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 柳, 꽃 花 - 버들버들하다가 꼿꼿해지다
자고로 훌륭한 스승 명강사는 강의 중 유머나 농담을 자주 섞거나 때로는 익살을 떨어 웃음을 자아 내거나 강의 주제와 전혀 무관한 私談(사담)을 늘어 놓으며 옆길로 빠져서 본 강의 시간을 상당한 부분 까먹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교습기법은 수강생들의 경직 긴장된 뇌상태를 풀어 휴식을 주고 집중도를 높여서 학습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우리 서당에서도 이 번 호에서는 한자를 이용한 해학과 풍자시를 감상하며 딱딱하고 단조로운 한자공부 분위기를 잠시 바꿔 보고자 한다.
뜻글자인 한자는 자획을 하나하나 분해해도 그 뜻이 통한다. 이처럼 글자를 깨뜨리는 것을 破字(파자)라고 하는데, 이렇게 하여 한자를 수수께끼로도 애용되었다.
오얏 李(리)를 나눠 木(목)子(자)가 되고 나라 趙(조)를 분해하여 走(주)肖(닮을 초)로 표기하는 방식이다. 李成桂(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할 때 木子得國(목자득국), 조선 11대 中宗 때 급진적 개혁정치가 趙光祖(조광조)를 모함하여 走肖爲王(주초위왕)이라 표현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조선시대 漢文學을 살펴보면 파자도 이용하고 우리말의 훈으로도 뜻이 통하게 하여 익살이 넘쳐나는 재미있는 戱作詩(희작시)들이 있다.
파자와 희작시의 천재는 아무래도 김삿갓이다. 그는 어떤 노인이 사망했을 때 부고장에 이렇게 썼다.
‘버들버들하다가 꼿(꽃)꼿해졌다'(柳柳花花 유유화화).
金笠(김립)이라고도 한 김삿갓은 유명한 방랑시인이었다.본명 金炳淵(김병연,1807~1863)인 조선 후기의 해학시인으로 호는 蘭皐(난고)다.
그가 하늘을 감히 쳐다 볼 수 없다면서 삿갓을 쓰고 流離乞食(유리걸식)한 배경에는 나름대로 애틋한 사연이 있었다.
그의 祖父가 평안도 宣川府使(선천부사)로 있었을 때 洪景來(홍경래)의 난에 맞서지 않고 투항한 관계로 역적 집안이 됐다.
어릴 때 도주하여 그의 집안 내력을 알 수 없던 병연이 백일장에서 부사의 죄상을 만 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준엄한 필치로 꾸짖었다. 그는 당당히 장원을 했지만 모친이 그 부사가 바로 병연의 祖父라고 일러주는 바람에 天倫(천륜)의 죄인이라며 하늘을 쳐다 보지 못하고 삿갓을 쓰고 周遊天下(주유천하) 하게 되었다.
김삿갓이 어느 날 잘 사는 집에 들어가서 밥 한 끼를 구걸하다가 문전박대 쫓겨나자 주인을 향해서 丁口竹天 月豕禾重(정구죽천 월시화중)이라는 파자로 희작시를 써서 그 집 욕을 했다. 조합하면 可笑(가소)롭고 욕심 많아 豚種(돈종), 즉 돼지 새끼들이라 쓴 것이다.
그가 파자를 사용하지 않고 지은 해학 넘치는 희작시 한 편을 소개한다. 부분 부분 우리말 훈으로 새겨야 이해가 된다.
世事熊熊思 人皆弓弓去(세사웅웅사 인개궁궁거),
세상일을 곰곰 생각해 보니, 남들은 모두 활활 가는데,
我心蜂蜂戰 我獨矢矢來(아심봉봉전 아독시시래),
내 마음 벌벌 떨기만 하며, 나 홀로 살살 오가는구나.
言雖草草出 世事竹竹爲(언수초초출 세사죽죽위),
말들은 비록 풀풀 뱉지만, 세상일은 데데하기 그지없도다,
心則花花守 前路松松開(심즉화화수 전로송송개),
마음을 꼿꼿이 지키면, 앞길은 솔솔 열리리라.
그의 작품 중에는 토씨(助詞 조사)를 달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복합적 의미가 내재된 작품들도 있는데 가히 천재적인 익살 시인이라 할 수 있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 오랑캐 땅의 화초)
이 시에서는 토 달기의 白眉(백미)를 감상할 수 있다.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다고 하나,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이라고 어찌 화초가 없겠는가,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다 하지만, 오랑캐 땅엔들 어찌 화초가 없으리오.
전해지는 많은 풍자시나 욕설 시들을 대부분 김삿갓의 작품이라 하지만 사실 당시 서원이나 서당 한량들 사이에서 합작하거나 또는 시대와 상황에 맞게 개작한 작품들도 많다.
그런데 그들 작품 욕설시에 명성은 부여하고 싶다보니 김병연을 작자로 끌어다 붙인것도 상당수가 있다고 한다. 즉 실제는 작자 미상인 경우가 많다고 하겠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느림이나 여유의 미덕을 중히 여겼다. 서두르지 않고 쉬엄쉬엄 살아가는 문화가 이런 해학적 시작품도 남겼다고 본다.
현대에 와서 몸에 밴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의 오류와 폐해를 이제서야 느끼는 듯 하다.
Slow city, Slow food, Slow 族 ….
천천히 가야 자신의 참모습을 볼 수 있고, 느림과 여유의 삶 Slow life가 참다운 삶이라는 것을 조상으로부터 다시 배우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