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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저주해야 되는 사회?

황진수 칼럼-한성대 명예교수 / 정치학 박사 / 한국노인복지정책연구소 소장
사회적 사실(Social facts)라는 말이 있다. 사회학의 비조인 프랑스의 Durkheim
(뒤르껭)이라는 사람이 지칭한 말이다. 이는 현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사실로서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한국사회의 사회적 사실을 예를 들면, 부부합계출산율 1.19명(2013년) 노인인구 640만 명으로 전 인구의 12%, 연간 교통사고 사망 6,000명에 자살 15,500명, 마약류복용인구의 증가, 청년실업의 증가, 이혼율 증가 등 수없이 많다.

또 한 면을 보자. 우리나라는 산업화, 민주화를 성취한 세계 몇 안 되는 나라이다.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국민소득 70불 수준에서 2만500불 수준까지 단기간에 만든 나라이고,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주는 국가로 도약했다. 1964년 수출 1억불 달성했다고 국가적 차원에서 얼마나 기뻐했는가. 한국은 200개 국가 중 수출 7위를 기록한 창의적이고 부지런하고 무엇이든 해내는 우수한 민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 BBC에서 한국을 평가하길 「풍요롭지만 불행한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왜 그럴까? 우리는 기본이 갖춰져 있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이 사회를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는 도덕, 법률이고, 나무줄기는 사회조직이며 잎사귀는 경제를 말한다. 그리고 꽃과 열매는 정신세계를 지칭한다 볼 수 있다.

우리사회는 나무줄기와 잎사귀는 갖추어져 있는데 뿌리와 열매가 부실하다. 그 중 하나가 질투문화, 시기문화이다. 남 잘되는 것 보면 배 아픈 풍조가 난무하고, 남을 공격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민족으로 변모했다.

스타가 되어 사회의 선망의 대상이 되면 질그릇 항아리의 게처럼 밖으로 나가려는 놈을 끌어내린다. 그러다보니 그 사람이 받아야 할 체벌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사회는 의인이나 영웅을 만들지 않는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데 현 시대는 난세임에도 불구하고 영웅이 탄생하지 못한다. 이러한 마녀사냥의 시대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다시 말하면 울분을 가진 대다수가 불만에너지를 표출하는 방법으로 오로지 소수엘리트를 끌어내리는 것을 언제까지 진행할 것인가.

「사금파리」가지고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가해하고 선혈이 낭자한 모습을 보면서 심리적 쾌감을 느끼는 사회가 지속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따라서 지혜롭고 용기있는 사람은 움츠리고, 높이 올라가길 꺼린다. 목소리 큰 사람이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밀림속의 야수처럼 사회를 전복하려 한다.

우리가 흔히 지칭하는 좌파세력, 일부 시민단체, 전교조들에 대한 평가를 의적 홍길동이나 로빈후드처럼 생각하고, 당동벌이(黨同伐異)가 횡행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 것처럼 떠든다.

그러면 이러한 민심을 어찌 수습하고 전열을 정비해야 하는가.

첫째, 높은 사람, 특혜 받은 사람들은 받은 것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해야 한다.

그리스 시대에도 지도층은 전쟁이 나면 황금보화를 내놓던지 참전을 하던지 했다. 영국도 사회지도층 자제들이 솔선해서 참전을 했다. 지배계층은 더 겸손하게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둘째, 관용의 시대를 조성해야 한다. 사회가 흘러가는 과정에서는 별별일이 벌어지기 마련인데 그런 사회에 대한 사회적·인간적 차원의 관용이 없다. 톨레랑스(Tolerance)가 없다.

누구든지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 있다. 그것을 역지사지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기는 더러우면서 남이 더러우면 무조건 삿대질하는 사회는 안 된다.

셋째, 사회에 대한 교육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사회교육은 민주시민교육, 복지교육, 세금납부, 국민정신 수준향상을 정하는 좌표설정이 내재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가정교육, 사회교육, 정치교육이 어우러져 갈등구조를 해소하고 민주화를 이룩하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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