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마약·무기밀매…해커 6000명 구성된 군 창설
"마약 판매·불법무기거래로 김씨일가 사유자금 챙겨"
"북한, 지금까지 0.01%도 바뀐 것 없어…그저 전략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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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첩보기관 정찰총국 출신 김국성씨. (사진 = BBC 홈페이지 캡처) |
30년 동안 북한 최고지도자의 눈과 귀, 두뇌 역할을 해 최고위층까지 올랐다는 한 탈북자가 김정은이 집권한 북한의 실상에 대해 밝혔다.
BBC는 11일(현지시간) 탈북자 김국성씨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북한 첩보기관에서 활동했으며 북한당국을 비판하는 자들에게 암살자들을 보내고, '혁명 자금'을 모으기 위해 불법 마약 연구소를 지었다고 주장했다.
2014년 탈북해 이후 서울에 살면서 국정원 산하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BBC는 김씨의 주장을 모두 확인할 순 없었지만 그의 신원은 확인했다고 전했다.
김씨에 따르면 북한 지도부는 현금을 벌어들이기 위해 마약 거래, 중동과 아프리카에 무기 판매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또 한국을 정치적으로 예속화한다는 목표로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북한의 스파이와 사이버 네트워크는 전 세계에 도달할 정도라고 밝혔다.
김씨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북한의 첩보기관인 정찰총국에서 활동한 몇 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초기 어떻게 비치고 싶어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이 '전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젊은이였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그의 뒤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즈음 한국으로 망명한 전직 북한 관리를 죽이기 위한 테러 대책반 구성 명령이 있었다.
김씨는 이 명령에 대해 "극비에 황장엽 선생을 테러하기 위한 TF팀이 꾸려지고 공작이 진행됐다. 저는 직접 이 공작을 지휘했다"며 "'최고지도자'라는 전사가 된 김정은이 (김정일에게) 만족을 주기 위한 행위였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국제사회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테러가 최악의 인권유린 행위로 간주되지만 북한에서는 그렇지 않다. 북한에서 테러는 김정일, 김정은의 최고 존엄을 수호하는 정치수단 도구로 여겨진다"고 강조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는 "그러한 작전은 상부 지시가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북한에서는 도로 하나를 만들어도 최고지도자의 허락없이는 할 수 없다. 김정은의 특별 지시에 의해 공작되고 이행된 군사작품이자 성과품"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북한에서 자신이 맡았던 책임 중 하나가 한국 대응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목표는 '남조선의 정치예속화'였다고 했다.
김씨는 직접 대남간첩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공작 임무를 수행한 것이 여러 건 된다고 했다.
그는 "1990년대 초 청와대에 북한에서 보낸 공작원들이 5~6년 근무하고 무사히 북한으로 복귀한 사례도 있다"며 "그렇게 북한이 북파공작원이 남한의 구석구석 중요한 기관들은 물론이고 시민사회단체 여러 곳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BBC는 그의 발언을 입증할 근거로 한국 교도소에 한때 다양한 종류의 간첩활동으로 체포된 건이 수십건이었음을 제시했다.
다만 북한 소식을 전하는 언론사 NK뉴스에 따르면 북한이 최근에는 간첩이 아닌 신기술로 정보 수집을 하기 때문에 2017년 이후 한국에서 간첩 관련 범죄로 체포된 사람들이 크게 줄었다고도 전했다.
김씨는 북한이 숙련된 해커 6000명으로 구성된 군대를 창설했다고 경고했다.
김씨에 따르면 김정일은 이미 1980년대에 사이버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신병 훈련을 지시했다. 그는 6년제인 모란봉 대학에서 전국 각지의 인재를 선발해 특수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2014년에는 이 조직이 소니 픽처스를 해킹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북한이 마약 거래와 무기 밀매로 현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이 북한에 있을 당시 북한은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마약을 만들어 팔고, 이 수익을 '혁명 자금'으로 김정일에게 바쳤다고도 했다.
그는 "북한에서 마약을 집중적으로 생산한 때는 1990년대 김정일 집권 당시 북한이 겪은 극심한 기근,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라며 "그때 김정일의 혁명 자금이 바닥칠 때였는데, 제가 그 과업을 받고 3명의 외국인을 북한에 들여와 조선노동당 715연락소에 생산기지를 세워 마약을 만들었다. 얼음(필로폰 지칭 은어)을 만들어서 달러를 벌었고 그게 김정일 혁명 자금으로 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면 북한의 모든 돈은 김정일, 김정은의 개인 것이다. 그 돈을 갖고 자기 별장도 짓고, 차도 사고, 먹고 입는데 쓴다"고 부연했다.
김씨에 따르면 북한의 또 다른 수입원은 작전부가 관리하는 불법 무기 판매다.
그는 "북한이 특수소형잠수함, 반잠수함, 유고급 잠수함을 아주 첨단화시켜서 잘 만든다"며 "거래가 잘 돼서 북한 관리가 이란 총참모장을 불러서 판매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장기간의 내전을 치르고 있는 국가들에 무기와 기술을 판매했다"고 말했다.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에 따르면 북한과 이란의 무기 거래는 1980년대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여기에는 탄도 미사일도 포함됐다.
유엔은 최근 몇 년 간 북한이 시리아, 미얀마, 리비아, 수단 등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며 북한에서 개발된 무기가 세계 곳곳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김씨는 특권층이었던 자신이 탈북한 배경에 대해서도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1년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숙부인 장성택을 포함해 위협 요소로 여기는 사람들을 숙청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고위층이었던 김씨도 신변의 위험을 느껴 한국으로 도피할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김씨는 최근 김 위원장이'특정조건이 충족된다면 가까운 시일 내 한국과 대화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지금 제가 이곳에 와서 수년 잘 지냈는데, 북한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전략에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알아야 할 것은 북한은 지금까지 0.01%도 바뀐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북방 동포들을 독재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