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한민족에게 있어 역사란 무엇인가?

기고 - 조 정 빈((전)세계일보 부사장)
지금 시대는 과거의 영토전쟁 경제전쟁시대에서 역사전쟁 문화전쟁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5천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에게 학교때 배웠던 역사는 진정으로 자랑스럽게 느껴진 적이 있던가? 

단군신화는 있는데 단군의 역사 실체는 없다. 광개토대왕비를 보면 동북아 대륙을 호령하였던 것 같은데 우리의 현실은 반도에 갇혀 마치 남의 역사같다.

그러는 사이에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나 발해의 역사를 자기들의 변방사로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배달의 겨레라 자랑은 하는데 배달국은 우리의 역사에 존재조차 안는다. 

왜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 말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가?  역사전쟁시대에 진입했다는데 한민족에게 있어 역사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한민족의 韓은 무엇이고 배달의 겨레 倍達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을 한겨레 배달민족이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한(韓)은 무엇이고 배달(倍達)은 무엇인가? 

배달은 밝달을 한문으로 음사한 표기일 뿐 한자로서의 의미는 없다. 
밝은 땅 이란 의미로 태양을 천제(天帝)로 인식하는 세계관을 발전시킨 태양숭배 천손족이라 정의할수 있다.
배달민족 최초의 나라는 환국(桓國)이고 그 뒤를 이은 나라가 배달국(倍達國)이다. 환국을 다스렸던 분을 환인(桓因- 밝은 님) 배달국을 다스린 분을 환웅(桓雄- 백성을 이치로 다스린 이)이라 했다. 

배달국에 이어 동이(東夷)9족이 모여 세운 나라가 조선(朝鮮)이고 이를 다스린 이가 단군(檀君)이다. 고조선이 진한을 중심으로 마한과 변한으로 나누어진 삼한시대가 열린다.  한은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우리말이고 서양에서는 KAN으로 신라나 일본서는 간(幹)으로 변했다.  

즉 하나에서 나왔고 하나는 광명의 땅 하라(하=해 라=땅)에서 어음변화를 일으켜 한(韓=Graet)으로 정착했다 
3한은 진한이 부여로 다시 고구려 백제가 갈라지고 마한과 변한이 신라와 가야 왜로 이어지며 발해와 통일신라시대로 이어져 간다.

‘여기서 왜(倭)는 키가 작은 왜(娃) 발음이 같아 15세기경 스스로 왜국(倭國)으로 일컬어 마치 일본을 지칭하는 것같이 와전됬으나 지나족들이 우리 한민족을 부르던 호칭이 한(韓)이전에 왜(倭) 였다.’

배달 한민족은 한 중 일 3국의 역사종주국 
동북아 상고사의 주역은 지나족(漢族)이 아니고 밝달문명이 최고최초의 문명이다. 건국신화가 없고 상고사가 없는 지나족이 배달민족의 중원대륙사를 그들의 역사로 훔쳐간 것이다. 

위로 삼황오제는 물론 한나라의 요·순임금도 은나라까지 동이족이었다. 수많은 대륙 왕조사에서 지나족이 세운 한족 왕조는 한(漢)·당(唐)·송·(宋)·명(明) 정도다. 

요·금·원·청은 그 출자가 모두 배달민족계이다. 중국이 현재 지배하고 있는 땅이라해서 그 역사가 모두 중국의 역사가 아니다. 
중국의 역사는 공자가 저술한 ‘춘추’에서 일본은 ‘일본서기’가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자체역사관이 성립한다. 

일본은 또 다른 한국이다. 일본은 가야와 백제의 분국이었다. 태양족인 가야계가 이즈모와 규슈를 개척하고 백제계 오진천황이 이를 타도해 현재의 천황가를 만들어 냈다. 

일본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고천원이 바로 고령가야이다. 또 큐슈의 고대 천황가는 김수로왕 10왕자 중 7왕자가 세운 것이다. 최초로 일본 열도를 지배한 태양숭배족인 가야세력을 몰아내고 곰 숭배족인 백제계가 지배하게 되는 과정이 일본 고대사이다.

역사왜곡의 시원  
 공자는 사상가이자 역사학자였다. 중원대륙의 고대역사를 요, 순임금과 주나라를 중심으로 기술한 ‘서전’과 ‘춘추’를 펴냈다. 
주나라를 건국한 문왕, 무왕 그리고 그를 보좌한 주공 단을 주조삼성이라 하여 모든 중국인의 표상으로 삼는다.

이어서 한무제 때 등장하는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함으로서 중화역사관을 체계화하고 동양역사의 정통으로 자리메김한다. 그는 공자가 시원으로 삼은 주 이전시대 인물인 황제 헌원 까지 지나족의 조상으로 기술했다. 

