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여흥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를 문인화(文人畵)라고 합니다.
어떤 주제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수묵 산수화의 양식으로 그렸습니다. 조선시대 중, 후기로 내려오면서는 문인과 전문화가의 경계를 짓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그림은 화첩, 족자, 병풍, 부채 등에 그려져 풍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진경 산수화가의 대가 겸재 정선의 ‘금강산도’라든가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표암 강세황의 ‘사군자’, 다산 정약용의 ‘매화병제도’, 심사정의 ‘맹호도’, 추사 김정희의 ‘부작란도’, ‘세한도’등은 전문화가의 기교를 뛰어 넘는다 해도 부족함이 없고 문화재적 가치도 높습니다.
문인들에게 그들의 시(詩), 서(書), 화(畵)는 선비로써 그동안 닦아온 내면세계를 최소의 붓놀림으로 솔직하게 드러낸 결과물이라고 하겠습니다.
문인화에서 사람 사랑, 이웃을 위한 삶이 아니라 벼슬 얻은 후 유유자적의 모습만 보입니다.
문인화와 달리 민화(民畵)는 이름 모를 대중이 각각 생활 속에서 소재를 취하여 특별한 형식없이 오랜 세월에 걸쳐 관습적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민화에는 시나 그림의 제목과 낙관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민화는 계층이나 신분의 구분없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그림으로 생활과 밀접한 것이 특징입니다.
민화의 내용은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십장생이라든지 또 나쁜 귀신을 쫓아내고 경사스러운 일과 복을 불러들인다는 사신도나 십이지 신상을 그렸기 때문에 시대를 지나며 이어오고 있습니다.
생로병사의 인간고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신선이나 국태민안에 공을 이룬 왕이나 단군의 그림이든지 특히 중국 삼국시대 영웅으로 관우, 장비의 그림을 그려 숭앙하기도 했습니다. 민중은 예나 지금이나 고통을 벗어난 최소한의 행복을 추구한 모습들입니다.
나아가, 양반 집안에서는 입신출세를 위해 ‘평생도(平生圖)’를 그려 집안에 두고 꿈을 키우게 했습니다.
이 평생도는 8폭에서 12폭 병풍에 그렸는데 태어난 후 돌잔치 성인으로 혼례식, 과거급제, 관직제수, 감사, 판서, 좌, 우의정, 영의정, 회혼례 등을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무반(武班)인 경우는 출생, 무술연마, 승마, 무과시험, 출전(出戰), 육전, 해전, 개선, 은퇴후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일대기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림의 완성도는 민화의 치기(稚氣)어린 작품들보다 훨씬 섬세하고 색채와 구성과 서사적 내용이 잘 담겨있습니다.
또 그림의 한 영역은 놀이문화에도 이어져 있습니다.
‘승경도(陞卿圖)’놀이가 있는데 조선시대 관직을 그림으로 그려 놓고 윷가지나 그 비슷한 놀이도구로 두 사람 이상이 돌려가며 던지며 놀이를 하여 결국은 영의정에까지 먼저 이르는 자가 이기는데 이는 관직에 대한 체계적인 관념을 익히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삶의 가치는, 자기를 잘 극복해서 예를 회복하여 이웃과 더불어 사는 가치보다 부귀공명을 최우선에 둔 의식이 그림과 놀이에 나타나 있습니다. 효(孝)가 백행의 근본이라고 했는데 그 효의 마지막은 입신출세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덕성이나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와 내면의 진실을 존중하고, 예의를 먼저 가르치고 이웃과 더불어 돕고, 나누는 것이 그림에서 안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벼슬이 먼저이고, 권력의 힘을 얻어 부귀공명이 최우선시 되는 가치관만 보입니다.
그러한 가치관은 현대에도 이어져 자본주의에서 누릴 수 있는 각종 권력을 잡고, 누리며 세습화하려는 탐욕의 눈길이 세상을 두렵게 하고, 거칠게 하고, 차갑게 하고 있습니다.
그 권력들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토르’가 가진 무소불위의 망치 ‘묠니르’처럼 적이라고 생각되는 상대방을 향해 던져 상대방을 파괴시킨 후, 부메랑처럼 돌아와 토르의 손에 쥐어지면 또, 다음 상대를 향해 던져 끊임없이 반복해서 상대가 궤멸되거나 무릎 꿇게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비오는 날에 우산이 되어 주고, 눈 먼 사람에게 지팡이가 되어주고, 말 못하는 이들에게 입이 되어주고, 다리를 못 쓰는 이를 업어주고, 굶주리는 이들에게 밥을 나누어 주며 함께 살아가며 행복한 삶의 향기와 웃음으로 세상을 가득 채우는 날이 오겠지 하며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