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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량세태(炎凉世態)

두레박 - 義宣 이 선 호
염량세태는 권세가 있을 때는 아첨하여 좇고, 권세가 없어지면 거들떠보지 않는 세상의 인심을 말한다.

중국 한나라에 적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정위(현검찰총장)이라는 요직에 앉아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마치 시장과도 같았는데 자리에서 물러나자 대문 앞에 참새가 둥지를 틀 만큼 쇠락하였다.

다시 복직이 되자 또다시 와하고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변하는 마음을 깨닫게 된 적공은 다음의 문구를 대문 앞에 큼직하게 써 붙였다고 한다.

“인간의 교제는 생사, 빈부, 귀천에 따라 변한다. 즉, 그 사람이 살아서 돈도 많고 높은 지위에 있을 때는 사귀려고 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죽으면 그뿐이다. 몰락해서 돈도 지위도 잃으면 이와 더불어 사람의 발길도 끊어진다.”

우리 속담에도 ‘화장실 갈 적 마음 다르고 올적 마음 다르다’는 말이 있다.
자기가 아쉽고 급하면 친하게 지내다가 목적을 이루면 마음이 변하는 것을 말한다.

잘 나갈 때는 대단한 존재로 인식되어 쓸개 간 까지 다 빼줄 것처럼 친근하고 살갑게 대한다. 세월이 지나 갓끈이 떨어지고 조건과 환경이 별 볼일 없어지면  관심은 헌 신발짝처럼 버려진다.

욕망이 인륜을 압도하여 심지어 뒤통수까지 치는 부도덕한 행위가 천연덕스럽게 벌어지는 것이 우리가 사는 신자유주의의 본래면목이 아닌가? 

히말라야에 ‘야명조’라는 새가 있는데 밤이 되면 추위에 떨면서 ‘내일은 날이 새면 꼭 집을 짓겠다’고 다짐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따듯한 햇살이 퍼지면 집 짓는 것을 잊어버린다고 한다. 밤이 되면 후회하고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느냐며 잊어버리는 것이다.

아쉬울 때는 만리장성도 쌓을 것 같지만 아쉬울 것이 없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절박함을 잊어버린다.

인간의 본성이 아니고는 이렇게 될 수 없다.
우리나라 지도자나 정치인들 보면 당선되기 전에는 ‘애면글면’하다가, 당선 된 다음에는 ‘오불관언’한다.

세상만사 다 그러하고 또한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 듯이 자신이 욕망하는 이끗이 다하면 사귐과 의리 그리고 다짐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염량세태’를 원망할 수는 없다.

한 때 쓸개 간 까지 다 내놓을 정도로 가까워 호형호제하던 사람도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배신하고 소원해지는 것이 인간이다.

좋을 때만 가까이 하려고 접근하는 계산적이고 이해 관계적인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 잠시 아는 사람이 지나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애당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마음이 편할 듯하다.

처음에는 자신만의 일방적인 필요에 따라 계산적인 거래 목적을 앞세우고 자신의 얼굴에 다양한 페르소나를 씌운다.

어느 때가 되면 의식적으로 민낯의 자기 모습으로 복귀하여 본성에 천착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자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의 본질이다.

누구도 소유 지향과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조변석개하는 상대의 편협한 마음과 섭섭한 행위에 손가락질 하며 비난의 화살을 쏠 수 없다.

언행일치, 초지일관, 일편단심, 시종일관이라는 단어는 황량한 사막에서 솟아나는 새싹처럼 인간적 온정에 목말라 하는 이 시대에 절실함으로 다가온다.

이익과 물질을 좇아 천륜을 저버리고 형제간에 철천지원수가 되고 죽마고우를 배신하는 등 현실적으로 야박한 염량세태 속에서 마음으로 깊이 새기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소중한 지표이고 자세라 아니할 수 없다.

진정한 친구란 맑고 흐림에 관계없이 따듯한 인간적 인연으로 열린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진정한 친구를 아킵(Akib)이라며 ‘내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들어와도 되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평소에 의식적으로 한두 명쯤은 평생 친구로 할 진정한 친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인생은 생각보다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는 여생을 함께 할 진장한 친구가 몇 명이나 되는가?



작가소개

● 명지대 영문과
● ROTC 기갑장교
● 현대건설, 한화건설 근무
● 현 대원철강, 광성전기산업 회장.
● 2018년 수필가 등단.
● 저서 <평범함 속에 특별함>
● <더불어 살면 행복도 ‘더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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