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10일 개최된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빛가람 국제전력기술 엑스포 2021(빅스포) 기조연설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지형적 조건과 기후환경을 감안할 때 (원전 없는 탄소중립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탄소중립에서 과학기술이 불가결하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 원전 문제”라고 강조했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이처럼 원전 확대를 강조한 것은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탈 탄소 전략에 따라 원전 확대로 정책변경을 하면서 원전을 확대하는 추세임에도 대한민국만 탈원전이라는 역주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 외에도 원자력 관련 전문가와 학계, 경제계, 정치계 등도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2035년까지 4400억달러(약 518조원)를 투입해 최고 150기 원자로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50기는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국가가 지난 35년간 세운 원전 수보다 많다.
중국 뿐 아니다. 전력 부족으로 에너지 위기에 처한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도 잇따라 원전 건설로 방향을 틀었다.
탈원전을 선언했던 프랑스는 최근 10억유로(약 1조4000억원)를 들여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친원전 정책으로 돌아섰다. 20년 넘게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영국도 2050년까지 약 45조원을 투자해 SMR 16기를 건설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도 최근 차세대 원자로 기술과 SMR 개발에 향후 7년간 32억달러(약 3조7000억원)를 투입하고, 아이다호주에는 600㎿급 중소형 원전 12기가 새로 건설 계획도 발표한 바 있다.
원전 중요성을 강조해온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 중 원전 비중 목표치를 20~22%로 유지하기로 하는 새 에너지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특별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40% 이상으로 상향하겠다”고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만 고집하는 현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전력난 등 온갖 부작용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정부는 신한울 3, 4호기, 천지 1, 2호기 등 원전 건설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올해 가동 중인 원전은 24기로 향후 추가 준공될 원전은 신한울 1, 2호기와 신고리 5, 6호기 등 4기에 불과하다.
문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에너지 믹스’ 해답이 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풍력 발전의 경우 초속 11m가 넘어야 경제성 있는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가 들어설 전남 신안 앞바다 풍속조차 초속 5m 안팎에 불과하다.
태양광 발전 역시 야간이나 구름이 꼈을 때 전기를 생산할 수 없어 효율성이 높지 않다는 우려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원자력이 해법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 목표 실현 과정에서 원전 필요성을 강조하는 만큼 우리도 탈원전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리하게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다 전력난을 맞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원자력학회의 ‘에너지 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재생에너지 비율을 50~80%까지 달성하려면 태양광, 풍력 발전 용량을 지금보다 10~40배 늘려야 한다. 이 경우 전기 소비자인 국민은 연간 41조~96조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세계 최고수준이던 원전 기술 후퇴와 선진국들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로사톰의 알렉세이 리카체프 사장은 최근 “2035년까지 대형 신규 원전 10기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로사톰은 지난해 총 5240억루블(약 8조7000억원)을 원전에 투자했고, 올해 7710억루블(약 12조8000억원), 내년엔 1조2000억루블(약 20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중국도 국영 원전 기업인 중국광핵집단(CGN)과 중국핵공업집단(CNNC)을 앞세워 자국 내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경제성을 자랑하는 원전 기술을 가지고도 탈원전 여파로 해외 수주에서 밀릴 우려가 크다.
한국이 독자 개발한 신형 원자로(APR1400)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설계 인증을 받은 데다 건설 비용도 저렴하지만, 국내 탈원전 여파로 해외 수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차세대 원전인 SMR도 개발은 하되 수출만 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는 짓지도 않으면서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탈원전 정책으로 세계 최고 원전 기술이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면서 정부가 하루 속히 탈원전 정책에서 벗어나야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