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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풍수(裨補風水)

2020년 윤년에 재조명 해 본 風水地理




비보풍수란 흉(凶)한 것을 보완하고 치유하여 길(吉)하도록 고치고 조화시켜서 복이 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자연상태에서 미비한 공간환경 조건을 채워서 명당으로 만들어 낸다는 풍수사상이다.

우리나라 풍수는 신라 말기의 승려이자 한국풍수의 원조(元祖)격인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주장한 비보설(裨補說)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도선의 전기 ‘고려국사도선전’(高麗國師道詵傳)에는 비보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이 만약 병이 들면 곧 혈맥을 찾아 침을 놓거나 뜸을 뜨면 병이 낫는다. 산천(山川)의 병도 그러하여 흠이 있는 땅을 보살피고 보완하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그 흠결이 있는 곳에 사찰을 세워 비보(裨補)하는 방법이다’

이와 같이 비보풍수는 한국풍수의 특징이다. 풍수의 기원으로 알려진 중국에는 비보풍수 사례가 많지 않다.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동북쪽에 ‘내앞마을’ (川前里)이라고 불리는 촌락(村落)이 있다. 마을 초입에 반변천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으나 안동 임하댐의 보조댐이 건설되면서 호수로 변했는데 그곳에 작은 섬이 하나 있다.

섬에는 노송들이 늘어 서 있는데 이름하여 개호송(開湖松)숲이라고 한다. 원래는 반변천 가에 조성된 숲이었지만 댐 건설로 물이 불어나면서 지금은 일부가 물에 잠겨 섬으로 변했다.

내앞마을에 처음 들어 온 조선 성종 때의 의성 김씨 김만근 입향조(入鄕祖)와 후손들이 풍수지리 상의 열린 수구(水口 : 기운이 들고 나는곳)를 막기위해 문중 이름을 걸고 소나무 종자를 심어 보존해 온 소나무 숲이다.

임진왜란 직후 한 때 홍수로 숲이 유실된 적은 있지만, 세금을 내기 위해 나무를 베어 팔아야 하는 처지에 몰렸을 때도 문중 결의를 통해 숲을 지켜왔다.

이곳이 바로 비보풍수로 가문이 복을 받은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인 의성 김씨 집성촌 내앞마을이다.
의성 김씨 문중은 김동삼(金東三 1878~ 1937), 김대락(金大落 1845~1914) 등 독립운동 유공자만 33명이나 배출해 명문가문으로 손꼽히고 있다.

일찍이 이곳 안동 내앞마을은 풍수지리의 성서(聖書)격인 ‘택리지’(擇里志)의 저자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이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봉화 닭실마을과 더불어 영남의 4대 길지(吉地)로 꼽았던 곳이다.

4곳 모두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인 데다 명당이어서 풍수에서는 이런 곳을 집터로 삼으면 재물이 모이고 입신양명 (立身揚名)자손들이 번성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애초 내앞마을은 명당이 되기에는 한 가지 흠이 있었다. 마을 서쪽에 지나치게 넓은 수구(水口)가 그것이었다.

개호송(開湖松)은 바로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된 인공숲이다. 굳센 기상의 소나무들이 열린 수구를 막고, 마을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자연이 만든 땅에 사람의 힘을 보태서 명당을 만들어 낸 셈이다. 의성김씨 후손들이 입향조가 최초 조성한 이래 수백 년간 정성을 다해 한낱 이 소나무숲을 지켜온 이유는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 소나무가 없으면 내앞마을도 없음이 분명하다(無此松卽無川前必矣). 내앞마을은 우리 종사(宗祀)가 있는 곳이다. 종족의 기반이 흥하고 피폐함은 이 소나무에 달렸으니, 조상을 존중하는 뜻이 크다면 어찌 이 소나무를 보호하는 것에 마음을 다하지 않겠는가’

의성 김씨 선조들의 개호송 보호에 대한 대대손손 단호한 유지(遺旨)가 돋보인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수구(水口)의 중요성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무릇 수구가 엉성하고 넓기만 한 곳에는 비록 좋은 밭 만 이랑과 집 천 칸이 있어도 다음 세대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저절로 흩어져 없어진다. 그러므로 집터를 잡으려면 반드시 수구가 꼭 닫힌 듯하고, 그 안에 들이 펼쳐진 곳을 눈여겨 본 후 구해야 한다.’

삶의 터전을 구할 때는 가장 먼저 수구(水口)가 닫혀 있는지를 확인하라는 뜻이다. 수구는 물의 통로이자 바람의 통로이며 풍수에서는 수구가 좁아야 삶의 근원인 물을 저장하기가 쉬워 명당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풍수(風水 Feng shui)란 자연환경이 인간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준다는 믿음을 전제로 좋은 땅을 찾는 이론인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이다.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이다.

수구가 너무 넓게 터져 있으면 겨울의 차가운 북서 계절풍을 막을 수 없고, 물이 다 빠져나가 농업용수 공급마져 어려워진다. 이런 촌락은 농사가 잘 안되고 삶이 피폐해지는 흉지, 가난한 마을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이고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현재의 풍수학설은 아직도 일부에서는 토착신앙 유사하게 취급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묫자리 잡는 용도로 사용되는 일종의 미신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반면 더 많은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조상의 묘라도 이왕이면 명당에 모시려는 경향이 있다.

현대에 와서는 관공서나 건물의 입주 등 실생활에도 풍수가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국립묘지, 박물관, 시청과 도청 급의 건물들은 모두 풍수를 고려하여 위치를 선정한다고 하며, 심지어 세종특별자치시 건설에서도 풍수지리가 적극 고려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 건물들도 풍수지리 자문을 받아 짓는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적 첨단도시 홍콩도 도시전체가 철저하게 풍수를 기반으로 건설되고 있다.

우리는 현재 IT시대 디지털 사회에 살고 있지만 풍수지리는 일상 생활과학의 한 분야로 연구되고 활용되어 지고 있는 추세다.

자연상태의 명당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좀 모자라는 부분은 비보함으로써 흉지(凶地)도 길지(吉地) 명당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비보풍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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