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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뜨지도 지지도 않는다

유화웅 칼럼
태양은 절대로 지지도 않지만, 뜨지도 않는다.
새해가 되면 모두가 가벼운 흥분으로 들떠있다.

12월 31일을 마감하고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서울 보신각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초저녁부터 모여들고 종을 한 번씩 칠 때마다 환호성을 지른다.

33번의 타종이 끝나면 모두들 새해가 시작되었다고 기뻐한다. 각 교회나 성당에서는 송구영신(送舊迎新)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동쪽으로 동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간다.

특히 서울에서 직선으로 가서 해안과 맞닿는 곳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여 그 곳 이름을 정동진(正東津)이라 하여 명소가 됐다.

새해를 맞이하여 남다른 각오를 하고, 새해를 설계하려는 많은 군중들의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매일 뜨는 해인데도 우리는 1월1일에 뜨는 해에 큰 의미를 부여하여 심기일전의 각오와 새로운 다짐과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출발하려는 의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태양은 뜨는 일도 없을뿐더러 지는 일도 없다.

지구의 자전으로 태양이 뜨고 지는 것처럼 보여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태양은 뜨고 지는 것으로 규정지어 버리는 사람의 가치기준 설정이 어찌보면 위험하기까지 하다.

지오다르노 부르노(Giodarno Bruno : 1548~1600)는 갈릴레이와 달리 종교재판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들여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 않아 당시 교황청의 분노를 사서 7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1600년 2월 로마의 한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당시의 그릇된 진리 때문에 선각자들이 희생되는 모습을 역사에서 본다.
죽음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탁월한 선각자들과 절대 가치를 사수하는 신념의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지 않고 왜곡시키는 경우를 많이 본다.
심지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허구를 만들어 내어 여론화 시키고 그것이 ‘아니면 말고’하는 식으로 말에 책임을 다하지 않는 지도자들을 본다.

현하지변(懸河地辯)으로 국민을 오도하고 현혹하는 일도 있다.
언젠가는 밝혀지고, 탄로 날 말과 행동을 거리낌 없이 세상에 던지며 사는 지도자들이 있다.

이젠 대중(大衆)이 우중(愚衆)이 아니다. 대중을 미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역사는 세상에 대해 침묵하지도 않고 눈을 감고 있지도 않다.
역사의 눈은 항상 부릅뜨고 있다.
태양은 항상 제자리에 있고 지구가 돌면서 밤과 낮을 만들 듯 인간 스스로 참과 거짓을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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