 하나님 사랑 기둥에 의지해 팔을 벌릴 수가 있게 됩니다.
이 회장 이웃사랑도 하나님이 있어야 제기능을 발휘한다는 말 아니가? 그래 이해가 된다. 그러면 예배를 보든 예배를 하든 예배를 드리든 그 예배의 핵심이 뭐고?
노 목사 학술적으로 설명하면 책이 한권 입니다. 회장님 아시잖아요. 교수들은 쉬운 것도 어렵게 설명해서 나중엔 자기도 잘 모르는 소리 하잖아요.
이 회장 어이, 노목사 예수님이 비판을 받지 안 할라면 비판하지 말라는말 성경에 있잖아! 빨리 예배나 네 말로 쉽게 설명해봐!
노 목사 아이고 죄송합니다. 쉽게 설명하라 하시니 제가 지난 주 예배시간에 설교 중에서 비유한 거 소개드릴께요.
예배는 밥하는 거 생각하시면 됩니다. 먼저, 예배는 사모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쌀, 잡곡, 깨끗한 물 준비하듯 말입니다. 그 다음은 깨끗이 잘 씻어야 합니다. 쌀 씻듯 우리 몸과 마음을 회개하고 정결케해서 예배하기에 부끄럽지않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밥솥을 220V에 잘 꼽아 파워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예배 중 반드시 만나 영적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전기가 들어와야 밥이 되듯이 말입니다.하나님을 안 만나면 전기 안 들어온 것과 같습니다.
또한 취사버튼을 잘 보고 눌러야 합니다.보온 누루면 밥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잘 보고 말씀대로 따라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김이 올라 쌀이 익듯이 기도하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 회장 야 그거 재미있다. 밥이 끓어서 쌀이 익어야 하듯 예배도 하나님 파워로 김이 나야 하는구먼.
노 목사 그게 없으면 설교도 기독교 강연이고 예배도 의식에 불과합니다. 반드시 전기가 들어오듯 하나님 파워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도 성전에 가셔서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둘러 엎으시고 강도의 소굴을 만든다고 뚜껑이 열리셨어요.(막11:15~17)
이 회장 노목사야 예수님 보고 뚜껑이 열렸다고 하면 예수님이 뭐가 되노?
노 목사 뚜껑 열렸다는 말은 성경에 없지만 엄청 화 나셔서서 책상 걸상 다 엎으셨어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의 본질이 훼손되었지요. 지금도 예배의 본질이 훼손되는 예가 너무 많습니다.
이 회장 사람들이 해필 왜 거기서 장사를 해서 예수님을 화나게 하셨나?
노 목사 아 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는 예배가 지금과 달랐습니다.
모든 죄는 생명의 핏값을 대신 지불해야 죄가 사해진다고 믿고 성전에 올 때는 모두 자신이 아끼는 흠없는 짐승을 한 마리씩 갖고와서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고 내 죄를 모두 짐승에게 전가(안수)시켜 보냅니다.
그리고 그 짐승의 목을 치고 죽입니다. 그 의식 가운데 죄는 내가 짓고 불쌍한 짐승만 죽는구나하고 각성하여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고 결단하지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제사가 타락하게 되니 이런 죄사함의 의식은 소멸되고 그저 성전 앞에서 짐승 사가지고,특히 병든 거 싸게 사서 형식만 취하는 식의 제사의 예법이 매우 왜곡되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제 만인의 어린 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몸소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 온 인류는 더 이상의 짐승제사가 필요없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회장 아 그렇게 깊은 뜻이 기독교에 있구먼.
노 목사 그래서 아직도 이스라엘 나라의 95% 유태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고 옛 유태교 짐승잡는 성전제사를 드려요.
모세오경을 믿는 아랍도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로마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어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로 드려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롬 12장1)
쉽게 설명하면 옛날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피로 예배드렸지만 ‘이제 너희 생활 속에서, 삶 속에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삶의 예배를 드려 믿음으로 살도록 해라’ 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밥솥에 박킹(Bucking)이 새면 밥이 잘 안되듯이 예수는 믿지만 우리 삶에 박킹이 새는 게 무엇인지 잘 분별해 고쳐 나가야 합니다. 그것을 교회에서는 성화라고 합니다.
이 회장 야 밥솥 비유 최고다. 박킹도 이해간다. 생각할수록 예수님 정말 감사한 분이시네, 예수님 감사합니다.
어이 노목사 날 무시하지 마라 난 했다 하면 항상 일등이다. 제일모직, 제일제당, 제일합섬했듯이 내가 믿으면 내가 제일로 믿을지 누가아나?
노 목사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회장님 기독교는 은혜로 사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더없이 타락한 지체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무 조건없이 선택하셔서 우리 믿는 자를 예정하여 구원하시고 불가항력적 은혜를 내려 끝까지 천국에 이르도록 우리가 참고 인내하도록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이 회장 야 그게 지난번 얘기한 튤립 아니가?
노목사 그런데 말이야, 우리 죄를 대신해서 옛날에는 짐승이 죽고 이제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다고 했는데 우리 죄가 뭐고?
그리고 처음 만드실 때 우리가 죄 안 짓도록 하시지….
노 목사 그것도 지난번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다시 설명드릴께요. 하기야 자꾸 잊어 버리셔야 우리 목사들도 할 일이 있지요.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