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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45호 ‘공주 의당 집터 다지기’ 모습. |
지금까지 5회에 걸쳐 연재한 ‘2020 윤년에 재조명해 본 풍수지리’이야기를 총정리해 본다.
자연환경에는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며 그 법칙에 따라 길(吉)한 곳과 흉(凶)한 곳으로 나눌 수 있다는 전통적인 자연관이 곧 풍수지리의 기본사상이다.
태풍 홍수와 같은 자연현상, 자연이 부리는 심술은 인간의 삶을 황폐화 시킨다.
또 무리한 개발로 자연을 파괴해서 생기는 폐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결국 인간은 자연과 서로 조화하며 살아갈 때 편안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이런 조화의 기술이자 예술이요 과거 경험치를 바탕으로 이루어 낸 생활과학이 바로 풍수지리다.
풍수지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은 땅의 기운인 지기(地氣)다.
땅에는 일정 경로를 따라 기(氣)가 흐르는데 바로 기가 충만한 혈(穴)자리 소위 명당을 찾는 기술이 풍수의 핵심이다.
자연환경에는 가장 중요한 산(山), 수(水), 풍(風)의 3대 요소가 있는데, 풍수지리에서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성질을 담고 있어서 만물의 삶과 죽음, 나아가 삼라만상의 흥망성쇠까지도 결정 짓는다고 보고 있다.
산과 물과 바람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음양(陰陽)이 적절히 배합된 지형은 곧 살기 좋은 자연환경인 길지(吉地)로서, 만물이 윤택하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곳으로 보고 있다.
풍수 전문가들은 이런 좋은 지형적 여건들을 모두 풍수의 핵심 이론인 명당발복설(明堂 發福說)이나 동기감응설(同氣感應說)의 전제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서 풍수지리는 조상들의 생각과 경험이 반영된 사람과 자연의 친화를 추구하는 지혜로운 택지선택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기본욕구다.
집터를 구할 때 주변의 기(氣)와 자신의 기가 조화를 이뤄 안락함을 느낀다면 더 이상의 좋은 곳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곳이 바로 좋은 집터 명당 자리다. 부모의 산소에 누워서 편안함이 느껴지면 그 또한 좋은 묏자리가 되지 않겠는가.
풍수지리가 사람이 살기 좋은 양기(陽基)에 살거나 좋은 음택에 조상을 묻으면 부귀를 누리고 자손이 번성해 행복해진다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면 그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세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은 풍수지리학적 으로 분석하면 집 뒤의 산은 집에 생기(生氣)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이 생기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멈춘다. 따라서 집 뒤의 산은 바람을 막아주고 집으로 들어온 생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지형이 된다.
또한 집 앞의 물은 산으로부터 흘러온 땅의 기(氣)를 모아 그것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이 때문에 배산임수 지형은 산천의 생기를 북돋아 만물을 잘 자라도록 하는 명당이 된다는 논리다.
땅의 기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이런 지리적 여건은 그 자체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편안한 위치다. 즉 산에서 땔감과 나물을 얻고 하천의 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어 삶을 영위하는데 많은 이득을 누릴 수 있다.
또 남향집은 겨울에는 햇빛을 많이 받아 따뜻하고 여름에는 바람이 잘 통해 시원해 주택을 위한 최적의 방위다.
풍수지리를 믿지 않는 사람조차 집을 살 때 남향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런 조건들이 현실적이고 지리과학적 근거도 되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 풍수지리의 과학적 진실을 둘러싼 논란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풍수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수 천 년간 조상들이 축적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통계학적 지리지질학적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는 생활철학이자 과학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같은 풍수지리적 사고는 중국 전국(戰國)시대 말기가 그 효시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이전에 유입됐다고 한다.
초기 풍수지리는 단순히 자연재해의 위험을 피하기 위함이었지만, 차츰 나라의 도읍을 정하고 성과 궁궐을 짓는 데까지 범위가 확장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제4대 왕인 탈해왕이 왕좌에 등극하기 전 산에 올라 현월형(弦月形)의 택지(宅地)를 발견하고 속임수까지 써서그 택지를 빼앗으면서 후에 왕에 올랐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신라 말기에는 우리나라 풍수의 원조로 불리는 승려 도선(道詵 827~898)이 있었다.
도선은 중국 당나라의 풍수를 국내에 처음 전했으며 이를 세상을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봤다. 그의 저서 ‘도선비기’(道詵秘記)에는 ‘지리는 쇠왕(衰旺)과 순역(順逆)이 있어 왕지(旺地)와 순지(順地)를 택해 거주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것은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풍수에 관한 원전(原典)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국가차원에서 풍수를 수용할 정도로 관심이 지극해서 주로 왕도의 흥망성쇠와 관련된 양택(陽宅)풍수가 크게 성행했다.
특히 도읍지 지기(地氣)의 쇠왕에 따른 천도문제까지 제기하기도 했었는데, 승려 묘청(妙淸 ?~1135)이 난을 일으켜 서경천도(西京遷都)운동을 주도한 것도 이런 풍수적 배경 때문이다.
유교사상이 통치철학의 중심이 되었던 조선시대의 풍수지리는 국가적 대사의 결정보다는 가족주의와 효(孝)사상을 기반으로 한 묏자리 선택에 큰 비중을 보였다.
이런 풍수사상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서 조차 일본인들이 조선의 정기(精氣)를 끊기 위해 전국 각지의 명당에 쇠말뚝을 박았다.
또 조선왕조의 기를 차단하기 위해 경복궁의 시야를 가려서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기도 했고, 이에 우리나라는 1996년 다시 그 건물을 완전 철거해 버렸다.
풍수적 사고는 오늘날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공장, 사무실, 행정관청 등의 입지선정에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풍수지리연합회측 자료에 의하면 현재 국내에서 풍수지리를 연구하며 활동하고 있는 풍수가도 전국적으로 약 30만 명에 이를 정도다.
풍수에 대한 관심은 나라 밖에서도 다르지 않다. 중국,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 동양의 여러 나라들은 물론이고, 세계적 웰빙코드와 발맞춰 최근에는 미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서양권에서도 풍수지리에 입각한 건축과 인테리어가 인기를 얻고 있다.
대표적인 첨단 도시국가 홍콩은 오래 전부터 풍수를 거의 생활화하고 있어서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사안을 풍수가와 상의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에서도 ‘펭수이’(風水 Feng Shui)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저택과 고층빌딩을 지을 때 풍수가들이 동원되고 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을 개조하면서 풍수가에 인테리어를 맡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도 풍수를 적용하여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 과학적 근거나 논리를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마음이 흡족해지고 생활이 편리해 진다면 풍수를 생활화 하는 것도 현대인의 현명한 생활철학이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