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칠 照, 돌아볼 顧, 다리 脚, 아래 下.
사람들은 자기 잘못은 잘 모르고 또는 알면서도 남탓 하기를 좋아한다. 요즈음 우리 나라의 정치사회적 病幣(병폐)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내로남불’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이 신조어는 같은 일이라도 자기가 한것은 다 옳고 남이 한건 나쁘게 보려는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편협에 빠져있기 때문에 생겨났다.
이와 같이 우선 남탓부터 하려는 자세는 올바른 가치관의 붕괴위협에 처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하늘의 별을 연구한다며 위만 보고 걷다가 개울에 빠졌다. 원대한 꿈을 꾸는데 웬 개울이 가로놓여 방해를 한다고 개울을 보고 꾸짖는다면, 이것이 바로 어리석고 오만방자한 인간들이 활개를 치는 타락한 인간사회 이른바 末世(말세)의 징조가 아닐까.
자기 허물은 생각하지 않고 애꿎은 사람이나 조건만 탓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우리 속담은 이 외에도 아주 많다.
특정인들을 비하하는 말이 되겠지만,
‘소경이 개천 나무란다.’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
‘가마솥 밑이 노구솥(놋쇠솥) 밑을 검다 한다’는 한역 釜底笑鼎底(부저소정저)와 같은 의미다.
또 明心寶鑑(명심보감)에 보면 至愚責人明(지우책인명)이라는 귀절이 있다. 즉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도 남을 나무라는 데는 밝다’는 뜻으로, 자신의 허물은 덮어두고 남탓부터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똥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도 같은 뜻이다.
修身(수신)을 잘 한 선비라도 인간인 이상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은 자기의 실수를 스스로 인정하고 고치기에 힘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孔子(공자)는 허물을 남탓하지 않고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의미를 反求諸己(반구저기)라 하고, 잘못을 알면 반드시 고친다는 뜻으로 知過必改(지과필개)라고 했다. 또 曾子(증자)도 매일 세 번을 반성한다는 三省吾身(삼성오신)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불교에서도 쉬운 비유로 큰 깨달음을 주는 말이있는데, 항상 자신을 비추어 반성하고(照顧) 자기 발밑부터(脚下) 먼저 살피라는 뜻인 제목의 성어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의 과거언행을 돌이켜 보고 가까운 데를 더 조심하고 신경써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자기 신발부터 가지런히 놓으라' 는 말도 이 성어와 일맥상통한다. 脚下照顧(각하조고)도 같은 의미다.
불교에서 나온 이 성어의 出典은 중국 宋(송)나라 때 발간된 禪宗(선종)의 通史(통사) ‘五燈會元(오등회원)’ 의 三佛夜話(삼불야화)편에 기록되어 있다.
선승 五祖法演(오조법연)이 자신의 代를 이을 제자 三佛(삼불)과 함께 밤길을 걷다가 세찬 바람에 등불이 꺼졌다.
스승이 어떻게 할거냐고 묻자 佛眼淸遠(불안청원)과 佛鑑慧懃(불감혜근)은 심오한 대답을 한 반면, 佛果克勤(불과극근 또는 圓悟克勤 원오극근) 은 간단히‘看脚下’(간각하 : 발밑을 살펴 보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이에 감동된 스승은 자신을 이을 사람은 바로 佛果克勤(불과극근)이라 했다. 후세에 이르러 ‘看’(살필 간)은 ‘照顧’(조고)로 바뀌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대답을 한 圓梧克勤(원오극근 1063 ~1135)은 그의 저서 碧巖錄(벽암록)에 그 가르침이 남아 있다. 수행과정에서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전혀 없는 경지에 닥칠 때는 우선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부터 해결책을 찾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험한 말로 싸우고 욕심이 이글거리는 사회에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과오를 찾자고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펼쳤던 ‘내 탓이오’ 운동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집권자들이나 법조계의 최고위 공직들은 내로남불, 자기는 잘못이 없고 항상 남탓으로만 돌리고 변명만 늘어 놓는 사회적 정의가 사라진 나라에 현재 우리는 살고 있다.
한국인들은 우선 핑계대고 남탓부터 하며 실패에 대한 솔직한 인정을 자기 자존심에 대한 최대의 굴욕으로 여긴다고 꼬집은 어느 외국인의 말 그대로다.
명명백백 잘못이 보이는 사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법지식을 총동원하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자기 가족들이나 같은 코드들의 허물을 덮고 빠져 나가려고 한다.
이들 소위 ‘법꾸라지’들은 가증스런 위선의 미소를 띠며 여전히 권력을 움켜쥐고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照顧脚下, 자신의 허물부터 우선 살피고 내탓이오 스스로 말하는 성인군자, 이 나라의 진정한 지도자는 과연 언제 나오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