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단점 중 하나가 모르면서 배우려들지 않는 곤이불학이라는 폐단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 했다. 모르면 약하고 지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시대정신이나 패러다임을 모르고서는 국제경쟁을 할 수 없다, 때문에 학력이 국력의 원천이라고 하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에도 배움이 얼마나 일상적인가를 비유해서 사람이 셋만 모여도 그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다.
사회가 서로 도우며 사는 유기체라 함은 서로 배워 돕는다는 의미다. 그런 이치는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
자기에게 모자라거나 뒤떨어졌거나 없는 기술은 선진국에서 배워오거나 사오며 모방해 신기술(제품)로 창조적 개발을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국민 교육열이 가장 높은 나라다.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농사짓던 소를 팔고 그 대신에 아버지가 소가 되어 쟁기질을 하는 공부열의가 일등인 니라였다.
그런데 신문화나 신기술, 신지식을 일찍이 배우고 도입해 근대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는 일본이다.
잘 알려진 바이지만, 일본이 나라 이름을 갖기 전까지 지식이나 문물은 전적으로 한반도, 특히 백제에서 배워간 것이었다. 해서 오죽하면 지금까지 일본인들 의식과 말에 ‘구다라나이’, 백제 것이 아니면 소용이 없다 하겠는가.
저들 역시 명치유신이라는 일대 개혁을 성공시키는데 군벌통치의 아성인 막부를 무너트리는 피바람의 내전을 치렀고, 일본정신을 지키면서 서양의 선진문물을 배우고 도입하느라 온 나라가 갈등하고 칼부림을 벌였다.
그러고도 일대 국가개혁까지 성공해 선진국 대열에 오른 것은 일본인이면 누구나 목숨처럼 여기는 두 가지 정신이 있었는데 그게 우리한테는 결여된 약점이다. 그건 그 어떤 사상이나 이념보다 우월하고 강한 ‘화혼 和魂’ 정신이다. 그건 일본인의 긍지요 애국심으로 흔들림 없는 주인정신이다.
그런 정신은 우리와 아주 다른 것이다. 일본이 ‘화혼양재 和魂洋才 정신은 일본인정신을 따르되 문명이나 기술은 선진 서양 것을 배운다.’는 정신으로 전도가 양양한 인재들을 런던의 유명대학에 유학시켜 신지식을 배우고 신질서나 신 패러다임을 배워 전파할 때 우리 조선은 쇄국정책을 고수, 심지어 천주교도들을 대거 잡아 죽이는 만행을 일삼았다.
그런 맥리에선가 이 나라 청년들은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이념에 천착하고 주체사상에 매몰되어 겨우 되찾은 나라를 장장 70여 년이나 흔들고 위태롭게 만들었다.
그런 이념놀이 때문에 우린 부끄럽게도 민족상잔의 전쟁을 치렀고 천 만 이산가족이 생이별을 한 채로 살고 있다. 애국정신이 올바르게 강하지 못한데다가 국가관이 올곧지 못해 시대에 뒤떨어지게도 촌스러운 사상논쟁을 지금도 벌이고는 한다.
또 한 가지 저들 일본인이 소유한 장점은 명치유신 같은 대변혁 과업이 젊은 의혈청년들에 의해 추진되고 그들 희생으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은 젊은이들이 웅지를 불태우고 있으며, 나라 사랑으로 희생할 가치관과 용기를 소유했었다는 반증이었다.
일본열도에는 참으로 대장부다운 많은 젊은 동량들이 부국강병의 선구자적 주춧돌이 되고 있었든 것이다.
그런 때 우린 어떠했던가. 의혈남아 한 명이 없어 국모가 궁 안에서 사무라이 칼에 시해를 당해도 분격한 칼을 휘둘러 짐승만도 못한 살인자를 징치하지 못했다.
조정 대신들이라는 간신들은 무력하니 목숨보전에 급급해 경술국치 5적은 나라를 송두리 째로 들어 일본 마수에 넘겨주고 조선백성을 종살이로 내몰았다.
물론 궁중에선 나라가 망한 슬픔이 단장의 노래가되어 흘러나오지 않았다.
나라를 빼앗긴 지 4년이 지나서야 안중근 의사가 한일합방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죽이고, 조선이 종살이를 시작한지 10년이 지나서야 3·1만세운동이 터졌으니 충격 때문인가 아니면 무감각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나라사랑이 밑바닥이라 선가 항일운동은 굼뜨게도 그때서야 불이 붙었다.
그런 나라사랑 측면에서도 조선 청년들은 일본 청년을 따라가지 못했다. 현대화를 위해 일본 지성인들은 신지식이나 신기술을 배우러 선진국에 수학했으며 사회지도자들은 젊은이들과 나라 장래를 위한 토론에 적극 응했고 지원했다.
명치유신은 그 정도로 서로에게서 배우고 먼저 해외에서 배운 사람을 선각자로 모셔 전달교육을 받았다.
한데 우리는 저들처럼 배우는데 지혜롭지 못했다.
일본이 패전국의 고통과 한에 집착, 승전국인 미국을 원수처럼 여겨야 마땅할 것 같은데 종전 이후 친미정책을 고수, 했으니 일등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기적은 전적으로 미국을 배우고 협력한 덕분이었다.
아주 실감나는 사례 한 가지만 들어보자. 극렬한 노동쟁의로 이름난 일본 노조 중에 하나인 토요타자동차회사 노조가 1951년 이후 파업권을 반납하고 무파업으로 오늘날의 토요타의 번영을 달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우린 주목해야 한다.
일본은 50년 한국전쟁으로 드러난 군수물자생산과 공급이라는 노다지를 캐기 위해 반미 대신에 친미관계 증진 쪽으로 전 국민이 단결해 그 노다지를 캤던 것이다.
우리는 그런 미일 공존공영관계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체험하면서도 그 의의나 가치를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남북 간 전쟁이나 끊임없는 대립으로 조롱을 샀을 뿐이다.
참으로 나라 장래가 우려스러운 건 일제식민지 종살이를 해본 적이 없고, 6·25 전쟁을 겪어본 적도 없는 세대가 아직도 입민 열면 반미를 외치고 하해와 같은 측은지심인가 북한의 겁박조차 너그러이 이해하고 그저 우리가 남인가 화해차원에서 북한을 도와야 된다고 목청을 높인다. 공자가 설파한 동정하는 측은지심과 시비를 가리는 시비지심은 엄연히 구분되어야하는 것이다.
우리는 배움에 있어 좀더 슬기로워야 한다. 이상적인 국가관계가 호혜적인 윈윈 관계라면 서로를 이해하는 게 우선이고 그리고 좋은 점을 배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