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이 태능CC에서 라운드 중 그늘집도 아닌 소나무 그늘에 좌정하시고 막걸리를 시켜다 마신 일화는 유명하다.
업무상 중국을 자주 다닌 필자는 중국 명주 마오타이 맛을 익히 알고 있었다.
20여 년 전 고교동창들과 겨울 라운드 시에는 반드시 휴대용 술병 캔틴에 52도 마오타이를 덜어 담아 골프백에 넣고 병뚜껑으로 친구들과 나눠 마셨다.
한 잔 씩이면 몸도 따뜻해지고 샷에 지장도 없었다. 요즘도 여름이면 얼린 막걸리를 갖고 오는 애주가 골퍼들도 있다.
경기 도중 혹은 휴식시간에 술을 즐기는 운동은 모든 스포츠 중에서 골프가 유일하다. 골프가 재미있는 이유 중의 하나도 술을 즐기면서 칠 수 있기 때문이다.
愛酒골狂들에게 한 잔씩 곁들이는 라운드는 긍정적 심리효과로 건강에도 대단히 좋다. 이래서 골프가 이승에서 즐기는 최고의 스포츠라고 했나 보다. 술이 약한 사람도 라운드 중 시원한 생맥주 한 모금이나 따뜻한 정종 한 입술은 술맛의 극치를 느끼게 한다.
따라서 한 잔이 없는 라운드에는 흥미를 잃을 애주골광들도 많을 것 같다. 다섯 시간 동안 극도로 긴장하고 집중하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이런 긴장감을 해소하는 데는 술이 최고의 촉매제라고 정신과 의사들도 말한다.
‘골프 해방구’(Gallery’s Liberation Zone)라고 불리는 美 아리조나 주 피닉스 오픈(Phoenix Open, Scott’s Dale TPC 파 71)에서는 겔러리들이 그린 옆에서 한 잔하고 고성방가 해도 된다.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춤과 술판이 벌어지는가 하면 치맥 파티도 곳곳에서 열린다. 골프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겠지만 이 대회에서는 골프도 중요하지만 라운드 중 술을 즐기던 과거의 전통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술은 적당량을 마시면 긴장과 불안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골프 그 자체를 중요시 하거나 꼭 이기고 싶은 중요한 경기라면 음주는 삼가야 한다.
사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정종이나 한여름 시원한 생맥주 몇 잔 곁들이면 공이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라운드 직전이나 도중에 마시면 소뇌의 균형조절 기능을 저하시켜 근육이 너무 풀리고 집중력과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때문에 공은 생각보다 자꾸 다른 방향으로 날아간다.
특히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퍼팅이나 드라이버 샷은 알콜이 들어가면 미스샷 확률이 높아진다.
골프규칙에도 시합 중 음주를 금한다는 별도의 규정은 없다.
2017년 부터 혈액검사를 통한 도핑 테스트 프로그램이 도입되었지만 알콜은 금지 약물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장타자 죤 델리는 술에 의존하여 플레이를 했었고 가정문제로 슬럼프에 빠졌던 타이거 우즈도 음주운전으로 체포되기도 했었다.
골프 근대사에서 골프와 술의 관계는 술 제조업자들에 의해 더 가까워졌다. 그들은 골프와 술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탄생되었다는 친밀성을 이용하여 술제품 마케팅을 하고 있다. 그들의 브랜드를 걸고 챔피언쉽이나 토너먼트를 빈번하게 개최하며 선수들의 스폰서로 나서고 있다.
조니워커 클래식, 발렌타인 챔피언십, 하이트 진로배 처럼 단일업종으로는 주류업체가 골프대회에 가장 많은 이름을 내걸고 있다.
그레그 노먼과 어니 엘스는 유명 와이너리 소유자이며 또 많은 선수들은 그들의 이름을 붙인 브랜드로 와인을 출시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명해진 골프와인 ‘1865’는 18홀에 65타 라는 골퍼들의 소망을 담은 판촉을 하여 인기를 얻고 있고 이런 류의 골프와인이 많아졌다. 사실 이 숫자는 제조사 칠레 San Pedro사의 창업연도다.
스코틀란드에서 같이 태어난 골프와 술은 비슷한 탄생배경으로 공통점이 너무나 많다. 술은 쏠 사람 골프는 내기에서 잃어 줄 동반자 즉 하나의 물주가 꼭 필요하다.
술도 골프도 장시간 함께 해보면 가려져 있던 그 사람 속이 다 드러난다. 또 한 두 번 약속을 어기거나 거절하면 술자리나 라운드에 다시는 불러 주지 않는다. 골프약속이나 술자리 초청은 절대 어기거나 거절하지 말라는 뜻이다.
오 헨리는, “남자가 첫 잔을 들 때와 여자가 마지막 잔을 들 때는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골프와 술이 만나면 첫 잔 ‘티업 발동잔’, 중간 ‘가속잔’, 마지막 ‘19홀 잔’까지 즐거움에서 시작 즐거움으로 끝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술이 과하면 공은 잘 안 맞지만 친밀감 인적 네트워크 즉 생애 최대의 자산이 확대되는 특성이 있어서 골프와 술은 양날의 칼과도 같다. 만사에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 하듯이 술도 적당히 즉 중용(中庸)의 도(道)가 필요하다.
‘얼굴은 거울에 비치고 인격은 술에, 성격은 골프코스에 비친다’고 한다.
올바른 골퍼라면 어디까지나 골프가 主이고 술은 客일 뿐 주객을 전도시켜서는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