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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과 벙커, 바늘과 실과 같다

최중탁 미국 골프 티칭프로(USGTF)의 재미있는 골프이야기 91
미국 페블비치 링스코스 7번홀.

조용한 새벽 한 골프코스에서 심하게 다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내가 먼저 만들어졌기 때문에 너희들 벙커와 헤져드도 뒤따라서 태어난 거야”

“아니야, 우주공간에서 내가 가장 먼저 존재했기에 인류도 태어났고 지금도 매일 물을  마시며 살아”

“웃기네, 나 같은 모래가 만든 사구나 황무지 초원지대가 없었더라면 스코틀랜드 해안에서 골프가 태어났겠어?”

가만히 들어보니 골프코스와 벙커, 워터해져드가 서로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 서로 자기가 형이라 우기며 다투는 소리였다. 물론 재미있게 구성해 본 이야기다.

‘벙커 없는 코스는 헤드 없는 채와 같다’
‘벙커가 거기 있음에 나는 골프장에 간다’
‘골프장과 벙커는 바늘과 실과 같은 관계다’
‘심미안이 있는 골퍼에게 벙커는 장애물이 아니라  골프코스의 꽃으로 보인다’

이런 벙커 예찬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라운드 중 벙커는 ‘과연 필요악일까’라는 의구심을 버릴 수가 없다.

여주 K CC의 오너 J회장이 라운드 중 벙커에 자꾸 공이 빠지자,
“벙커가 왜 여기 있는 거야”라는 불평 한 마디에 바로 그 다음 주 많은 벙커가 잔디로 변했고 페어웨이 가장자리에 난이도를 주기 위해 심었던 조경수들도 대부분 사라졌다.

결국 그  골프장은 개성도 특징도 난이도도 없는 무미건조한 단순히 넓은 잔디밭에 불과해 졌다.

원래 벙커(Bunker)라는 단어의 일반적인 뜻은 배의 연료창고이며 군사용어로 지하 엄폐호다.
골프 룰북에서는 벙커를 ‘골프코스 특정 지역에 잔디나 토양 대신 모래나 혹은 비슷한 골재를 채워서 만들어 놓은 해져드’로 정의하고 있다.

섬나라 영국 스코틀란드 연안에는 해안과 육지를 이어주는 지역, 오랫동안 모래가 퇴적되어 형성된 사토질의 넓은 개활지가 많은데 이곳을 링커스(Linkers) 또는 링스랜드(Links land)라고 부른다.

군데 군데 모래구덩이가 있는 이런 퇴적층은 습기를 계속 머금고 있지 않아 뿌리 깊은 나무나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대신 잔디류 잡초와 덤불이 무성한 지대여서 양이나 토끼들만 먹이를 찾아 오는 거친 황무지 풀밭이었다.

이런 벌판으로 양치기 목동들이나 한여름 밤 백야에는 어부 농부 등 인근 주민들도 나와 심심풀이 놀이를 즐겼을 것이다.

이와 같이 사구(砂丘 Dunes)나 분지로 된  링크스랜드는 지형적으로 골프가 탄생될 수 있었던 최적여건을 갖춘 지역이었다.

지형 여건상 골프는 어쩔 수 없이 모래구덩이 벙커와 함께 태어났으며 영국에서는 골프코스를 아직도 지형 명칭인 링스 또는 링커스라 부른다.

지금도 스코틀랜드의 전통있는 골프장의 17%인 92개의 골프장은 링크스 코스(Links golf course)다.  영국의 ‘디 오픈(The Open: The British Open)’도 반드시 해안가의 링스코스에서만 개최된다.

라운드를 하다보면 가장 만나기 싫은 것이 벙커 헤져드와 워터 헤져드다.

특히 그린 주변의 깊은 벙커는 J회장의 경우처럼 박멸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로 악마의 아가리처럼 느껴진다.

벙커는 우선 피하고 싶어지지만 쉽지 않고 도전의식이 유발되어 성공과 좌절, 스릴있는 박진감을 맛볼 때 골프의 재미는 배가 된다.

벙커샷으로 홀에 붙였을 때 또는 벙커샷에 의한 Sandy 파나 Sandy 버디를 잡았을 때 느끼는 짜릿함은 일반샷에 비할 수가 없다.

특히 코스 디자이너의 눈에는 심미안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코스 윤곽을 결정짓는 좋은 수단이 벙커이기도 하다. 반면에 관리비 증가와 일부 고객들의 불평요인 진행지연 등의 부정적 면도 없지 않으나 이는 사실상 제한적이다.

따라서 명문 골프장으로 인정 받으려면  무엇보다 벙커의 위치 설계와 관리실태가 중요하다. 즉 벙커의 수와 위치, 모래의 종류, 벙커 깊이, 벙커 턱의 정비상태, 배수상태의 유지관리를 위한 꾸준한 투자가 요구 된다.

이처럼 골프는 링커스랜드에서 자연벙커와 함께 탄생할 수 밖에 없었던 전통으로 인해 지금도 내륙 오지 산을 깎아 건설되는 영국 이외 많은 나라의 골프코스에도 하얀 바다모래를 채운 벙커로 코스단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위 첫 머리의 재미있는 다툼에 끼어 든다면 필자는 벙커에게 판정승을 내려 주고 싶다. 최초 해안가 모래 퇴적층 초지에 의해 골프가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벙커 없는 골프장은 없다.
당신이 골生골死 골프광으로 골프장을 사랑한다면 벙커도 사랑하라.

벙커를 코스의 악마처럼 증오하지 말고 라운드 전략상 피할 수 없을 때는 맞부딪쳐셔 즐겨라.
벙커도 즐기는 경지에 도달하면 당신은 이미 고수반열에 올라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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