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골프장을 다녀 보았지만 똑같은 코스나 홀은 전혀 없다. 건설할 부지의 지형이나 환경, 사업주가 원하는 가이드라인(지침)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다만 국내에도 세계 유명코스의 시그네쳐홀(그 코스의 가장 아름다운 대표 홀) 모양을 비슷하게 흉내내어 설계한 홀은 많이 보인다.
코스설계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객관적 설계기준과 그 골프장만의 특별한 기대치가 있기는 하나 설계가들 마다 각각 그들만의 독특한 성향이나 철학이 있어서 그 결과는 또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코스설계는 그 누가 어떤 컨셉을 채택하든 간에 공통적인 목표 그 설계의 최종적인 결과는 골퍼들의 샷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고 안전하며 공정하게 테스트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특히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포인트는 경기기량이 각기 다른 수 많은 골퍼들을 공통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에 근접한 설계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코스설계의 10대 보편적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안전성
2. 융통성(개별능력에 따른 코스 길이의 다양성)
3. 샷밸류(난이도, 모든 샷이 중요시 되어야)
4. 공정성(상하수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제공)
5. 진행(효율적 홀 순서)
6. 흐름(플레이어 이동성)
7. 균형(기준타수, 샷밸류, 진행의 균형배치)
8. 관리비(경제적 절약성)
9. 심미성(아름다운 코스로)
10. 토너먼트의 가능성
특히 2~7번 항목은 플레이어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공정한 도전기회도 주기 위한 6대 설계기준이라고 한다.
이상의 순위에서 보듯이 설계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항목은 안전성이다. 날아가는 골프공의 위력은 총알 못지 않게 위험하므로 라운드 시 안전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건설장소가 산지형이나 평지형일지라도 플레이 중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의 구상을 해내야 한다.
만약 특정 홀에서 비슷한 안전사고가 반복 된다면 그 홀만의 설계오류의 문제나 골프장과 피해자간의 단순한 보상문제에 그치지 않고, 최악의 경우 그 골프장사업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처할 정도로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들은 실력이 천차만별이므로 어디에서 사고가 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최대한 낙구지역(Landing area, Impact area )을 예측 평가하여 물리적으로 분리시켜야 한다.아니면 완충지대 즉 벙커 러프 연못 숲 나무 화단 등을 설치해야 한다.‘내 샷거리 지점엔 꼭 벙커 아니면 헤져드가 있다’라는 불평은 안전성 설계와 연관이 있다.
그런데 코스 설계시 안전성 못지 않게 무거운 가중치를 두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항목이 있는데 그것을 바로 ‘샷밸류’(Shot Value 샷의 가치)라고 하며 명문코스 선정시 가장 많은 배점을 차지하는 평가항목이다.
이 용어는 외래어라서 우리에겐 좀 생소하고 이해가 언뜻 안 가지만, 간단히 말하면 그 코스에서 라운드 할 때의 샷 하나하나의 중요도를 말한다. 방심하여 한 번이라도 미스샷이 나오면 치명적이어서 스코어가 왕창 무너 질 수 있을 만큼 모든 샷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다.
샷밸류가 높은 코스의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다양성
볼 위치, 구사해야 할 샷기술, 설정한 목표에 따라 14개 클럽을 모두 활용 다양하게 샷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정확한 방향 정확한 거리에 Fade나 Draw, Lob샷 같은 특수한 구질도 구사해야 최대의 결과를 얻게 되는 코스.
둘째. 도전성/보상성
‘모 아니면 도’ 처럼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홀구조나 볼위치 상황이 많이 생기는 코스다.
질러 버려?돌아갈까? 하는 갈등의 상황에 자주 직면하게 된다.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여 성공했을 때 큰 점수로 보상 받아 대박 수준의 스릴을 맛보며 실패하면 폭망할 정도의 댓가를 치른다.
장타에 방향성까지 갖춘 고수라면 헤져드를 넘겨 One on 또는 그린주변 까지 보내는 모험으로 이글이나 버디를 노려볼 수 있지만 실패하면 최소 2타 이상 잃는다.
