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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두레박 -반윤희(서양화가/수필가/칼럼니스트/시인)

어제도 오늘도 비가 내린다.
누워서 내다보는 창밖의 모습이 지나온 세월을 회상(回想) 하게 만든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한 폭의 그림은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허리를 펼 수 없어서 누워서 지내다 보니, 언제나 누워서 창밖을 내다보게 되었다.
창밖의 나무를 바라볼 때면 언제나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생각이 난다.

창가에 비추이는 하늘 높이 푸름을 과시하는 나무는 햇볕이 쪼이는 날은 잎들이 반짝이고 바람에 살랑거리기도 한들거리기라도 하는 날은 소녀 시절 마음이 살아나기도 하고, 오늘처럼 비가 산발적으로 내려서 찢어질 듯 세차게 흔들리는 잎을 보노라면, 젊은 시절 힘들었던 일들이 상기되고, 천둥소리와 창을 때리는 비바람 소리는 가슴을 요동치게도 한다.

이런저런 모습으로 보이는 내 창의 비추이는 나무 하늘 구름 볕 그리고 눈부시게 반짝거리며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유희를 보면서, 앞으로 살아 낼 내 인생은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하나 자꾸만 되뇌게 만든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이제 비는 너무 싫다. 비 오는 날이면, 이 몸뚱어리가 너무 민감한 반응을 일으킨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일어서기가 겁이 난다.

나와의 싸움을 또 시작해야 한다. 그저 주저앉을 수는 없다. 우울증을 날려 버리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나와의 싸움을 끝도 없이 한다.

오늘도 햇볕을 받으며, 또 걷고 걷는다. 그리고 온갖 기구를 타면서 운동을 한다. 백일이 되니 통증도 사라지고 조금씩 용기도 생기고 이겨내야 한다는 의지도 생겼다.

2019년 12월에 허리 통증으로 정말 죽을 만큼 괴로웠던 시간이 이제 희망으로 바뀌었고, 얼굴도 살아났고, 몸무게도 예전처럼 돌아왔다.

2021년 3월 31(음력 2.19) 일은 75세 생일이다. 꼬박 통증과의 싸움을 시작한 지 1년 3개월이 되었다. 작년 생일 때만 해도 죽상이었던 모습이 많이 살아났다.

올해는 생일상을 여러 번 받게 되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맛집과 유명 카페에 가서 생일을 해 주었고, 딸이 마음먹고 손녀들과 음식을 만들어서 생일상을 잘 차려 주었고, 또 동생들과도 생일 기념을 했다. 역시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가족밖에 없구나 싶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인가 보다. 내 마음도 모르게 이제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된 것 같다. 그동안 생활전선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자식들의 고충은 생각지도 못하고 병마와 싸워야 하는 내 고초만 생각하면서 혼자라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섭섭해 하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 같은 생각들로 마음의 병이 되어 슬프고 아팠다.

그런 와병 중에도 나는 자식들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 쓰면서 나와의 싸움을 해 왔다.

노인이 되는 것이 아마도 이런 건가 보다. 누가 누구를 위하여 사는 것도 아닐진대, 섭섭해하는 그 마음이 가족을 괴롭히는 것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

좀 더 성숙한 노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오늘따라 창가에 비추이는 유난히 곱게 물든 단풍이 바람결에 일렁인다.

반 윤 희
수필가. 시인
서양화가. 칼럼니스트

● 한국문인협회 회원(전 남북 문학교류위원)
● 전 중랑 작가회 대표 / 국제 펜클럽 회원
● 시조사 출판 100주년 기념, 공모전 최우수상
● 동서커피 문학상 수필 심사위원
● 현 한국엔지오신문, 노년신문, 남양주 명품타임즈 객원기자
● 수필집: 타이밍을 못 맞추는 여자. 맨드라미 연가. 소망의 황금마차.  내 인생의 앙상블(詩畵 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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