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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 문예’ 시인 22명, 89년전

대만 조명하의사 의거 현장 가다
지난 11월 10일 한국 (사)푸른세상 ‘아세아문예’(회장 송병훈) 시인 22명은 대만 현대시인협회(회장 라이신賴欣)가 주최한 "제5회 아세아 시 감상 축제" 참석을  위해 대만 중부도시 타이중(臺中)을  방문했다. 이 대회는 현재 대만현대시인협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만 슈핑과기대학(修平科技大學) 김상호 교수가 다리를 놓아 2013년부터 매년  한차례 한국과 대만에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의거 현장 탐방은 사전에 조명하 의사의 타이중 의거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아세아문예> 송병훈 회장과 민형우 사무총장의 제의로 이뤄진 것이었다. 이에 조명하의사 기념사업회(회장 남기형)의 조영환 사무국장은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원 김주용박사의 저서 ‘타이완 항일 의열 투쟁의 선봉 조명하’ 20여권과 관련자료를  시인들에게 제공하였다.

조명하 의사는 일제강점기 어느 독립단체에도 소속되지 않고 단독으로 거사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조의사는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일본의 거물을 제거하거나 척살한 4의사로 불리고 있다.

1928년 5월 14일  오전  9시 50분 24살의 조명하는 지금의 타이중시 중구 자유로 2단 2호(현 합작금고) 앞 커브길에서 당시 무개차를 타고 타이중 기차역으로 향하던 일본의 왕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이며 육군 대장인 구니노미아(久彌宮邦彦)를 기다렸다가 척살하고 같은 해 10월 10일 타이베이 형무소에서 순국한 민족 영웅이다. 구니노미아는 조명하가 던진 독검에  목덜미와 어깨를 스치는 찰과상을 입고 독이 온 몸에 퍼져 계속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거사 8개월 후인 1929년 1월 사망하였다.

이날 조명하의사 의거현장 탐방에는 김상호교수와 현 타이중 시장의 최측근인 천옌빈(陳彦斌) 대만 신문화협회 집행장을 초청해 약식 강연을 들었다. 시인의 감성으로 조의사의 일대기에 감동 받아서 였을까? 누구는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하였다. 김교수는 의거 90주년인 내년 5월 14일에 맞춰 의거 현장에 표지석을 세우려고 지난 10년간 기회 있을 때마다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 고위층과 시정부 관계자들에게 부단히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 노력에 감동한 현 시장 린자릉(林佳龍)은 일제시대 대만 타이중의  역사적 유적지 10곳을 지정해 시정부 예산을 들여 단계적으로 표지석을 세우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 중의 우선 첫번째가 조명하 의사 의거 현장이다

천예빈 집행장은  강연에서 "지난 많은 시간동안 조명하 의사에 대해 아는 타이중 시민은 거의 없었지요. 최근 몇년 사이 김상호교수가 학술 논문을 발표하고 백방으로 뛰어다닌 결과 그 분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대다수의 자료도 김교수가 전해준 것입니다. 그는 이어 표지석도 내년 의거 90주년에 맞춰 시정부에서 세울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외국 어딜 가나 한국과 관련된  곳을 찾아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오늘 여러분의 탐방이 이를 증명해 주었고 아주 의미있고 뜻 깊은 자리로 저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대만과 한국은 같은 식민통치를 당했습니다. 제가 만난 한국인들은 일제식민에 대한 한을 풀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만인들은 일제식민에 대해 별 원한을 안 갖고 있는데 이는 우리 대만인들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라며 강연을 마쳤다.

김교수는 내년 의거 90주년을 맞아 몇가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중국, 대만, 일본의 학자와 전문가를 초청해 한국과 대만에서 각각 한차례의 국제학술회의와 타이중 의거 현장과 순국지 및 구형무소 자리에 표지석을 세우는 일이라고 했다. 

조명하 의사의 유독자인 조혁래 옹께서 지난 10월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분은 오래 전부터 나라 잃은 설움에 독립운동을 결심하고 마음이 흔들릴까봐 갓 태어난  자식을 보지도 않고 바로 집을 떠났던 아버지 조명하 의사의 선양사업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다. 

조혁래 옹의 명복을 빌며 그 분의 살아생전 못 다한 선양사업 특히 의거지 대만에서의 선양사업은 남의 일이 아닌 우리들에게 남겨진 숙제가 되었음을 국가와 민족은 알아야 할 것이다.

김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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