서경이 제시한 정치이데올로기는 중국왕조의 통치이념으로 안착되고 황하강 하남성을 중심으로 여타 주변 민족에 대해서는 비하와 왜곡하는 풍조로 자리잡는다. 이들은 지나족은 높이고 동북방민족들은 낮추어 부르는 역사책으로 이어진다. 

역사기록의 3대원칙은 다음과 같다.
- 위한휘치(爲漢諱恥-한을 위하여 치욕은 감춘다)
- 존화양이(尊華攘夷-화족은 높이고 변방 오랑캐를 낮춘다.)
- 상내약외(詳內略外-지나족 내부의 일은 상세히 기록하고 외부역사는 간단히 기술한다)

이러한 역사관을 당연시하고 비판없이 수용함으로서 그들은 대중화국이 되었고 우리는 사대중화역사관을 스스로 각인시켜 왔다.

한편 왜는 백제와 부모국 또는 형제국과 다름없는 1국2체제이었다.
백제 멸망은 원한과 보복의 심정으로 일본서기를 통하여 대대로 전승되었고 일본의 역사정신으로 자리메김한다. 
증오심에 사로잡힌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한국역사는 부정과 말살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백제 패망 후 1300년만에 이루어진 한일합방은 이들의 삐뚫어진 역사정신을 실현하는 호기가 되었다.
1910년 1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우리의 고대 역사서적을 압수 수거해 불살라 버리거나 비밀리에 가져가 버렸다. 그러고는 대대적인 역사왜곡을 시작한다.  

1921년부터 16년 2개월간 조선사 편찬을 주도하다 죽은 이마니시류는 고조선 역사를 신화로 만들어 버린다. 이완용 우봉 이씨 집안조카인 이병도와 친일 사학자들로 하여금 조작된 사대주의 민족분열 식민근성 타율적인 민족성을 부각하는 역사로 둔갑시키고 한사군을 한반도내로 끌어들여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의  반도사관으로 된 37권으로 구성해 1938년 완간케 한다. 
해방 72년이 지나도록 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 것은 고사하고 학파를 이룬 역사학자들은 정부주도의 새로운 역사 편찬 자체를 봉쇄하며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조상을 오랑캐라 부르는 역사책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족 중심의 중화사관으로 바라보는 우리 역사는 변방사에 지나지 않고 일제가 조작한 우리 역사는 머리가 잘려나간 반쪽자리 기형적인 역사다.

더구나 해방과 더불어 불어닥친 서양사상은 민족정신 자체를 말살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역사책에 한족들이 우리 동방족을 비하하기 위해 지어낸 한자 호칭이 그대로 잔존하고 있음에 통탄하지 않을수 없다.

유럽에서는 Hun족이라 하고 친손족이란 뜻을 흉노(匈奴-즉 시끄러운 새끼들 - 하기야 경상도 사투리를 듣다보면 시끄럽기는 하다) 로 표기하고 있다.
숙신의 후예들을 말갈(靺鞨-즉 버선발과 가죽신을 신고다니는 놈들)선비(鮮卑- 숙신의 종놈), 여진(女眞 - 싸움도 못하는 계집같은 겁쟁이) 그리고 벌레같이 우둔하다는 의미의 치우(蚩尤-원래는 어리석은 지나인을 다스린 治愚 )천황도 그중에 하나다. 

역사전쟁은 치열한데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미 흥산문명은 말할 것도 없고 고조선 고구려 발해사를 자신들의 변방사로 만들어 버렸다. 
지난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은 트럼프에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변방사였다고 대놓고 주입했다. 어쩌면 통일 이후에 평양을 포함한 상당 부분은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된 일부 영역이라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일본 또한 독도의 영유권 주장은 물론 임나일본부설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극우파들의 혐한사상은 도를 지난지 오래다. 

끝맺으면서
얼과 혼은 바른 역사정신에서 나온다. 자학적인 중화사관과 반도식민사관으로는 그들의 공격을 이겨낼 길이 없다.

정사라고 배운 그 상식의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긍지와 자부심을 주었던가? 900여 차례 외침만 받고도 면면히 이어온 은근과 끈기의 백의 민족- 이런 것 말고 동북공정을 임나일본부설을 깨부술 수 있는 역사와 역사정신을 회복하지 않으면 우리에겐 미래는 없다

끝맺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민족은 항상 외침에 시달렸고 분열과 반목만을 거듭하다 망국으로 치닫게 됨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익히 보아왔다. 종북과 극우

수구꼴통이라 서로 싸우고 있는 동안 우린 역사속국으로 전락해 갈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린 우리의 뿌리를 바로 찾아 세우는 역사의 독립군이 되자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