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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들

누가복음 9장 62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따라 나서는 사람들에게 앞을 보고 나아가는 사명의 중요성과 긴박성 판단력을 요구하심입니다. 사명을 받아 큰 일을 맡아 나가는 자들은뒤 보다는 앞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개인의 인생도 그렇고, 회사의 진로도 그렇고, 국가는 더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때때로 뒤를 돌아 봐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자동차에도 백미러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세간의 정치적 흐름을 보면 너무 과거에 몰입되어 있는 듯 합니다. 친일파 논란, 위안부 문제, 적폐청산, 대한민국 건국논쟁 등등.

그러나 예수님의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은 지나칠 정도로 과거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마태의 세리행적, 간음한 여인의 과거, 남편이 5명이었던 수가동네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 심지어 가장 믿었던 베드로의 배반도 예수님은 용서하시고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앞으로의  중요한 사명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의 공통적 병변도 과거 집착증이라고 들었습니다. 뒤만 보고 걷는 자는 분명 쫓기는 자이거나 도둑입니다.

며칠전  광복절 그 기쁜날에  참으로 유감스러운 보도를 접했습니다.
치사를 하는 사람이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부정하고, 애국가를 부정하고, 풍전등화에서 조국을 지킨 백선엽 장군을 폄하하는 모습을 보고 그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무엇하러 모여 기념식을 올리는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왜 도요다 다이주우는 언급이 없었습니까?

연설대에는 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없어지고 이름도 없는 “우리나라”가 버젖이 국민을 세뇌시키고 있었습니다.

또 공교롭게도 대부분 그들이 비판하는 이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광복회 회장이라는 직책을 누가 준 것인지도  분별 못하는 고도로 기획된 세뇌용 원고읽기 경축사에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은 다 공과 과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잣대라면  세종대왕이야말로 천하의 나쁜 임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순신은 또 어떻고  안중근인들  알려지지 않은 허물의 과거가 없겠습니까.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우리 민족 최고의 역사적 사건 기념회장을 맡은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누구의 나팔수로 꼭두각시 춤을 추는지 추악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명자란 일을 명령으로 받은 사람입니다. 지령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핸들을 단단히 잡고 엑셀과 브레이크를 잘 사용하면서 전방을 주시하고 때때로 백미러를 한 번씩 돌아보는 운전과도 같이 우리는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거리에 한 번 나가 보십시요. 뒷걸음질로 가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걸음거리를 뒷걸음질 하면 정신 나간 이상한 사람입니다.

생각의 뒷걸음질을 하는 자 역시 정신나간 사람입니다. 혹자는 ‘민주주의가 원래 이런 거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자기의 생각을 말할 것이 아니고 역사의 진실을 말해야 했습니다. 만약 그가 그것이 역사의 진실이라고 말한다면 그를 임명한 사람의 실책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가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면 그는 올무에 걸린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다시금  되새기며 나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어리석음이 없는지 성찰해 나아갑시다.

“이랴! 이랴 ! 좌로  좌로 우로 우로”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논에 나가 아버지가 쟁기질하는 모습을 뚝에 앉아 지켜보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자로 줄긋듯 일직선으로 난 고랑이 신비로왔습니다. 우리 사회의 쟁기질 한 골이 내눈에는 너무나 비뚤빼툴해 보입니다. 뒤를 돌아보며 쟁기질한 소일까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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