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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고 싶은 욕망에 대하여

황진수 칼럼-한성대 명예교수 / 정치학 박사 / 한국노인복지정책연구소 소장
사람은 누구나 장수하고 싶어 한다.

중국의 5복의 첫째가 수(壽: 오래 사는 것), 둘째 부(富: 돈이 많은 것), 셋째 강녕(康寧: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것), 넷째 유호덕(攸好德: 덕이 있어 남에게 베푸는 것), 다섯째 고종명(考終命: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죽는 것)이다.

이 5복 중 으뜸을 수(壽)로 정한 것은 오래 살아야 다른 복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부모가 몇 살까지 살았으면 좋겠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가장 많은 비율이 「63세」였다고 한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가. 직장에서 은퇴하고 퇴직금을 받아 다 쓰기 전에 돌아가셔야 자신의 차지가 될 것이라는 민망스러운 추측을 해 본다.

어느 나라에서 왕이 모든 사람의 죽음을 중지시켰다.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죽는 경우도 없어졌고, 교통사고로 사망 직전에 있는 사람도 죽지 않았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에게 죽음 자체가 중지된 것이다. 국민들은 환호했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니!」 국민은 축하하는 뜻으로 집집마다 국기를 게양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몇 가지 일이 벌어졌다. 장례업자들이 망하게 생겼다. 사람이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생명보험에 들지 않아 이 회사도 마찬가지 어려움에 처했다. 정부에서는 궁여지책으로 동물장례, 곤충장례를 치르면 돈을 받는 것으로 바꾸었고, 생명보험도 80세를 기준으로 다시 보험가입을 하는 법을 만들었다.

종교계에서는 죽음의 중지로 인한 ‘신비성’이 줄어들고 신자가 대폭 감소했다. 정부도 노령연금의 계속 급여로 재정이 파탄이 나게 되었다. 또 개인의  경우 고조, 증조, 조부모, 부모가 살아계심으로 이들이 돌봐드려야 했고 자신이 늙으면 자신을 돌보아야 할 아이들을 걱정한다.

어떤 노인은 피곤하고 힘든 노인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나라로 건너가 죽는다. 어떤 가족은 늙은 조부모를 내다버리기도 한다. 이때 마피아가 등장하여 노부모를 버려주는 사업으로 돈을 벌기도 한다.

노인인구만 계속 늘어나고 죽는 사람이 없자 나라는 큰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그것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정부에서 특별 등기우편으로 사망예정통보서를 당사자에게 배달하고 편지를 받은 후 10일이 되는 날은 그 사람이 죽는 것으로 하였다.

사망예정통고를 받으면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조용히 자기 인생을 반성하면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할까. 누구 말마따나 사과나무를 심을까. 그런데 상황은 어지러웠다. 마지막 10일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그동안 하지 않았던 망나니짓을 하기도 하고 우울증에 빠져 정신병원을 찾기도 했다.

그러다가 사망통보서를 배달하러 간 여성배달원이 사망대상자를 찾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당사자를 만났다. 우편물 수취인은 첼로를 연주하는 음악가였는데 너무 맑고 천진난만한 표정이었다.

이 여성은 사랑의 감정을 느꼈고 그에게 사망통지서를 전달해주지 않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 「죽음의 중지」)

일본에서는 고령화로 인해 생기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70세 사망법안가결」, 가키야 미우, 김난주 역, 왼쪽주머니)

뇌경색으로 쓰러져 자신은 멀쩡한데 몸을 움직일 수 없고 13년째 침대에서 생활하는 시어머니. 그 시어머니를 13년째 집에서 돌보고 있는 55세의 주부 며느리 다카라다 도요꼬는 어느 순간 가출을 한다.

70세 사망법안 시행을 앞두고 남은 인생을 즐기려 조기퇴직하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58세 남편 다카라다 시즈오, 엄마의 할머니 병수발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고 노인요양원에서 일하는 30세의 딸 다카라다 모모카, 능력이 좋아 일류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3년 만에 퇴직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집안에만 있는 29세 아들 마사키. 이런 가족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여러 캐릭터가 역할을 한다.

가족들은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며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조금씩 양보해 타협해 나간다. 이 소설의 내용에 등장하는 구성원은 모두들 적절한 타협을 이루게 되고 결국 70세 사망법안은 없어지게 된다.

한국사회에도 유사한 면이 있다. 경제발전을 급속도로 이루어냈지만 사회에서 별 볼일 없이 지내는 노인세대 가족을 위해 돈을 벌려고 하면서 자신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일해 온 오늘날의 가장세대, 누구의 엄마, 가정부로 불리우며 정체성을 잃어버린 부인세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아들, 딸 세대가 어쩌면 유사한 배역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식구들이 정신적으로 감정이입 되면서 잘 헤쳐 나가 해피엔딩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몇 번째 갈 정도의 장수 쪽에 해당한다. 또 오래살고 싶어 하는 욕구도 강한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노인자살이 세계 1등인 나라다. 노인을 둘러싼 환경 즉 소득의 단절, 건강악화, 고독감, 자녀 등 친족과의 갈등 등이 노인에게 심리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의 노년학자 푼(Poon) 교수는 장수문제 전문가인데 그는 세계 장수촌을 찾아 장수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조사했다.

그는 장수하려면 첫째,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둘째, 심리적으로 긍정적이어야 한다. 셋째, 운동을 해야 한다. 넷째, 영양을 잘 섭취해야 한다. 다섯째, 일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장수지역은 구·곡·순·담(구례, 곡성, 순천, 담양지역)이라고 장수문제 세계적 학자인 박상철 교수(전남대 석좌교수)는 주장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콩으로 만든 음식을 자주 먹고, 마음을 편하게 하며, 평소 고혈압, 당뇨 등 기저질환이 없고, 동네 사람들과 자주 왕래하면서 살아오고 있는데 특별한 특징은 없었다고 한다.

이왕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오래 살면서 좋은 사람 만나고, 맛있는 음식 먹고, 건강하게 살고, 세상의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에서 장수문제를 연구하는 국가기관을 만들고 우리나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장수국가가 될 수 있도록 계도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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