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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의 동물들

최중탁 미국 골프 티칭프로(USGTF)의 재미있는 골프이야기 114
뻐꾸기 탁란둥지. 여주 아리지 CC.

골프장이란 인간들이 자연의 일부를 빌려서 골프라는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조성한 자연공간이다.
그 공간의 주인은 당연히 자연이고 동식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라운드를 하다 보면 가끔 그 주인들을 만나는데 정말 반갑고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신비한 들풀 수목과 곤충 동물들이 있다는 건 그만큼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적 상태를 유지하면서 공간이 조성되었다는 증거다.

동물들은 그들 영역에 들어와 놀고 있는 인간들이 그렇게 반갑지는 않아도 그렇다고 해코지도 않는다. 뱀 악어 같은 파충류도 인간들이 시비를 먼저 걸지 않는 한 그들도 자기 일에만 전념할 뿐이다.
필자가 만났던 골프장 ‘주인’들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 보면 마음이 참 즐거워진다.

제주도 한라산 자락 골프장, 노루 가족들이 아침에는 물론 수시로 코스로 들어와 골프장의 부드러운 잔디로 식사를 하는 정경은 마치 동양화 같다.

경기도 여주의 한 골프장 카트도로 옆 조경수 속에 뻐꾸기가 뱁새 둥지에 탁란(托卵)한 신비한 현장이 눈에 띄었다. 무사히 새끼들을 키워 나갔는지 궁금하다.

오뉴월 우리나라 골프장에서는 ‘홀딱벗고 새’(검은등 뻐꾸기)의 ‘오빠 잘 쳐!’ 로 들리는 울음 응원구호가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려 정겹고 정말 힘이 솟는다.

영국 옆 아일랜드 골프장 벙커턱에는 야생토끼들이 굴을 파고 살며 골프장 잔디를 먹이로 삼는데 벙커셧 하려다 뛰쳐 나가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팜스프링의 골프장에도 야생토끼들이 새끼들을 데리고 유유자적 뛰놀고 이들을 먹이로 삼는 대형 고양이과 밥켓도 어슬렁 거린다.

그린 위에는 야생조류들이 주인행세 텃세를 부리며 퍼팅을 하려해도 비켜주지도 않는다.
퍼팅라인에는 분비물 덩어리가 널려 있어서 손으로 치우지도 못하고 퍼터로 치우면 묻어서 더 난처해 진다. 아예 새똥이 없는 옆으로 드렆 후 밟을까봐 어정쩡한 스탠스로 퍼팅해야 한다.

동남아 말레이지아령 코타키나 발루 섬에는 코스내에 중대형 개나 다 자란 악어만한 도마뱀(물왕도마뱀 Water monitor)들이 어슬렁거려 공포스럽지만 상상 이상으로 온순했다.

필리핀에는 헤져드 옆 그늘에 늘 대기하고 있다가 공이 빠지면 즉시 뛰어들어 공을 찾아주고 팁을 챙기는 골프공을 먹고사는 ‘인간악어’ 들도 있다.

골프천국 미국 플로리다 반도의 코스 헤져드에는 실제 악어들이 살고 있어서 경고판이 붙어 있다.
우리나라 골프장에는 청설모도 살고 있는데 가끔 공을 물고 나무 위로 올라가서 소리쳐도 돌려주지 않았다.

미국 PGA시합에서도 가끔 갈매기가 공을 물고 날아가다 물속에 던저버리는 심술을 부리는데 규칙상 무벌타로 구제받을 수 있다.

일본 후쿠오카 골프장의 까마귀들은 영악하여 카트에 감춰 둔 봉지 속의 간식을 순시간에 찾아내서 물고 달아난다. 골프장 측에서도 까마귀 조심하라고 경고를 한다.

라운드 중 코스에서 만나는 동물들은 물론 지렁이나 풍뎅이, 에벌레 등의 ‘원주민’들을 건드리거나 죽이지 않는 게 ‘객’(客)의 위치인 골퍼들의 기본 예의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메뚜기 한 마리라도 죽이면 어쩐지 마음에 걸리고 찜찜해 진다. 그런 홀에서는 스코아를 망친 경험들이 많아 라운드 중 타부 1번은 살생금지다.

자연과 생물들이 주인인 골프장에서 인간들이 놀면서 파괴하고 살생까지 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오만이자 어리석은 도전이다.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행위로 당연히 창조주가 내리는 댓가를 치르게 된다고 본다.

