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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고급문화는 있는가

황진수 칼럼 -한성대 명예교수 / 정치학 박사 / 한국 노인복지정책연구소 소장
논리학에서 “○○는 있는가”라고 긍정적으로 질문하면 부정적인 결과를 유도한다. “너 철수냐?”라고 물으면 ‘너는 철수가 아닌데 왜 철수라고 하느냐’는 의미를 포하고, 거꾸로 “너 철수 아니냐?” 하면 ‘넌 철수인데 왜 아니라고 하느냐’ 하는 긍정적 대답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위의 제목 “노인을 위한 고급문화는 있는가”라는 질문은 당연히 고급문화가 없다는 것을 지칭한다.

사실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복지정책의 핵심은 빈곤계층을 비롯한 소외계층을 주요 고객(顧客)으로 했다. 그러니까 복지 수혜자를 국민기초생활 대상자를 비롯하여 장애인, 소년소녀 가장, 오갈 데 없는 여성들이 복지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요보호 대상자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걸맞은 복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따라서 배운 노인, 가진 노인, 건강한 노인을 위한 복지정책에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예를 들면, 고급공부원, 장교, 교육자, 기업체 CEO, 전문가집단 등이 은퇴를 한 후 갖는 여가문화가 특별한 것이 없다. 대개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 여가나 몇몇 친지들과의 모임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중산층이나 그 이상의 노인을 위한 노인여가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예를 든다면, 고급문화, 충분한 휴식을 동반한 역사와 예술이 함께 만나는 노인들의 장(場)이 필요하다. 이 고급문화 속에는 연극, 영화, 역사 해설, 시사 강의, 정보화 사회 특강 등이 포함될 수 있고, 어느 경우에는 특수한 영역에 해당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강사로 활용되는 사람은 자원봉사자로 하거나 아니면 노인 중 일정한 학식을 갖춘 사람에게 적은 비용을 지불해도 될 것이다.

또 공간도 충분하다. 관공서가 토요일은 휴무이므로 토요일에 관공서의 방 하나를 임대해서 쓸 수도 있고, 노인복지관, 지역사회에 있는 대학교 건물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노인을 위한 자격증반, 학점은행반, 교양교육반 등을 개설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독일에 가면 스탐티슈(Stammtisch)라는 것이 있다. 지정된 식당이나 맥줏집에 지정된 시간, 좌석을 정해주는 제도다.

예를 들면, 어느 요일 밤 6시부터 12시까지 몇 개 테이블은 지정된 조직이나 단체가 쓰는 것이다. 단체 구성원 중 나올 수 있는 사람만 나와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 정치 얘기, 개인의 신상 얘기에 이르기까지 대화하며 떠들고, 심지어 노래까지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여가문화를 즐기면서 연대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노인들에게 계층화시키는 여가문화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그 동안 우리 노인들은 농경사회문화를 배경으로 한 여가문화에 익숙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농경사회에 알맞은 국한된 놀이문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또 관광도 값싼 사구려 관광에 가게에 가서 물건 팔아 충당하는 관광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다. 이제는 중산층 이상 노인을 위한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관광도 개발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의 초점도 빈곤계층의 차원을 넘어가야 한다. 의료정책도 의료급여 수준을 벗어나 중산층을 위한 의료복지정책이 나와야 한다.

허구한 날 가난한 계층만 돌보아 주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실용복지정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제 노인을 위한 고급문화를 새로운 정책의제로 포함시킬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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