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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 무술년에 다시 생각하는 ‘개’의 의미

유화웅 칼럼
생활의 양식이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굶주림의 생활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됐다.

학교의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을 못 싸오는 학생들이 교실 밖 양지쪽에서 점심시간 끝나기를 기다리기도 했고 또 분식 장려, 혼식장려가 국가적 과제로 도시락을 먹기 전에 담임교사에게 확인을 받던 것이 엊그제 같다.

이제 우리 국민들이 먹는 것이 넘쳐흘러 어떻게 하면 적게 먹거나 안 먹으며, 사는가가 관심거리가 됐다.

그리고 삶의 방식도 사람과 더불어 살던 인간관계 중심에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관계를 찾아 삶의 질을 개척하고 있다.

그 가운데 그 동안 우리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노동력과 식생활의 편익을 제공했던 동물들이 그 가치가 달라져 가고 있다.

예전에는 육축(六畜)이라 하여 소, 말, 돼지, 양, 개, 닭을 가축(家畜)으로 집에서 길렀다.
이 가축들은 사람들의 삶에 큰 보탬을 주었고 지금도 여전히 가축으로의 사랑을 받고, 나아가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자본 생성의 도구로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가축 가운데 특히 개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가축이다. 그래서 개에 대한 전설이나 일화도 많다.

개는 그 역할이 집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사냥, 시각장애인들의 안내견, 군(軍)의 경비견, 마약 탐지견으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민속(民俗)에서도 잡귀(雜鬼)나 요귀(妖鬼), 병도깨비등이 재앙을 가져오는 것을 물리치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사람이 가까이 길렀고, 집안의 재난 뿐 아니라, 도적이 오지 못하도록 집안 경계를 도맡기도 했다.

특히 농가(農家)에서는 누런개(黃狗)를 많이 길렀는데 이는 노란색이 풍년을 가져오고 자손 번창을 가져온다고 했으며, 사람들의 몸보신을 위해서도 길렀음을 알 수 있다.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8월령에도 ‘며느리 말미 받아 근친 갈제 개 잡아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라고 노래하고 있다.
며느리가 시집와서 시댁 농사일 다 마치고 휴가내서 친정집에 인사드리러 갈 때 개(狗)를 잡아 가져가 인사하고 친정식구들 대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견마지로(犬馬之勞)’라 하여, 충성스런 신하를 개와 말에 견줄 정도로 개는 충성스럽고 의롭기까지 해서 아름다운 얘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개들이 가축의 영역을 뛰어 넘었다. 개의 종류도 많을 뿐 아니라 그 역할도 다양해 졌다.

전에는 개는 주인이 있어 기르는 개념인데 언제부터인지 애완(愛玩)의 대상이 되었다. 
마당에 있던 개가 집안으로, 방안으로 들어왔다. 

방안에서 한 식구가 되었다. 밥도 때 맞춰 개먹이 사료가 있는가 싶더니, 고급화되어 캔(Can) 음식을 먹이고 자는 곳도 사람과 한 잠자리에서 자고, 차에 동승하고, 미용도 하고, 질병 예방과 치료를 전문병원에서 하고, 개에 대한 용품도 고급화하고, 개의 이름도 멋지게 지어주고, 또 휴가 때 동행하지 않으면 개전용 아파트에서 관리하게 하기도 한다. 

또 개에 대한 각종 경진대회도 있어 개 자랑을 하고 방송에서는 중계 내지 방영을 하기도 한다. 개의 시장도 커졌다.
이제는 애완견이 아니고 반려자(동물)라고 한다. 

개가 반려자가 되었다. 심지어 사람에게도 붙이기 어려운 공(公)이란 말을 개한테 붙여 견공(犬公)이라고 한다. 사람의 고독도 달래주고, 위로도 해주고, 어디나 동행하고, 개를 개라고 부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전에는 사람을 얕잡아 욕할 때 ‘개 같은 놈’이라 했는데 이제 ‘개’는 예전의 개가 아니게 되었다. 그야말로 ‘개 팔자’가 부러울 정도가 되었다.
누가 만들어 낸 말인지는 몰라도 개와 사람이 동등하게 느껴지는 ‘반려’라는 말은 말의 뜻을 따지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측은해지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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