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고조선’의 역사적 진실 찾아 나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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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이성과 감성의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 韓民族 국가의 始原은 고조선이다.
고조선을 개국한 단군(檀君) 성조는 우리의 시조로서 추앙되었고,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은 우리 정치철학의 근본이 되었으며, 단군신화는 우리 토속신앙의 근간이 되었다.
그런데, 고조선은 선사시대에 형성되었다 소멸했던 국가로서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의 확보가 어려워, 역사학자들은 고조선의 역사에 대한 연구 자체를 꺼리고 있다.
또한, 이제까지 이루어진 연구결과는 역사관에 따른 일방적인 주장 일변도이어서, 고조선의 성립에서 소멸까지 전체 기간에 대한 합리적이고 통합적인 역사행적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주장 중에서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녔다고 인정되어 묵시적으로라도 대표 주장으로 인정받은 학설이 없다.
선사시대의 유구한 역사를 지녔으나 문헌기록이 절대 부족한 고조선의 국가 원류를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어느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고조선의 역사를 이해하여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일은, 오로지 최선을 다하여 역사 진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용기이자 가치일지도 모른다.
고조선을 지칭하는 ‘조선’의 존재를 알리는 문헌적인 기록은 상고시대의 사회상을 기록한 중국의 史書들에 여기저기 나타나는데, 《관자》나 《사기》 등에 조선(朝鮮)이라는 명칭으로 이웃 국가와 교역한 내용, 지리적 위치, 정치적인 관계, 주민의 풍습 등을 기록하였다.
이 기사들에 따르면 ‘조선’은 BCE 12세기 이전에 중원지방의 동북부 지역에 실존하였고, 중국인들이 이 ‘조선’의 존재와 위치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당시 중원 중심의 중국인에게 조선은 멀리 떨어져있는 주변 국가로서 직접적인 접촉이나 갈등의 기회가 적어 추상속의 국가로 인식하였던 면도 엿보인다.
또한, ‘조선’이라는 호칭을 문화·국호·지역.종족 등의 통칭으로 받아들여, ‘조선’이 ‘고조선과 관련된 모든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으며, 긴 세월동안에 여러 정치집단과 출현하여 주체가 다른 정치집단과 관련된 역사행적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이란 국호를 구분 없이 사용하였다.
따라서, 역사 행적이 발생한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조선’의 주체를 달리 이해해야 하는데, 선진문헌(先秦文獻)에서 사용한 ‘조선’과 《사기》에서 周나라 초 기자가 東來한 ‘조선’은 고조선이고,
기자의 東來 이후 《사기》 등에 기록된 ‘조선’은 기자조선(고조선 기자왕조)이며, 漢나라 시대에 《사기》나 《한서》 등에 위만이 ‘조선’의 왕위를 찬탈한 후의 ‘조선’은 위만조선(고조선 위만왕조)을 각각 지칭하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반면에, 한국의 고대 문헌들은 고조선의 건국을 명확히 기술하고 있는데, 고려시대에 저술•편찬된 史書인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를 原典으로 하여, 후대의 사서들은 대체로 두 문서의 기사에 내용을 추가하고 있다.
두 문헌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BCE 2333년에 단군이 장당경을 도읍으로 하여 단군조선을 건국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두 문헌이 편찬된 것은 고조선이 개국되고 3000년 이상이 지난 후의 일이고, 두 문헌의 본문이나 주석에는 건국 행적을 인용한 문헌들을 기재하지 않아서, 기술의 방법상 신화적 표현을 사용했던 것을 수용하더라도, 이들 史書에 기술된 단군의 건국 행적을 ‘역사적 事實’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한편, 우리의 最古 사서인 《삼국사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고조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한국의 상고대 국가에 대한 언급은 삼국사기 권29 「연표」에 “해동에 국가가 있는 것은 悠久하다.
