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골프장에 가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골프는 패션이다’‘스타일이 살아야 골프도 산다’.
골프를 위해서 패션을 입는지 패션을 위해 골프를 치는지 주부(主副)가 헷갈릴 정도로 여성골퍼들은 패션에 대단히 민감하고 관심이 많다. 이런 골프패션을 리드하는 선봉에는 역시 세계무대에서 승승장구하는 KLPGA 프로들이 있다.
코로나로 실내체육시설, 유흥오락시설, 스크린골프장 이용이 불안하고 겨울이면 줄줄이 골프백을 매고 외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해외골프원정 ‘골케이션’ 도 양국의 도착 격리제도로 불가능하게 됐다. 이제 골퍼들은 야외 자연공간 사회적 거리두기 걱정이 없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기는 국내골프장으로 몰려들 수 밖에 없다.
PR의 창시자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는 “여성들은 남성이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을 원한다”고 말했다. 과거 100년 간 여성들은 남성의 영역을 계속 침범해 왔다.
스포츠 중 가장 보수적이었던 남성 중심의 골프장에도 이제는 여성들이 몰려와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골프인구는 매년 10% 이상 씩 늘어나서 현재 약 515만 명으로 추산된다. 최근에는 젊은 여성골퍼가 20~30%나 폭증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어서 최대 약 250만 여성골퍼들이 필드의 색깔을 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골프모임 ‘숙녀회’ 숫자도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골프장에서는 월요일을 Lady Day로 정해 그린피를 깎아주고 거리가 먼 골프장들은 버스까지 보내며 숙녀고객님들을 모셔 간다.
그런데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듯이 코로나로 국내산업계가 전반적으로 극심하게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도 골프장과 골프연관산업은 여풍(女風)과 코로나 덕에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골프=패션으로 여길 정도로 패션에 적극적이고 주저없이 지갑을 여는 젊은 세대 여성골퍼들이 있다.
자료를 보면 국내 골프웨어 브랜드는 100여 개, 여성들의 의류구매 중 골프패션 비중이 40~50%나 된다. 스포츠웨어 중 60~70%가 골프웨어이며 그 중 여성복이 55% 이상이다. 백화점 입점 브렌드 중 일반 아웃도어가 20개라면 골프패션은 30개 이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골프웨어 선호도를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여성골퍼의 폭증과 골프의류시장에 대한 매력으로 새로 뛰어든 신규 브랜드들이 시장파이를 키워놓은 결과 골프웨어 시장규모만 약 6조 원에 이른다.
실제 루이스 카스텔, JDX , 와이드앵글, 지스텔 바작은 이미 수년 전부터 골프의류 연매출 1,000억을 넘겼다. 앞으로도 신규 브랜드 골프의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남녀골퍼가 LPGA경기 TV중계를 볼 때, 남자는 ‘잘 친다!’ 여자는 ‘멋지다!’ 라는 감탄사를 많이 쓴다.
여성골퍼들은 스윙기술 못지않게 패션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들 중에는 출전한 유명 여자프로의 패션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트로 요구하는 고객도 많다고 한다. 칼라볼로 유명한 볼빅(VOLVIK)의 경우도 칼라볼의 주고객층은 여성들이며 이들의 기호에 맞게 다양한 칼라볼을 출시해 내고 있다.
골프프로는 대회 흥행과 스폰서의 홍보효과를 극대화시켜야 자신의 주가도 올라가서 살아남을 수 있다. 선수들이 대회에 나올 때마다 경기결과에 상관없이 새롭고 과감한 패션으로 주목을 끌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반인들은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 여자 골프선수들에게 패션과 칼라는 단순한 과시욕이 아니라 스코어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멘탈이라고 스포츠 심리학자 칼 모리스(Karl Morris)박사가 말했다. 실제 그녀들의 경기성공 요건 중 개성적인 패션의 비중이 50.6%나 된다고 한다.
이처럼 패션이 선수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은 바로 자신감이다. 경기 당일 옷이 맘에 안들거나 불편하면 경기운영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서 샷이 잘 안될 수도 있다.
자신의 신체 단점은 가리고 장점은 돋보이도록 하는 패션은 자신감과 멘탈을 강화하려는 계산된 경기전략이다.
일반적으로 골프패션 스타일링의 콘셉은 남자는 ‘Be Colorful’ 여자는 ‘Must be Sexy’라고 할 수 있다.
그린의 패셔니스타 이안 폴터(Ian Poulter)의 칼라풀한 체크펜츠, 존 델리의 알록달록한 바지, 타이거 우즈의 전략적 레드칼라 패션은 잘 알려져 있다.
레드는 공격적인 뜻으로 우즈가 레드를 선택할 때는 바로 ‘내가 우승컵을 차지한다’는 메시지다. 로리 매킬로이가 우즈와 한 조에서 경기할 때 붉은색 셔츠로 맞불작전을 펴는 것도 고도의 심리적 압박전략이다.
여자선수들의 패션의 포인트는 Sexy Look이다. 그녀들은 건강한 구릿빛 다리에 핫팬츠나 짧은 스커트, 바디라인이 드러나는 착 달라붙는 티셔츠를 선호한다.
균형잡힌 바디라인에 섹시룩 패션이 잘 어울리는 선수는 경기결과에 관계없이 스폰서들의 눈독으로 주가가 올라간다.
늘씬한 각선미를 살린 안신애와 유소연, 섹시 아이콘 마리아 베르체노바(Maria Verchenova)의 스포티한 초미니 패션. 과다노출 논란도 있으나 안신애의 출전 패션에는 전화 문의가 빗발치며 매장에서는 다음 날 완판된다고 한다.
요즘 골프장 첫 홀 티엎 대기구역은 골프패션쇼장을 방불케한다. 필드에서는 여자선수들 간 샷대결만큼 말없는 패션경쟁도 뜨겁다. 결국 옷이 골프장비 못지않게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프로는 돈을 벌어야 하는 직업이다. 우승상금 쟁취는 물론 동업자 격인 패션스폰서와 동반성장의 책임도 있다.
과감하고 개성넘치며 칼라풀한 패션은 골프장에 생기를 불어 넣고 겔러리들도 즐겁게 하여 경기의 흥행을 돕는다.
여성골퍼들과 그들의 패션은 골프강국의 명성을 이어갈 큰 에너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