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골프시즌 오뉴월 필드에 가면 화려한 철쭉이 먼저 눈을 즐겁게 하고 라일락과 아카시아의 진한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그런데 라운드 때면 빠짐없이 나타나 응원구호를 외쳐대서 귀를 즐겁게 하는 단골 갤러리가 있다.
신록의 새잎새들 사이로 아카시아 꽃향기를 타고 들려오는 노래, 단조로운 음정과 박자이지만 라운드 내내 지칠 줄 모르고 쩌렁쩌렁 울리는 그 소프라노 응원가는 결코 싫지가 않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
이 골프장의 진객(珍客), 단골 갤러리는 ‘검은등뻐꾸기’(Indian Cuckoo)로 봄부터 한반도에 날아오는 뻐꾸기과의 여름철새다.
배는 얼룩말 무늬에 머리와 가슴은 회색, 등과 꼬리는 어두운 회갈색, 꼬리 끝부분에 검은색 띠가 있다.
뻐꾸기는 보통 2 음절로 ‘뻐꾹 뻐꾹’ 하지만 검은등뻐꾸기는 ‘홀딱 벗고’라며 우는 것 처럼 들리는데 철저한 ‘4음절 4박자’에 음정은 ‘도시시솔’이다.
요즘처럼 성적(性的) 피해에 예민한 시대에는 엄청난 성희롱에 해당되지만 아무도 이 새를 고소하는 이는 없다. 오히려 라운드 중 이런 양념이 없으면 라운드 맛이 무미건조해지고 반드시 있어야 할 웃음거리 이야기가 빠진 것처럼 허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뻐꾸기 종(種)도 교활하고 비겁할 정도로 탁란(托卵)으로 새끼를 키운다. 탁란의 대상은 주로 붉은머리 오목눈이로 참새보다도 작은 새이며, 뱁새 또는 ‘비비비’하며 울어 된다고 비비새라고도 한다.
검은등뻐꾸기가 계속 울어대는 것은 사실 수컷이 짝을 찾거나, 탁란 탁아둥지의 새끼에게 진짜 부모는 바로 여기에 있음을 각인시키기 위함으로 알려져 있다. 암컷의 울음은 숫컷과 전혀 다르다.
어릴적 시골에서는, ‘일어나라 일어나라, 학교 가라 학교 가라’ 또는 ‘너도 먹고 나도 먹고, 풀빵 사 줘, 풀빵 사 줘’ 로 들렸다. 산속 절간 스님들에게는 ‘빡빡 밀고, 머리 깎고’로 들린다고 한다.
복효근 시인은 ‘검은등뻐꾸기의 전언’이라는 시에서, 아랫도리만 벗고 덤비는 성급한 남정네들에게 ‘홀딱 벗고 홀딱 벗고’라며 조롱을 한다고 읊었다.
특히 라운드에 심취해 있는 골퍼들에게는 샷할 때마다 이 새의 울음은 또 다르게 들린다.
드라이버 샷 미스하면 … “힘 좀 빼라~ ~”
숏퍼팅 놓치면… “바보 등신~ ~”
호쾌한 드라이버 장타 … “오빠 만세~ ~”
버디 한 방 잡으면… “돈 좀 되네, 축하해요”
러프에서 알 까는 비양심 골퍼에게는… “알 깐대요 ~ ~”로 들린다.
부적절한 관계와의 라운드 시… “들통 난다~~”
젊은 커플들의 라운드에는… “오빠 최고 ~ ~”로 들린다고 한다.
이처럼 ‘홀딱벗고’ 뻐꾸기가 사랑 받는 이유는 그의 노래가사를 누구나 자기 입맛대로 고쳐 불러도 다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점이다.
이 새에 대한 믿거나 말거나 전설 중 가장 그럴듯한 버젼은, 어느 산사(山寺)의 큰 스님이 수행(修行) 중 남편을 여의고 100일 기도차 절에 온 한 여인의 아름다움에 그만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다.
목탁을 치며 속세의 번뇌를 떨치려고 마음을 다잡아도 스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대신 ‘홀딱 벗고 홀딱 벗고’라는 염불이 나왔다.
홀딱 벗은 여인의 모습을 상상했는지 아니면 인간의 108번뇌를 홀딱 털어 버리겠다는 뜻이었는지는 모르나, 결국 속세의 짝사랑에 마음이 병들어 이승을 떠난 그 스님은 열반에도 들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죽은 후 며칠 안 되어 그 암자의 숲 속에서는 ‘홀딱 벗고, 홀딱 벗고’라는 염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스님이 새(鳥)로 환생했다고 믿으며 그 새를 ‘홀딱벗고 새’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전설이다.
이처럼 이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하고 있는 일,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르게 들린다.
아집(我執), 탐욕과 교만, 食과 色의 유혹 등 참선수련을 방해하는 속세의 모든 것을 훌훌 벗어 던지고 오직 수행에만 정진해서 불성(佛性)을 깨닫겠다는 것이 곧 스님들의 ‘홀딱벗고’ 다짐이다.
그런데 神은 만사에 공평하여 하고싶은 것 한 가지에만 몰입할 때 깊고 진정한 맛을 허락하셨다. 골프코스에서 인고(忍苦)의 칼을 갈고있는 골퍼들에게는 무념무상 공허한 하늘처럼 마음을 비워야 한다.
이 새울음은 생각을 짓누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즉 ‘홀딱 벗고’샷을 하라며 어깨를 내려치는 참선장 죽비(竹篦 대나무 회초리)의 매서운 소리처럼 들린다.
제대로 된 스윙이란 먹고 마시고 잠자고 싶은 욕구등을 절제하고 오로지 땀쏟으며 연습에만 정신일도한 결과물이다.
18홀 라운드 과정도 허풍이나 자만없이 마음을 홀딱비우면 장갑 벗을 때 비로소 만족의 미소를 짓는 골狂禪師가 될 수 있다는 검은등뻐꾸기의 충고이자 격려의 메시지다.
검은등뻐꾸기의 ‘홀딱벗고…, 홀딱벗고…’의 응원 메시지는 참선 수행자들에게는 죽비요, 골퍼들에게는 꼭 필요한 큰 사부님의 훈시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