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농협 이미 벌금, 국민·신한·우리은행 등도 경고
美 세컨더리 보이콧 금융경제 재제, 이란 북한 등 대상
해리스 ‘韓,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 北 개별관광 조절 요구
IBK기업은행은 지난달 21일 미국의 이란제재 관련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미국 사법당국과 8600만달러(한화 약 1049억원)의 벌금으로 합의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내 은행권도 요동치고 있다.
은행권 세컨더리 보이콧 위반 사례 많아
국내 시중은행이 미국 당국으로부터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로 처음 벌금을 부과 받은 것은 200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은행은 외환은행 시절이던 당시 뉴욕 브로드웨이 지점에서 혐의거래에 대한 보고를 제때 하지 않아 110만 달러(약 13억 1200만 원)의 벌금을 물었다.
이번에 벌금에 합의한 기업은행은 2014년부터 조사를 받았고, 2017년에는 아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직접 나서 NH농협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농협은행 뉴욕지점은 2017년 말 뉴욕 금융청으로부터 자금세탁방지 업무 미흡으로 1100만 달러(약 119억 원)가량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하나은행의 벌금보다 10배 가량 많아진 액수다.
기업은행과 더불어 미국 현지에서 이란과 금융거래를 해온 우리은행 등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벌금이 조단위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4년 미국 정부는 프랑스 BNP파리바에 89억7,000만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9조2,032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미 금융경제 재제 ‘세컨더리 보이콧’은
그렇다면 기업은행이 1천억 원대 벌금을물게된 미국의 금융경제 재제인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은 무엇일까.
세컨더리 보이콧은 미국이 제재하는 국가는 물론 그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의 정부와 기업까지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융제재 방식이다.
국제 거래의 90%는 미국 달러로 결제되므로 달러 흐름을 차단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은 ‘경제적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매우 강력한 조치다.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2010년 단행한 ‘포괄적 이란 제재법’에서 처음으로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했으며 북한의 핵실험·장거리 미사일 도발 때도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를 꺼내들었다.
이란으로부터의 원유 수입량이 15%에 달하는 한국은 예외국으로 적용돼 한국-이란 간 무역 상품(원유, 전자제품 등)은 국경을 오갈 수 있어도 거래대금은 한국 내 개설된 이란 측 원화 계좌에 쌓일 뿐, 한국 밖으로 송금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는 조건으로 ‘이란 원화결제 시스템’이 새로 도입됐다.
이란 자금 불법적으로 미국 등지로 반출
그러나 지난 2011년 국내 페이퍼컴퍼니 ‘앤코래’가 지난 2011년 2~7월 두바이 대리석을 판매하는 중계무역 형식을 가장해 기업은행 뉴욕지점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CBI) 명의 국내 계좌로 이란 측 자금 1조948억원을 수령하고 아들 명의 미국 회사 등 여러 군데로 나눠 송금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란 측 자금이 불법적으로 미국 등지로 반출된 것이다.
한국 검찰은 지난 2013년 앤코래 대표 정 모씨를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기업은행에 대해 정 모씨와 범행을 공모하거나 묵인했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를 벌였으나 단순 업무 과실로 판단하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미국 연방검찰과 금융당국의 입장은 달랐다. 테러국과 연관된 자금세탁 문제는 사소한 부분도 놓쳐선 안 되는 민감한 영역이라고 판단했으며, 기업은행에 대한 수사를 지속해왔다.
지난달 20일(미국 현지기준) 미국 연방검찰과 뉴욕주금융청은 기업은행에 자금세탁방지 프로그램 미비 등을 사유로 벌금을 처분했으며 자금중계를 했던 기업은행 뉴욕지점에 대한 기소유예를 결정했다.
벌금은 총 8600만달러로 기업은행은 미국 연방검찰에 5100만달러를, 뉴욕주금융청에는 3500만달러는 각각 납부하게 된다. 기소유예 기간은 2년이다.
정부 독자적 남북협력 구상에 미 경고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에 우리나라 은행들이 더욱 긴장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정부의 북한 개별관광 등 ‘독자적 남북협력 구상’ 때문이다.
실제로 산업·기업은행, 국민·신한·하나·농협·우리은행 등은 이미 2018년 미국 정부로부터 이란보다 더 강력한 수준인 대북제재를 준수하라는 경고를 받은 상태다.
당시 미 재무부 측은 국내 은행이 추진하는 대북 관련 사업 현황을 묻고 대북제재를 위반하지 않길 바란다는 당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은 말이 ‘요청’이지 사실상 ‘경고’나 다름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미국 정부가 올해 초부터 이란은 물론 북한 관련 금융제재 위반에 대해 고삐를 바짝 죄고 있어 금융권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1월 16일 한국의 대북제재 공조 이탈에 대해 공개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가 공식화한 북한 개별관광이 대북제재에 저촉될 수 있다고 공개 경고한 것이다.
해리스 대사는 이날 외신 간담회에서 “제재 틀 내에서 여행은 인정된다”면서도 “여행자가 (북한에) 들고 가는 것 중 일부는 제재에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추후 유엔이나 미국 독자 제재를 촉발시킬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 개별관광 허용 시 대북제재 위반은 물론이고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실제 미국은 지난해 2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교류행사에 대북제재 대상이라며 노트북 등 전자기기의 반입을 불허한 바 있다.
북한 개별관광이 실시될 경우 유엔 대북제재 결의 2087호가 금지하고 있는 달러 등 ‘벌크 캐시(대량 현금)’ 유입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이와 관련해 기독자유통일당(대표 고영일)은 지난달 27일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유엔 대북제재를 직시하라‘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이 당은 논평에서 “21대 총선에서 압승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4?27 사기평화쇼 2주기를 맞아 묻지마 대북퍼주기를 시도하고 있다. 총선이 끝난지 일주일도 안되어 정부 여당은 남북철도 추진과 대북의료 지원,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교류협력을 밀어 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