골프장에는 이런 동물들도 있다. 우리나라 아마추어들 사이에는 골프장에 가면 ‘늑대’와 ‘꽃뱀’들도 우글거린다는 농담이 있다. 골프에 빠지면 늑대에게 잡아 먹히고 뱀에게 물리더라도 행복하다며 그런 사고를 당하기를 은근히 기대라도 하는 듯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이들은 충분한 먹이와 라운드 기회를 제공하며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편히 즐기도록 완벽한 에스코트로 도와 준다.‘영업’적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미모의 여성골퍼들은 좋은 곳이 있는데 한 번 같이 가보자며 샷보다 명함 돌리기에 더 신경 쓰기도 한다. 라운드 중 서로 과잉친절을 한없이 베푸는 커플들이 많이 보이는 것이 요즘의 골프장 풍속도다.

그런데 늑대는 사납고 교활하다는 편견이 일반적이지만 동물학자들의 시각은 전혀 다른 착한 동물로 보고 있다.

늑대는 평생 일부일처제로 암컷을 사랑하며 항상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맞서는 보호본능이 탁월하다. 지혜롭고 끈질긴 사냥술로 먹이가 충분하며 암컷과 새끼들이 먹고난 후 수컷이 먹을 정도로 헌신적이다.

암컷이 죽더라도 홀로 정조를 지키며 새끼 양육을 끝낸 후 암컷이 죽은 자리로 와서 죽는다고 한다.
골프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라운드 욕구를 억제하기가 힘들다. 동그란 물체는 공으로 보이고 잔디를 보면 골프를 치고 싶어지며 우산을 들고 길거리에서 스윙도 해본다.

그러나 평범한 직장인이나 가정주부라면 누군가의 후원 없이는 골프장 나가기가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

사실 골프에 점점 빠져들다 보면 라운드의 빈도가 점점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가족의 허락을 받고 주말 골프만 즐기기는 성에 차지 않아 주중에도 업무상 접대 동창골프회 등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골프장을 찾게 된다. 더 나아 가면 가족 몰래도 라운드 나가기가 시작되는데 이것이 골프의 속성이요 단점이자 장점도 될 수 있다.

이런 골퍼들은 채는 골프 연습장 락커에 옷은 차량이나 사무실에 여러 벌 비치하고 세탁은 세탁소를 이용한다. 5분 대기조 처럼 항상 골프장 출동준비가 되어 있다.
집에 들어갈 때는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는 모습을 연출해야 함은 물론이다.

여성골퍼들은 당연히 가장의 퇴근시간 전에 집에 돌아올 수 있는 조건에 맞춰 라운드를 잡거나, 친구들과 저녁모임 약속 연막을 미리 쳐놓고 나가서 마음 놓고 즐기고 늦으막히 돌아온다.

일부이겠지만 이런 골프 중독여성들의 착한 늑대 소위 멋쟁이 ‘골빠’ ‘골친’에 대한 시각은 비골프인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충분한 먹이와 라운드 욕구를 충족 시켜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오뉴월 구시월에는 땅팔고 집을 팔아서라도 골프를 즐긴다’거나,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는 농담이 나올 때면 가정과 골프의 무게 균형이 골프에 기울어져 있다는 경고의 신호다.

건전해야 할 사교 힐링 스포츠가 길을 잘못 들어 골프도박이나 부적절한 상대까지 만나며 딴 길을 걷는다면 당연히 사회적 지탄 대상이다.
가정과 골프에서 주객이 전도되고 앞뒤가 뒤바뀐 채 골프에 몰입한다면 패가망신 지경에 이르기 십상이다.

이처럼 가정과 가족을 저버리고라도 라운드 충동이 생긴다면 즉시 채를 던져 버려라.가정을 구해야 후회가 없는 여생이 보장 되는데 이런 비뚤어진 충동을 억제할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채 자체를 잡을 자격이 없다.

신은 만인에게 공평하며 인과응보 천벌이란 말도 있지 않던가.

돈과 명성을 얻자 가정을 버린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에게 하늘은 허리부상을 일으켜 성적을 추락 시키더니 끝내는 교통사고의 벌을 내려 양다리를 부셔 버렸다.
골프장으로 향하는 그의 발길을 끊었다고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믿고 있다.

골린이들에게 스윙의 기량 보다 골프정신, 신사숙녀의 道, 겸양예의지덕을 갖춘 올바른 골퍼의 기본자질, 골퍼로서의 기본인격부터 가르쳐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골프장은 다양하고 많은 야생동물들과 곤충들도 함께 살 때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며 라운드도 즐거워 진다.

물론 동물들의 마음으로 위장한 골퍼들은 환영대상이 될 수 없다. 골프장은 신사숙녀들의 건강한 스포츠 놀이터이자 건전한 사교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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