기자가 주의 왕실에서 受封한 이래 위만이 漢나라 초에 號할 때까지 연대가 면막(綿邈)하나 문자가 疎略하여 詳考할 수 없다.”라고 한 것으로 조선의 유구한 존재를 인지하고 언급하기는 하였지만, 《삼국사기》에서 국가로서의 조선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중심이었다.
고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문헌들을 살펴보면, 상고시대의 역사 행적에 대한 기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시대와, 역사 행적의 기술이 없고 개국·도읍이동 등과 관련된 추상적 행적을 신화적인 기사로 표현한 선사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신화적 기사만 나타나는 시대를 ‘선사시대 고조선’으로, 역사 행적의 기록을 일부 활용할 수 있는 시대를 ‘역사시대 고조선’으로 구분하여, 시대별로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을 달리하고 있다.
‘역사시대 고조선’에 대한 접근은 문헌들을 기반으로 하여 고고학 등의 방증자료를 추가로 활용하여 종합하고, ‘선사시대 고조선’에서는 역사적 진실 규명에 도움을 주는 여러 과학 분야의 연구결과를 이용하여 진실 판단의 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史書에 단편적으로 나타나는 기사의 내용이나 핵심 용어를 행적 기사의 형태로 추론하여 앞에서 만든 진실 판단의 기반과 종합하는 방법으로 역사의 진실을 밝혀나간다.
이 연구에서 드러난 고조선을 위시한 韓民族 선사시대 역사의 다소 충격적인 진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조선은 BCE 20세기경 韓民族의 조상 종족들의 하나인 맥족이 동북아 요서지방에 형성한 나라로 BCE 195년 漢나라에 멸망당할 때까지 약 2000년간 요서지방에 실존했다. 즉, 고조선은 맥족의 시조 국가이었고, 성립된 후 BCE 11세기와 BCE 3세기에 왕조 교체가 있었다,
한편, 고조선의 이웃에는 韓民族의 다른 조상 종족인 예족이 요동지방과 한반도 북쪽 지방에 걸쳐 분포하였고 자체적인 정치집단을 형성하였다.
이 정치집단은 중국 고대 문헌에 ‘예’ 또는 ‘예맥’으로 표기되어 국가의 존재가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지만, 지리적으로 중원지방과 멀어 교류와 갈등의 역사 행적의 기록이 적었으며, 후대에 영토와 문화를 승계한 부여 및 고구려의 성립과 번성으로 소멸하였다.
즉, 예 또는 예맥은 예족이 초기에 형성하였던 정치체제로서, 문헌에 기록된 史實이 많지 않아 추가적인 역사의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한반도 중남부에는 韓族이 세운 많은 정치집단들이 존재하였는데, 중국의 사서에는 이를 통합하여 진국(辰國)으로 인식하였고,
이후에 진국이 분열되어 한반도 서부에는 마한, 동부에는 진한, 남부에는 변한이 존재하는 삼한(三韓)시대로 정의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78개의 소국들이 통합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는 사회이었다.
즉, 한반도 중남부에는 78개의 성읍국가 수준의 소국들이 존재하는 사회이었다.
후대에 삼국시대까지 변화는, 고조선이 멸망하자 맥족은 대규모로 요동지방과 한반도 북쪽 지방으로 이동하여 예족과 혼합하여 예맥족으로 통합되어 고구려를 세워 고대 왕국으로 발전하였고, 한반도의 마한 지역에는 백제가 주변국을 통합하여 고대 왕국으로 성장하였고,
또한 진한 지역에는 신라가 고대 왕국으로 성장하였으며, 변한 지역은 가야국들로 부분적 통합이 이루어졌으나 고대 왕국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신라에게 다시 합병되어, 고대 왕국들이 겨루는 삼국시대를 열었다.
이 글에서는 ‘선사시대 고조선’의 역사적 진실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기술하고, 다음 글에서는 ‘역사시대 고조선’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정리한다.
■ 전 건양대학교 Prime 창의융합대학 학장
■ 서울대 공대 졸
■ KIST 공학박사
■ 삼성 SDS 사업본부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