셋째. 공정성
상수나 중수 하수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같은 상황과 기회가 제공되며 하수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면 모험과 도전의 기회, 성공과 실패의 맛을 보게 만든다. 즉, 하수는 직접 지르지는 못해서 우회하지만 파는 물론 버디까지도 노릴 수 있는 홀. 상하수가 함께 플레이 해도 모두 다 즐겁고 만족하는 코스다.
샷벨류가 높으면 모든 샷이 각각 다 중요하고 치명적일 수 있어서 항상 긴장을 풀 수 없으며 그만큼 샷 한 번의 가치(중요도)는 높다. 다양한 샷기량을 테스트 받는 난이도가 높고 공략이 까다로운 코스로 분류된다.
그래서 코스에 나가 보면 누구나 코스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평이하고 공략이 쉽게 보이지만 실제 매 샷마다 깊은 고민과 갈등에 휩싸이고 집중과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짜증은 유발되지 않고 상하수 누구에게나 즐거움과 성취감의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코스라면 이 코스는 설계가 잘 된 명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긴장할 필요도 없고 대충 기본적인 샷만 해도 온그린이나 그린 주변까지 보낼 수 있어서 아무리 못해도 보기로 막을 수 있는 평이한 코스라면 샷벨류와 난이도가 낮은 코스다.
설계시 흥미로운 고려사항도 있다.
역학적으로 해발고도가 높으면 중력과 공기밀도의 변화에 의해 클럽의 비거리가 증가한다.
고도 100야드 마다 비거리는 1야드 증가하는데 볼의 낙하지역 산정시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달에서 드라이버는 약 500야드 이상, 2,600m 백두산에서는 17% 증가, 고도 1,136m의 정선 하이원CC에서는 비거리가 약 10야드 더 나간다.
일반적으로 설계가 잘된 코스를 명문코스로 여기지만 미국은 미국대로 한국은 나름대로의 평가기준이 있을 뿐 국제적으로 통일된 명문코스의 기준은 없다.
실제 어떤 기관에서 명문으로 선정했지만 다른 평가주체에서는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즉 설계가 반드시 명문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독보적 세계 1위 명문코스 오거스타 내셔널GC(미, 조지아)는 마스터 대회를 유치해서 명문이 됐고, 세인트 루이스 올드코스(스코틀랜드)는 The Open이 개최되면서 오랜 세월 견뎌 온 친환경적 생태환경적 창조물로 명성을 얻고 있다.
파인밸리GC(미, 뉴저지)는 플레이어에게 최고의 긴장과 완벽한 샷기술을 요구하고 성공했을 때는 최상의 희열과 점수로 보상해 주기 때문에 명문이 되었다.
페블비치 골프링크스(미, 캘리포니아)는 천혜의 자연풍광으로 골퍼들을 매료시키기 때문에 유명한 코스가 되었다.
국내 역시 평가기관에 따라 고무줄 잣대가 적용된다.
설계가들의 눈으로 보면 명작으로 여길 수 있는 곳이 일반골퍼들의 시각으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 일반골퍼들이 피부로 느끼는 좋은 골프장의 기준은 단순할지도 모르나 대부분 실질적이고 현실적이다. 접근성이 좋고 코스관리가 잘 되어 있고 싸고 맛있는 음식과 서비스로 가성비가 높으면 좋은 코스로 자주 가고 싶어진다.
유명인사들이 자주 찾고, 호화로운 클럽하우스 장식, 비싼 입장료와 엄격한 복장규정, 고급스러운 식음료와 세련된 서비스가 곧 일류 명문코스의 바로미터는 아니다.
토목설계에 해당하는 골프코스 디자인은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을 살리면서도 심미안적 예술성과 설계자의 철학이 접목되어야 하며 안전성 편의성 공정성 효율성까지 가미되는 복합적 토목예술 창작작업이다.
코스설계가는 개성과 독창성을 얹어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하는 공간예술가 골프코스 Architecture Artist 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