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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왜건과 덩달이

하림산책 - 박하림(수필가/전 (주) 휴비츠 고문)
지금은 시골에서조차 거의 볼 수 없지만 옛날에 시골에 서커스단이 공연을 하러 올 때면 마치 풍물패가 풍장을 잡히며 동네를 돌 때 온 동네가 나와 구경꾼이 되듯이 꽃마차로 꾸민 트럭의 짐받이에서 네댓 명 악단이 신나거나 때로는 애잔한 유행가락을 연주하면서 돌라치면 온 동네 주민이 다 쏟아져 나와 구경하면서 설렘과 신바람과 흥분 속에 한통속이 되었다.

과거와 다르게 요새 시도 때도 없이 출현하는 바람은 대중매체라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수단을 꼬드겨 타고는 전국을 풍미한다.

지금 전국을 누비며 파파할머니가 손자  뻘 가수에게 사랑한다고 애틋한 멘트를 날리고, 어린 가수지망 ‘초딩이’ 소녀가 미아리고개를 단장의 눈물고개로 넘듯 간드러지게 음절을 꺾어가며 청중을 매료시키는 트롯 열풍이 뜨겁다.

어느 텔레비전 트롯 프로는 시청률 26 퍼센트라는 대박을 쳤다고 자랑이 늘어지고, 어느 트롯 신성 가수는 몸이 열 개라도 감당이 안 되는 광고제의 때문에 돈방석에 얹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단다.

그런데 필자는 귀가 씁쓸하니 촌스럽게 우울해진다. 저 트롯잔치를 벌일 때 첫 오디션 응모자가 무려 만 기천 명에 달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세상에 트롯가수가 되고 싶은 청년들이 저토록 많다니 우리 현실과 너무나 이율배반적인 사회현상이다. 

가뜩이나 만혼풍조에 아이 낳길 주저해서 출생률이 노인 사망률보다 떨어졌으며 총 인구 역시 줄고 있다, 장차 국방이나 노동인력에 필요한 인적 자원의 부족현상은 매우 심각하다.

그런데 통계청이 발표한 작년 말 현재의 중소기업 창업실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누적 창업 건수가 1백만 건에 달하는데 놀랍게도 그 생존율은 열의 여섯은 1년을 버티고 문을 닫았으며, 그 열의 셋은 5년을 버티다 망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의  하나가 창업에 성공한 셈이다. 트롯가수 지망생이 결선에 올라 탑10에 들려면 적어도 3차 경연을 1만 기천대의 1이라는 1차 예비경연부터 치러야 한다. 서너 차례 경연을 치르려면 화려한 의상 비와 화장 비, 연습 비 등 들어가는 돈이 만만찮아 1인당 3백만 원만 쳐도 무려 5백억이 들어가는 것이다.

꿈을 꾼다고 아무나 트롯가수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창업도 그러하다.

벤처창업은 특히 그러해서 모험창업이라 한다. 해서 미국의 대표적인 벤처창업의 메카라는 실리콘밸리는 ‘창업성공의 산실’이나 동시에 거대한 ‘창업실패자의 무덤’으로 성공자의 웃음보다 실패자의 울음소리가 더 크다. 

그런대 우리의 구태의연함에다 백년하청인 폐단이 무언가 반성해본다. 단번에 지적할 수 있는 것으로 ‘바람 밴드왜건’을 너무 속없이 덥석 올라타기를 잘 하고 비이성적인 대중의 선동을 덩달이가 후림불에 놀아나는 것처럼 추종하는 것이다. 

184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수터스 제재소에서 다량의 금이 발견됨으로써 시작된 <Gold Rush> 는 순식간에 전 미국으로 금 노다지 캐서 백만장자 되자는 후림불로 무섭게 번졌다. 청바지 작업복에 완력 만 있으면 누구나 금을 캘 수 있다고 했다.

그 후림불바람에 들떠 금 캐러 나선 서툰 광부와 덩달이가 무려 8만 명에 달했다.

그들을 ‘포티나이너스’라고 불렀는데 후림불에 휩쓸려온 덩달이들은 부진한 금생산과 힘든 채광작업에 다치고 쓰러지고 지쳐 탈락자, 빚진 자, 병자가 속출했으며, 청바지장수와 식료품 공급자만 부자가 되었다.

창업에 관해 우리가 절망의 심경인 것은 창업풍토나 여건, 정부의 철학과 정책빈곤, 그리고 창업자들의 비합리적인 의식과 ‘벤처무지’라는 약점이 20여 년 전과 별로 개선된 점이 없다는 사실이다.

창업은 영구히 계속되어야하는 중요한 경제활동인바 그 풍토가 삭막하고 그 여건이 불합리하며 정부의 의식이 ‘벤처 무지’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거 국가장래를 위해 하루속히 개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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