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가까이 지속된 코로나19 여파로 말기 암 환자 등 중증 질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등 직격탄을 맞으면서 재택의료가 중증 환자의 치료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네의원·병원 등 1차 의료기관과 상급종합병원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재택의료 활성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김범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팀이 2019~2020년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한 암 환자 1456명을 대상으로 의료 이용실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한 암 환자 수는 총 99명으로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53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말기 암 환자는 코로나19 의심 증상인 고열, 기침 등으로 인해 응급실 입실이 제한된다. 집에서 버티다가 호흡곤란 등으로 증상이 악화돼 응급실로 가더라도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장시간 대기해야 한다.
또 코로나 음압병상(공기 중 바이러스를 병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차단하는 병실)이 꽉 찬 경우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 임종이 임박해서야 응급실을 찾아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치료 등을 받다가 사망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중증 질환자와 가족들이 받는 고통도 상당하다. 환자는 어렵게 입원해도 면회가 제한돼 고립감, 우울감 등을 호소하고 있고 가족도 보호자 출입 제한으로 1명이 24시간 상주하고 병원 방문이 어려운 환자의 경우 집에서 간병하면서 지쳐가고 있다. 환자가 집에서 질병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중증 질환자가 받을 수 있는 재택의료 서비스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는 "말기 암 환자는 의료진이 자택을 방문해 완화의료를 제공하는 '가정형 호스피스' 대상이지만 암을 치료하는 중이라면 이용이 불가능해 대상자가 한정돼 있고,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노인성 질환자는 '노인장기 요양보험' 서비스 대상자이지만 방문간호까지 받으려면 의사 지시서가 필요해 이용률이 1% 미만이다"고 말했다.
결국 상급종합병원에서 주로 진료받을 수밖에 없는 중증 질환자들은 요양병원에서 남은 삶을 보내게 된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1차 의료기관은 상급종합병원에서 퇴원해 지역사회로 돌아온 중증 환자에 대한 치료 정보와 상급종합병원 전문의와의 소통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원) 살림의원장은 "1차 의료기관은 환자의 '케어플랜(말기 진료에서 사망까지 계획)'을 새롭게 수립해야 하는데 환자의 상태 등 정보가 부족하다"면서 "중증 환자 주치의가 없는 반쪽짜리 회의에선 한계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적정 건강보험 수가 산정과 상급종합병원의 역할을 고민하는 목소리도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보험에서 어느 정도까지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상급종합병원이 지역사회와 연계해 재택진료를 제공하는 것은 좋지만 이를 지원할 역량이 되는지, 역량이 분산되진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상급종합병원은 난이도가 높은 중증 환자들을 많이 진료하고 있는데 재택진료까지 관여하면 진료 과부하가 걸리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증 환자 재택의료가 활성화되려면 1차 의료기관과 상급종합병원 간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중증 환자에 대한 치료의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준순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상급의료기관 의료진은 중증 환자를 퇴원시킬 때 자택진료를 어떻게 지원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재택의료를 담당하는 1차 의료기관 의료진을 대상으로 대처방법 등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또 재택의료에 필요한 인력이나 자원을 분배할 때 질환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조영이 대한간호협회 가정간호사회장은 "치료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집에서 임종을 원하면 임종 돌봄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집에서 품위있는 임종까지 이뤄질 수 있어야 진정한 재택의료"라고 강조했다.
재택의료 인력 양성, 건강보험 수가체계 개편, 촘촘한 사회복지망 등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추 살림의원장은 "재택의료의 핵심은 1차 의료"라면서 "적절한 재택의료 인력 양성 교육과 훈련, 수가체계 개편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지 서울대병원 의료사회복지팀 사회복지사는 "국내 사회복지제도들은 분절돼 있어 개인이 모든 제도를 인지하고 이용하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중증 환자는 치료가 장기화될수록 간병 부담감으로 환자와 가족이 어려움을 겪는 만큼 병원에서 퇴원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적절한 사회복지제도 연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가 지역사회에 거주하며 주거, 보건의료, 요양 등 필요한 돌봄을 제공받는 '지역사회 돌봄케어(커뮤니티케어)'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