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미중 갈등까지… 불확실성 커진 반도체업계 ‘울상’
日 중국산 통신장비 사용금지 정책 강화… 화웨이 등 사실상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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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트럼프 대통령과 中 시진핑 주석. |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에 대한 전방위적 경제 봉쇄정책에 들어간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에 대한 중국 책임론과 안보 위협 등을 거론하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맹국들을 향한 반(反)화웨이 전선 참여를 거듭 압박하고 나서면서 우리 정부의 고심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경제번영네트워크서 중국 고립시켜
미국은 EPN 추진과 함께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 홍콩 보안법 제정 반대 등 다양한 이슈를 놓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중국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전방위적인 중국 때리기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에 참여할 경우 중국으로부터의 경제 보복과 공급망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놓칠 수 없고, 한중 관계 회복에도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돌파구를 찾기 위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해 IMF 이후 최악의 경제상황에 직면한 현재 상황에서 무엇보다 국익, 즉 국가경제를 최우선하는 정부의 외교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이른바 경제번영네트워크(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를 비롯,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구상을 가속하며 동맹의 참여를 촉구했다.
미·중 갈등 격화와 맞물려 양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국으로선 고민으로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 국무부의 발언록에 따르면 키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은 전날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자들과의 전화간담회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4월 29일 발표한 ‘5G(5세대) 클린 패스(Clean Path) 구상’을 거론,
“이는 화웨이와 ZTE(중싱통신) 등 신뢰할 수 없는 판매자가 공급하는 어떠한 5G 장비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는 믿을 수 없고 위험도가 높은 판매자들이 민감한 정보를 중국(PRC)의 수중으로 빼돌리는 능력을 차단함으로써 이들에 맞서는 최상의 안보 기준을 구현해준다”고 밝혔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의 외교 시설을 상대로 이러한 내용의 5G 클린 패스 구상'을 발표했다고 크라크 차관이 전했다.
크라크 차관은 “모든 대사관을 포함, 미국의 외교시설로 들어오거나 외교시설에서 나가는 5G 데이타는 신뢰받는 장비를 통해 전달돼야 한다”며 “나는 우리의 모든 동맹과 파트너들에게 여러분의 외교시설들에도 ‘5G 클린 패스’를 요구하는 데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미국은 지난달 15일(현지시간) 중국의 통신장비 및 휴대전화 생산 기업인 화웨이를 향해 초강도 압박 정책을 추가로 내놨다.
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의 특정 소프트웨어와 기술의 직접적 결과물인 반도체를 화웨이가 취득하는 것을 전략적으로 겨냥한 수출 규정 개정에 나섰다”고 밝혔다.
미국은 그동안 미국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화웨이로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그러나 개정 규정에서는 미국의 기술을 활용하는 해외 기업도 화웨이에 특정 반도체를 공급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까지 제재 우려
화웨이 역시 미국의 특정 소프트웨어나 기술과 관련된 반도체를 구입하거나 반도체 설계를 활용할 경우 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화웨이는 반도체 조달 길이 대폭 봉쇄돼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는 이번 조치가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이자 화웨이의 핵심 공급자인 대만 TSMC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미국 기업이지만 미국 밖에서 생산한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해온 인텔이나 퀄컴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이같은 제재는 비메모리 반도체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직접적인 불이익을 준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먼저 화웨이에 D램과 낸드플래시를 납품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이 연간 10조원 안팎에서 제로 수준으로 줄어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이들 업체들은 판매처를 다각화하는 노력을 통해 매출 감소를 상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더 큰 고민은 미국이 화웨이의 스파이 행위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업계까지 제재를 확대하는 경우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규제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의 수를 감안한 전략을 짜는게 기업의 일”이라면서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물론 일본의 수출규제, 코로나 사태 등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日, 중국산 통신장비 기기 사용 금지
일본 정부도 중국산 통신장비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강화한다. 중국산 통신장비를 배제해 미국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다.
지난달 27일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해 4월 중앙 부처가 통신장비를 구입할 때 보안 위험, 가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입하도록 결정한 바 있다. 사실상 화웨이와 중싱통신(中興通訊•ZTE)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는 관련 대상을 ‘중앙 부처’에서 모든 행정 법인과 국민의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지정 법인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새롭게 대상에 오르는 기관들은 96개 법인이다. 구체적으로는 ▲연금 적립금 관리 운용 독립 행정법인, 산업 기술 종합 연구소, 일본원자력 연구 개발 기구 등 87개 독립 법인 ▲ 일본 연금 기구, 마이넘버 관련 시스템 운용 지방 공공단체정보 시스템 기구 등 지정 9개 법인 등이다.
일본 정부는 오는 6월 이들 법인을 소관하는 부처를 통해 새로운 지침을 전달할 예정이다. 각 법인은 내각 이버 세큐리티 센터 등과 상담한 통신장비 구매처를 결정하게 된다.
센터는 안보 위험이 있는 기업일 경우 구입을 삼가라고 요구한다. 사실상 중국산 장비를 구입할 수 없을 전망이다.
미국은 화훼이, ZTE 등 중국 기업의 통신기기 장비를 둘러싸고 안보 위협 우려가 있다며 정부 기관 및 정부 거래 기업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도 미국에 발 맞춰 정책 강화에 나서는 셈이다.
고윤주 외교부 북미국장은 지난 20일 한미 언론 합동 토론회에서 “미중 경쟁 속에서 한국 외교의 입지에 대해서는 몇 년 전부터 계속 고민해 왔다”며 “현실적인 미중 갈등 구조 하에서 우리의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는 지가 실무 외교관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했다.
다만 고 국장은 “코로나19 협력을 통해 미중 관계 갈등 국면을 완충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며 “남북 관계 개선을 잘 활용해 나가면 우리한테 주어진 외교 공간이라는게 현실적으로 선택을 강요하는 부분은 아니라고 믿고, 실무적으로 그런 공간을 확대해 나가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사태의 대응 과정에서 증명된 한국 방역 모델의 우수성은 한국 외교가 추진하는 역내 협력 원칙에 투명성과 신뢰성을 제공하고, 미·중의 요구에 대해 보편적 원칙에 기반해 국익을 추구하는 한국형 중견국 외교가 명분적 우월성 뿐만 아니라 실리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현주
기자oldage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