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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읽는 한국의 기원 ➌ 선사시대 고조선 3

최현수 교수(KAIST 공학박사/전 건양대학교 Prime 창의융합대학 학장)
‘선사시대 고조선’의 역사적 진실 찾아 나가는 과정

한민족의 기원 종족들과 그 분포 지역

韓民族을 구성하는 조상 종족으로, 요서지방에 분포한 ‘맥족’과 요동지방에 분포한 ‘예족’ 및 한반도 중남부에 분포한 ‘한족’(韓族, 삼한족)이 있다고 한다.

이들 종족들은 5천 년 전에 황해 바다 평원을 떠나 새로 생겨난 큰 하천 유역으로 이동하여 그곳의 토착민과 융합되었는데, 맥족은 난하와 요하 사이의 요서지방에, 예족은 송화강·압록강에 걸친 요동지방에 한족은 대동강에서 한강과 영산강 사이의 한반도 중남부에 정착한 것으로 판단된다.

선사시대에는 모계중심 사회가 발달하여 여성을 통하여 종족의 유전자가 전달되었다고 세계의 생물학계는 판단하고 있다. 최근에 수행된 ‘국가별·지역별 여성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비교 연구’에서 대한민국 여성 유전자와 중국 산동성 지역의 여성 유전자의 구조가 가장 근접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연구결과는 현재 인종적 근접정도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매우 이상해 보이지만, 선사시대에 동북아에서 일어난 인류 이동의 역사를 이해한다면 매우 당연한 결과이다.

즉, 5천 년 전 동북아 지각변동 이전에는 지금의 황해와 발해 바다는 광활한 평원지대이었고, 이 평원의 한 지역에서 함께 살던 부족들이, 한 부류는 한반도 남부에 또 한 부류는 산동지역에 이동하여 정착한 것이고,

이후 동북아의 험난하고 긴 역사에서도 두 지역은 다른 종족과 혼혈의 기회가 적었다는 史實을 감안하면, 종족의 뿌리가 같고 과거 같은 자연환경에서 오랜 기간 함게 살던 사람들이 흩어져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지만 아직 그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다른 종족과의 혼혈이 적게 일어났다면 오랜 세월이 흘렀고 살아가는 지역과 국적은 달라도 유전자가 매우 비슷한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2. 동북아의 선사시대 문명
 6만~7만 년 전 동북아에 도착한 우리의 조상들은 빙하로 덮인 산악지대를 피해 하천이 가깝고 주거에 필요한 동굴이 있는 산자락에 흩어져 정착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동굴 주거지를 중심으로 채집과 수렵 생활을 하였고, 깬 돌 도구[타제석기(打製石器)]를 사용하는 구석기시대가 전개되었다.

1만2천 년 전부터 마지막 간빙기에 들어서자, 기후는 전보다 더 따뜻해지고 물도 풍부해져 자연환경이 좋아졌고, 이에 따라 우리 조상은 하천 유역이나 해안 유역으로 이동하여 채집생활에 추가하여 어로와 농사로 삶의 수단이 고도화되었다.



이후, 인구가 늘어나고 분포지역이 넓어졌으며 새로운 문화가 발달하였는데, 이때부터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고 이를 불에 굽는 기술로 만드는 구운 토기를 사용하였고, 거친 돌을 갈아 만드는 간 석기[마제석기(磨製石器)]를 사용하는 신석기 시대의 문화가 전개되었다.

이런 환경이던 동북아에는 6천~5천 년 전 큰 지각변동이 일어나자, 황해 일대에 대평원으로 존재했던 지역이 황해와 발해로 바뀌었고, 이 평원지역에 살던 동북아의 인류는 삶의 터전을 잃고 황해와 발해 연안 유역은 물론 그 유역들의 내륙지방 및 멀리는 몽고의 초원지대로도 대거 이동하게 되었다.

이주민들은 도착지의 토착민들과 석이며 인종 혼혈과 문화 융합이 일어났으며, 정착한 여러 지역에서 같은 자연환경과 사회생활을 공유하는 부족들이 더 큰 집단으로 통합되어 지역에 기반을 둔 종족들이 출현하였다.

당시 동북아에서 생활여건이 가장 좋은 지역이 발해연안 유역이었으므로, 여러 종족들이 발해연안 유역에 정착하여 나름대로의 문명을 발달시켜서, 발해연안 유역에서는 수많은 신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BCE 20세기를 전후한 동북아 지역의 정치사회 모습을 그려보면, 생활이 편리하고 産物 생산이 용이한 지역의 부족들을 중심으로 인구가 늘어나자, 생활공동체의 분포지역이 넓어져 이웃 종족들과 갈등이 생겨났고 공동체 내부의 접촉이 많아지며 부족사회의 갈등이 늘어나게 되었다.

공동체 내외부의 이런 사회적 갈등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연적으로 부족장연합체 형태의 정치제도가 생겨나, 부족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생활공동체를 수호하게 되었다.

또한, 사회적인 경쟁력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신석기 및 청동기 기술 등을 이용하여 부락 공동의 공용 무기나 도구를 만들어 활용하고 개인의 생활도구 등을 만들어 분배하는 전문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를 뒷받침하는 체계로 사회 구성원의 기능적 분화가 일어났고, 사유재산제와 아울러 사회재산의 공유제도가 생겨났다.

또한, 외부에 부족장연합체를 대표하고 종족의 신(神)과 교감하고 받들어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제사장이 나타나게 되었다.

우리가 문헌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 고조선의 연구결과에 주목하는 것은 지난 50여 년 간 발해연안(渤海沿岸) 유역에 대한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 및 초기 철기시대에 걸친 고고학적 연구의 결과이다.

여기서 발해연안 유역이라 함은 발해를 중심으로 남부의 중국 산동(山東)지역, 서부의 하북성 동부지역 일대, 북부의 요녕성 일대(요서지방), 요하 북동쪽과 길림성 중남부의 요동(遼東)지방, 동부의 한반도를 포함하는 넓은 영역을 일컫는다.

오천년 전에 황해·발해 지역의 큰 지각변동이 있은 이래로 발해연안 유역은 우리 조상이 되는 맥족·예족·한족이 모두 분포하였던 지역으로서 韓民族의 역사와 관계가 깊은 지역인데, 특히 선사시대에 맥족이 형성해 발달시킨 고조선(古朝鮮)의 흥망성쇠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글쓴이 - 최현수 교수

■ 전 건양대학교 Prime 창의융합대학 학장
■ 서울대 공대 졸
■ KAIST 공학박사
■ 삼성 SDS 사업본부장 역임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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