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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광선사(禪師)’ 나가신다 …

최중탁 미국 골프 티칭프로(USGTF)의 재미있는 골프이야기 89

골프붐이 절정이던 1900년대 후반 여름 인천시 서구 소재 한 골프장은 해뜨기 전 얼리버드 플레이 9홀 손님들을 예약없이 선착순으로 받았다.

골프광(狂)들은 꼭두새벽 3시 반 경부터 몰려와 캄캄하게 잠겨있는 클럽하우스 현관 앞에 보스턴 옷가방을 도착순대로 내려놓고 각자 자동차에서 다시 눈을 붙인다.

4시 반에 현관에 불이 켜지면 들어가 옷가방 순서대로 등록하고 순번대로 4명씩 묶어 조를 편성해 주면 티업을 시작한다.

어떤 내장객은 어두워서 1, 2번 홀은 그냥 통과하고 그 다음 홀에서 대기하다가 공이 보이기 시작하면 티업한다.

바지가 종아리까지 이슬에 젖은 채 9홀 종료 후 씻고 해장국 먹고 나오면 출근시간과 맞다. 경인고속도로에 들어서면 벌써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점심시간에는 식사대신 의자에서 한숨 자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주중 틈만 나면 새벽 2~3시에 골프백을 메고 집을 나서며 미쳤다 소리를 듣지 않고는 전문가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가 없는 것이 골프다. 이것이 골生골死 골프광(狂)들의 뼈를 깍는 수련(修練)현장의 한 단면이다.

골프에 왕도는 없다. 특별한 비법이나 지름길이 있을 수 없다. 싱글의 위치를 하룻밤 젝팟이나 흥부 대박 터지듯 갑자기 얻을 수는 결코 없다.

시공(時空)을 초월 언제 어디서나 스윙기량 연마와 집중력 수련을 하지 않으면 ‘이것이 골프구나’ 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스님들에게는 수행(修行)정도나 직책에 따라 여러가지 존칭이 있다. 그 중에서 선(禪)을 많이 수행하여 선의 이치를 깨달아서 이에 통달한 스님을 선사(禪師) 또는 대사(大師)라 부른다.

골퍼가 한 방에 온그린시키는 일타필상(一打必上, on), 원샷으로 홀컵에 넣는 일타필입(一打必入, in)의 싱글 반열에 오르기까지의 뼈를 깎는 노력은 스님이 득도하여 禪師의 위치에 오르기 까지의 참선수행과 정진(精進)의 과정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함이 없다.

이와같이 불철주야 연습과 실전라운드를 통하여 통달의 경지에 이른 골프광을 스님에 비유하여 ‘골狂禪師’로 부르면 잘 어울릴 것 같다.

구력이 오래된다고 저절로 싱글이 되지는 않으며 평생 보기플레이 신세를 못 벗어나는 골퍼가 대부분이다.

통계를 보면 명실상부한 싱글핸디 골퍼는 2% 미만으로 희소하여 골프 엘리트 중의 엘리트 골광선사들에 해당된다.

속세 중생 아마츄어 골퍼들이 ‘아무나 선사가 되냐’ ‘싱글이 누구 애들 이름이냐’라며 꾸짖는 말도 이들을 선사급으로 예우하라는 경고다.

그들은 일상생활이 곧 수행이다. 남 보다 덜 자며 덜 놀고 덜 마시고 골프를 위해 하루를 25시간처럼 쪼개서 활용한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할 시간도 줄일 수 밖에 없다.

술먹고 허튼 짓 하는 돈 골프에 쓴다. 마음이 온통 콩밭에 가 있고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아 사업에의 집중력이 떨어진다. 회사 말아먹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아침 저녁으로 연습볼을 쳐대서 갈비뼈가 금이 가도 모르며 손바닥의 굳은 살은 악어 발바닥 같다.

주 2회 이상 실전으로 얼굴은 동남아인 피부색, 골프화는 뒷굽이 45도로 닳아 있다.라운드 모습은 과묵하고 위기에서는 더 침작하고 냉철하며 도박꾼 타짜처럼 포카페이스에 눈빛이 날카롭다. 캐디에 무관심하고 스스로 거리를 읽고 채를 뺀다.

패션감각이 무디어서 찌그러진 모자에 닳고 헤어진 장갑, 땀에 절여진 단벌 골프복을 세탁할 틈도 없다.

가족은 골프 한 번 치면 이처럼 옷이 더러워 지는 줄 안다. 골프채와 옷가방은 항상 자동차 트렁크 안에서 출동대기 중이다.

싱글선사들은 그동안 얼마를 투자 했을까. 비회원의 정상적인 골프비는 라운드당 20만 원 내외, 주 2회 라운드면 월 160만 원, 년간 약 1,900~2,500만 원이 든다. 5년이면 약 1억 2500만 원, 10년이면 2억 5천이 든다.

여기에 더하여 자동차 유류비와 에프터 식사값을 피할 수 없고, 볼과 채 의류 신발 게임비 동계 해외전지 훈련비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최소 25~30%를 부대비용으로 가산하면 5년에 1억 6천, 10년이면 3억 2천까지도 쓸 수 있다.

20여 년 전에는 연립주택, 요즈음이면 소형 아파트 한 채는 투자해야 7자가 가끔 그려진다. 수행기간이 더 오래 걸려 10년 20년이라면 투자비는 배가 된다.

그처럼 오랫동안 쌓아 온 내공과 투자규모를 헤아려서 존경하는 자세가 골퍼로서의 올바른 매너다.

골광선사님께 핸디를 먼저 요구하지 말라. 훈수와 핸디에 인색한 것은 스스로 투자하고 수행하여 깨달으라는 가르침이다.

더 받아내기 위해 밀땅 기싸움을 하거나 불평하는 것은 하룻 강아지 골퍼들로서 큰 결례를 범하는 것이다.

학승이 대사님 대하듯 하라. 함께 라운드 하는 것만으로도 한 수 배울 절호의 찬스로 감사해야 한다.

골광선사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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