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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5일 백두산 천지를 뒤로 하고. |
작년 한 해는 중국 우한으로부터 잠입한 코로나라는 괴물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온 나라가 고난을 당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노년층이 더 고통을 당하였다.
“나죽 집살” 이라든지 “집생외사” 이란 멋대로 만든 4자성어 처럼 나가면 죽고 집에 있으면 산다든지, 집에 있으면 生하나 외출 좋아하면 死한다는 겁 주기 때문에 노년들은 꼼짝없이 집안에 갇히어 살고 있었다.
그러니 운동량도 부족하고 친구만나 말다툼할 기회마저 없다보니 역(逆)건강의 나날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대면없는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둘레길을 매일 출근을 하게 되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보약을 매일 매일 한 첩씩 먹고있다.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글을 카톡이나 메일등 SNS로 몇 번 씩은 누구나 받아 보았을것이다. 특별한 도구나 장소가 필요치 않고 걷기만 하면 건강을 보장한다고 하니 걷기운동에 심취한 사람이 내 주위에도 제법 된다.
걷기운동만 잘 하면 병원 찾아 갈 일이 없다고 하는데 좀 과장된 이야기 같지만 진실일수도 있다. 한의학의 허준 동의보감에도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그 식보 보다 행보(行步)가 제일이라고 하였다.
최고의 보약은 약도 아니요, 음식도 아니고 걷기라는 처방이었다.
런닝하이(Running-high)라는 이론도 있다. 걷기를 시작해서 20분정도 걸으면 뇌에서 엔돌핀이 나와서 모든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고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운동이 유연해짐을 느끼게 되면서 걷기가 힘들지 않게 된다는 주장이다.
정신건강과 육체건강을 동시에 해결하는 참 좋은 처방이 아닐수 없다. 나도 비슷한 체험을 통해 힘들지 않고 1만보걷기를 계속하게 되었다.
나는 만보기(Fitbit사 제품)를 착용하면서 1일 1만보와 계단 10층(180보정도) 걷기를 일과로 삼았다. 그 제품을 밤낮 24시간 시계 겸용으로 손목에 차고 다니면 걸음수가 정확히 계측된다.
3년 전 쯤에는 무릎에 이상이 있어 병원을 찾았더니 80대 노년에게는 계단 걷기가 원인 일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의 권고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계단 오르기를 절제하였더니 무릅 통증이 사라지고 지금까지 이상이 없다.
일상의 행동거지로 최대 3,000보 정도는 자동으로 걷는다고 보면 걷기운동으로 7,000보는 걸어야 1만보 목표가 달성된다.
실제는 평균적으로 1만~1만2천보를 계측하게 되었는데 사정에따라 만보가 모자라는 날이 있으면 그런 날은 취침전에 거실을 빙글빙글 돌면서 만보를 채워야 직성이 풀렸다.
거실 한 바퀴는 50보쯤 되는데 어떤 날은 100회전(?)을 할 때도 있었다. 헬스장에 있는 운동기구는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수인데 이상하게도 걷기만은 인내력이 샘물처럼 계속 솟아 나는 것 같았다
지난 연말에 Fitbit사로부터 메일이 왔다. “걷기로 12,713km에 도달해 ‘Earth’배지를 얻으셨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자기 회사 제품을 사용하여 그 숫자만큼 걸었다는 내용인 것이다.
12,713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여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놀랍게도 지구 지름(直徑)의 거리 숫자였다. 지름12,713km에 파이(3.14159...)를 곱하니 지구의 둘레 4만km의 답이 나왔다.
중간에 기기 고장으로 약간의 오류는 있었겠지만 하루 7km(1만보x70cm)를 걸었다면 약 5년이 소요된것 같은 계산이 나온다. 손자녀석의 낙서 “꾸준함이 답이다”를 할아버지가 실천한 모양새가 되었다.
걷기 이야기를 시작하다보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은 10년 전 2011년 8월에 다녀온 백두산 트레킹이였다.
당시 70세 중반 나이로 백두산 서파(西坡)로 올라가 북파(北坡)로 내려오는 코스인데 산악길 15km, 소요시간 11시간의 무리한 걷기에 도전했었다.
전 날 중국 선양시(瀋陽市)로부터 10시간 버스로 백두산에 가장 가까운 마을 이도백하(二道白河)에 밤 자정에 도착하여 새벽1시에 취침하고, 아침 5시에 기상하여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였고 중국 당국의 입산허가에 한시간 넘게 대기하는 등 너무 무리한 일정으로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5,000m이상의 높은 산을 걷는것을 등반(登攀)이라하고, 그 이하 낮은 산을 수월하게 걷는것을 트레킹이라 한다고 해서 안일한 생각으로 참여하게 된것이다.
전후좌우를 따져보지 않고 한 결정이 결국은 기억하고 싶지 않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다. 트레킹 중간 지점인 노천에서 점심을 할려고 배낭을 내려놓고 앉을려고 하는데 완전 KO가 되어 들어눕고 말았다.
천지(天池)구경하랴, 야생화 사진찍으랴, 정신없이 중간 지점까지는 왔으나 산비탈 식사장소에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리 힘을 써도 소리 내어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하나님, 하나님…”을 속 마음으로 불렀다. 소리는 나지않고 입술만 움직였을 것이다.
동행자들의 도움과 중국인 가이드의 맛사지로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심으로 구조대의 신세는 지지 아니하고, 배낭은 동행자에게 맡기고 빈몸이지만 내 발로 걸어 내려왔다. 도착지에서 나를 기다리는 일행앞에서 그만 땅바닥에 큰 大자로 들어눕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성서적은 아니지만 금년을 소(牛)의 해라고 한다. 우보천리, 마보십리(牛步千里 馬步十里)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또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고사성어도 있다.소처럼 천천히 걸으면 천리를 갈 수 있으나 말처럼 급히 달리면 십리만 가도 지친다는 뜻이다.
고요한 호수에서 소와 말을 수영 경주를 시키면 말이 2배로 빠르게 말이 이긴다고 한다. 그런데 홍수로 범람한 강을 건너게 하면 소는 물길따라 아랫쪽으로 떠내려 가면서 강가로 조금식 이르게 되어 결국 도강을 무사히 마치고 살게되지만 말은 헤엄을 잘 치지만 물살을 이겨내고 강을 거슬러 헤엄처 올라가려고 만용을 부려 진퇴를 거듭하다가 지쳐서 물을 마시고 익사해 버린다고 한다.
인간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이솝 우화같은 이야기다. 노년은 말처럼 달릴 수는 없다. 소처럼 천천히 우직하게 꾸준하게 걸으면 된다.
충북 음성의 오웅진신부는 다리 밑에서 살고 있는 걸인 18명의 생활 모습을 보고 “얻어먹을 수 있게 걷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말씀으로 유명하다.
연세가 들수록 걷는 힘이 약해지지만 그래도 걸을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걸어야겠다.
“누죽 걸산”이니 “와사보생(臥死步生)”이란 말이 카톡으로 유행하고 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라는 뜻이다. 老짱들은 이 말을 가볍게 흘러가는 소리로 듣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노년의 보약은 누구도 약탕기에 다려줄수없다. 오직 내 스스로 다려 먹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명언과 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