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 문화 유사 적석총, 한국 고대 국가서 사용된 묘제 형태
홍산 문화의 주요 유적지인 대능하 상류지역 요녕성 우하량 유적에서 돌무덤(총), 신전(묘), 제단(단)이 한꺼번에 발굴되었고, 석묘계(石墓系)의 두 양식으로 적석총과 석관묘가 나왔다.
적석총(돌무지무덤)은 돌을 쌓아 묘실을 구성하는 돌무덤이고, 석관묘(돌널무덤)는 돌 판으로 관을 짜서 묻는 방식의 무덤이다.
홍산 문화의 것과 유사한 적석총은 고구려· 부여· 백제· 신라 등 한국의 고대 국가에서 사용된 묘제로서, 홍산 문화의 유산들이 어떤 형태로든 전파과정을 거쳐 우리의 고대 국가들에 전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우하량에서 발견된 여러 돌무덤 중에서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제 2지점의 석관묘인데, 중앙에 大墓인 적석총을 두고 그것을 에워싼 27기의 小墓인 석관묘를 두었다는 점이다.
이 무덤 군의 형태를 두고, 정치체제의 발전으로 해석하여 계층화된 통치체계를 주장하는 학설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선사시대에 동아시아의 사회발전 수준으로 보아 이 시기에 계층화된 통치 구조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자연신 및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사장들의 출현과 그 권위의 승계 구조가 나타난 것으로 판단하며, 홍산 문화 시대에 제사장은 각종 제례행사를 주관하는 종교적 권위를 넘어서, 주민들의 협동을 동원할 수 있는 통치적인 권위도 보유하였고, 그의 사후에는 후임자에게 권위가 승계되는 제정일치의 사회였다고 추정한다.
홍산 문화의 분묘에서 비취 등의 석재로 동물의 형태를 조각한 장식품이 많이 출토되었다. 동물의 종류는 돼지, 호랑이, 새 외에도 용을 새긴 것도 발견되고 있다.
또, ‘저룡(猪龍)’ 또는 ‘옥저룡(玉猪龍)’이나 ‘옥웅룡(玉熊龍)’등으로 불리는 홍산 문화의 옥용의 조형은 단순한 편으로 용이 원형인 것이 많지만, 후기에는 반용(盤龍), 문용(紋龍) 등의 복잡한 조형이 나타나 전후기가 구별된다.
이중에서 저룡(猪龍)과 옥저룡(玉猪龍) 형태의 용의 모양은 중국에서 시작했다고 알려진 용 숭배의 근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출토된 옥 장식들은 높은 수준의 공예 작품들로서 홍산 문화의 큰 특징이 되고 있다. 그런데, 玉(옥)의 가공과 장식의 제작에는 여러 전문가들이 필요한데, 부장물로 나오는 많은 옥 제품을 제작했던 것으로 보아 전문화를 위한 사회적인 분업화가 이루어졌고, 옥을 사용하는 종교 또는 정치적인 지배층이 나타났다고 추정한다.
홍산 문화에서 나타나는 도기는 진흙 홍도 및 협사회도(夾沙灰陶)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고 붓으로 그림을 그린 채도(채문 토기)는 취사나 식사 등에 사용되었고, 문양이 새겨진 협사회도는 음식을 담아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다른 도기들에서는 임산부를 본뜬 흉상이 여러 곳에서 출토되었다.
홍산 문화에서는 양사오 문화와 같은 채도 문화는 발달하지 않았지만, 룽산 문화의 흑도와 같은 세련된 조형미를 가졌다.
홍산 문화는 일찍이 발견되었으나 묻혀 있다가 현대에 들어서 대대적인 유적과 유물의 발굴이 이루어진 것은, 세계 강국이 된 중국이 위대함을 띄우려는 정치적 의도로 발굴이 추진된 것이기는 하였지만, 이를 통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우리도 대륙의 역사를 다시 연구하여 우리의 상고대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위한 많은 자료와 물증들을 확보하게 되었다.
홍산 문화의 발굴과 연구 결과에 의하면, 홍산 문화는 한국의 상고대 역사 및 문화에 끼친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나서, 이를 연구하여 우리의 선사고대나 상고대의 역사 및 문화의 실체를 다시 규명하는 여러 가지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우리 대륙의 역사가 상당부분 규명되기도 하였으나, 반대로 홍산 문화가 우리 역사에 끼친 영향에 대한 긍정론과 부정론이 제기되며 역사 논쟁이 가열되었다.
먼저, 홍산 문화 해석의 긍정론을 살펴본다.
1)적석총 - '돌무지무덤'이라 불리는 적석총이나 고인돌은 韓民族 고유의 무덤형태이었다. 반면에 중국 화하족은 땅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시신과 유물을 안장하는 토광묘를 써왔고, 주(周)나라 시대에 와서야 나무로 관을 짜서 묘실을 만드는 목관묘를 사용하였다.
석묘계의 묘제를 채용하고 있는 나라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등으로, 홍산 문화는 한민족(韓民族)의 고대 국가의 문화에 이어졌다.
2)수암옥 - 홍산문화와 흥륭문화에서 발견된 옥기의 재질은 수암옥(압록강 바로 위, 수암)인데, 같은 요하문명인 흥륭와에서 나온 옥귀걸이와 동일한 형태가 강원도 고성에서도 발견되었다. 6천여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흥륭와 옥귀걸이, 사해 옥귀걸이, 고성 문암리 옥귀걸이의 모양이 모두 같은 것은 그 당시 이 세지역이 서로 단일 문화권이라는 증거이다.
3)웅녀상 - 곰을 大地의 神으로 인식한 것은 한민족 고유의 토템이다. 웅녀상은 여러 개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웅녀국의 후예들이 조상신을 숭배한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가면과 玉(옥) 장식 등에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대거 발견돼 곰 토템을 지닌 웅족의 거주지로서, 홍산문화는 단군조선 건국의 토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4)용봉문화 - 천자문화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채옹'도 인정했듯이 천자문화는 한민족으로부터 나온 문화이다.
5)지리적 위치 - 요하문명이 발달했던 지역은 선사시대에 고조선의 분포지역이었다.
6)유전자 분석 - 홍산 문화에서 나온 유골을 mtDNA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분포를 나타낸 35.71%가 'N9a-16172'라는 하위 변이에 속하는데, 이는 중국 漢族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고, 대부분 한국인과 일본인의 유전자에서 나타나는 변이이다. 실제로 현대 한국인중 6~7%는 이 유전자변이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7)빗살무늬토기 - 토기는 황하 지역과 다른 지역의 것이 큰 차이를 보이는데, 홍산 문화 지역에서 발굴된 것은 빗살무늬토기이다. 빗살무늬토기는 요서 일대와 흑룡강 중·하류 지역, 한반도, 일본 등지에서 발굴되는데, 토기의 특성으로 보면 홍산 문화는 동북아 문화권에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6천 년 전에 홍산 문화가 형성된 요서 동부 지방과 요동지방· 한반도· 일본열도에는 중국의 황하문명과 다른 문화권역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며, 이 문화는 후에 고조선, 부여 등 동북아시아의 여러 종족 국가에 전파되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