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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무게 천근’ 폐지줍는 노인

생계 목적 대부분, 70~80대 절반 이상, 안전사고에 노출
일부 노인들 “내 힘으로 돈 버는 보람으로 위로 받아”

100kg까지 수거, 근골격계 통증, 우울 증상 평균보다 높아


곤궁한 삶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는 노인들이 많지만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매우 한정적이고 수입도 턱없이 모자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령에 특별한 기술도 자본도 없는 노인들이 가장 쉽게 시작하는 일이 바로 ‘폐지 수집’이다.
도심 어느 골목에서도 폐지로 가득 쌓인 리어카를 끄는 허리 굽고 머리 하얀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재활용단체들이 지난 2017년 밝힌 자료에 따르면 폐자원 수거 인구를 전국적으로 약 150만명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의하면 2020년 11월 기준으로 신문지 폐지 1kg 가격은 81.3원, 골판지 폐지는 70.6원이 전국 평균이다.

노인들이 대개 고물상에 가져가는 한 리어카는 20~30kg 정도임을 감안하면 4000~5000원을 손에 쥐게 된다. 하루 반찬값에도 못 미치는 푼돈이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연령대를 각 자치단체는 대개 70~8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80대 이상과 60대 이하도 각 20% 정도로 추정된다. 또 여성이 남성보다 수명이 긴 점을 고려하더라도 할머니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이들 가운데 국민기초생활수급자는 20% 정도이며, 월수입은 노령연금을 포함 50만원 미만으로 자치단체는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노인들은 최저생계비에 훨씬 못미치는 수입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노인들은 매일 새벽 이른 시간부터 폐지 등 고물 수거에 나선다. 빈 상자 한 개라도 더 줍기 위해서는 이른 시간에 나가야 한다. 이 것은 오랜 시간 폐자원을 주어온 노인들의 경험이다. 따라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폐지를 수거하다 교통사고 등 안전사고에 노출돼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폐지 수거 노인은 일반인보다 다칠 확률이 최대 10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헬스조선에서 지난 9월 밝힌 자료에 따르면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강모열 교수·안준호 전공의 연구팀이 2019년 서울시 강북구 폐지수거 노인을 대상으로 직업적 손상, 근골격계 통증, 우울증 등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태를 조사한 결과, 질병을 앓는 비율이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폐지수거 노인 대상 건강 상담 경험이 있는 시민단체 아름다운생명사랑와 협력해 총 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참여자 88.33%가 65세 이상 노인이었으며, 대부분 리어카 및 쇼핑 카트 등을 이용해 수거하고 있었다.

고물상에 평균적으로 가져오는 폐지 및 고물의 무게는 44.44%가 50kg 이상이었고, 일부 수거 근로자들은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도 100kg 이상을 옮기고 있었다. 수거 업무 빈도를 살펴보면 20.37%는 일주일 중 1~2일만 수거했으나, 48.15%는 매일 수거하고 있었다.

폐지수거 노인의 직업적 손상, 근골격계 통증, 우울증 각각에 대한 연령표준화 유병률을 산출하기 위해 연구팀은 일반 인구, 일반 근로자 인구, 육체노동자 인구 등 다양한 인구집단을 대조군으로 비교했다.

직업적 손상에 대한 연령표준화 유병률이 일반 인구 대비 약 10.42배, 일반 근로자 인구 대비 약 5.04배로 나타났다. 직업적 손상이라는 측면을 고려해 육체노동자 인구와 비교해도 4.65배 높았다.

근골격계 통증은 대조군과 비교해 연령표준화 유병률이 어깨, 손목, 무릎, 발목 통증에서 높게 나타났으나, 허리 통증은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우울 및 자살 혹은 자해 사고도 대조군들과 비교해 1.86~4.72배 높게 나타났다.

폐지수집 노인 5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시행한 결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로 파악됐다.

첫째, 고령에 우울증까지 있는 경우 더욱 취업 및 소득 활동이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비교적 접근이 쉬운 폐지 수거를 하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둘째, 폐지 수거에 대해 상대적으로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고, 빈곤으로 인한 자존감 저하가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강모열 교수는 “폐지 수거 일자리를 권유하거나 유도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는 구성원이므로, 최소한의 안전 및 건강에 대한 보호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며 “안전보건교육, 지속적인 야광 스티커와 조끼 배부 및 교체, 인간공학적 리어카 제공을 고려해볼 수 있고, 보다 근본적으로 소득보장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지망 확충을 통한 정서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지자체와 사회단체, 공공기관, 기업 등에서 폐지 수집 노인들을 돕기 위한 움직임이 몇 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리어카 리모델링, 리어카 측면 광고, 안전조끼 등 제공이 그것이다.
강현주 기자 oldag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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