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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부자로 살아가기

평생현역탐방-고려대의 어머니 유정식당‘최필금 대표’ 35년간 하숙집 운영, 판 검사 수백 명 거쳐가 고대 장학금 2억5천만원 - 필금장학회 설립
고려대 인근에서 35년간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장학회를 설립한 유정식당 최필금 대표.
 

“학창시절 저희 집이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를 중퇴했어요. 그때 다짐했어요. 내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돈이 없어 공부를 하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살겠노라고 말이죠.

 

고려대학교 어머니로 통하는 최필금 대표(65)는 억양이 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밥 더 줄까!~ 국 더 줄까!~ 뭐가 부족 하노.!~ 식당 안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다정한 엄마처럼 반찬 한 가지라도 더 주고 싶은 세심한 마음이 그 의 눈빛과 부지런한 행동으로 잘 표현되고 있었다.

 

35년 하숙집 외길 인생을 걸어온 그녀를 고려대학교 옆 길 유정식당에서 만났다. 손님들이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80여 평의 식당 안 또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각 언론기관에서 보도된 그녀 관련 기사와 고려대학교 총장과 악수하는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밀양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11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난 최 대표는 부산 데레사여고 야간과정 조차도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끝내 졸업을 할 수 없었다. 스물세 살, 푸른 꿈을 안고 평생 모은 200만원을 손에 넣고 상경했지만 그 마저도 사업하는 언니를 나몰라라 하지 못해 빌려주고 만다.

 

결국 수중에 5천원 뿐인 여자가 전 재산이 40만원인 남자와 약혼만 한 채 시민아파트 한 칸 셋방, 비키니 옷장과 전기밥솥 하나뿐인 가정을 이루었다.

 

그 후 가락시장에서 국수장사, 용산 시장에 밤새 라면과 국수를 끓였다. 일당 5000원과 남편이 뜨거운 모래사막에서 노동의 댓가로 받는 35만원을 꼬박 꼬박 저축한 돈이 1200만원이 되었다.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을 위해 밥을 해주고 돌보는 일이 그녀도 먹고살고 남도 돕는 길이라고 생각됐다. 늘 배고팠고 공부를 맘껏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있던 그녀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던 고연전을 떠올리며 고대 쪽으로 마음이 쏠렸다. 내 사랑 고려대학교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밥 퍼주는 즐거움

고대 후문에 6칸짜리 반지하를 빌렸다. 법대생 10명을 데리고 하숙집을 시작했다. 밥은 굶지 않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한 일이었지만 학생들에게 따뜻한 밥에 반찬을 만들어 푸짐하게 퍼주는 즐거움에 신명이 났다. 어느 새 음식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학생들이 50명이나 됐다.

 

정이 있는 하숙집 고시 명당

유정(有情)하숙집을 다녀간 학생은 2000 명이 넘어 일일이 헤아릴 수 없지만 10년 넘게 있으면서 기억에 남는 학생들도 많다.

 

바지까지 사주며 밥해 준 덕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판사가 됐다며 고마워한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유정하숙집에서 공부하며 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되니 학생들 사이에선 ‘고시명당’이라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필금 장학회

식당 손님으로 왔던 종암중학교 교장에게 점심 도시락을 못싸오는 아이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어릴 적 굶기를 밥 먹 듯했던 생각에 주저 없이 선뜻 돕겠다는 말을 꺼냈다.

 

그 약속 이후 종암중학교와 숭례초등학교 소년소녀가장 20명에게 해마다 400여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고대 한문학과 김언종 교수가 ‘필금장학회’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고려대 장학금 기부

다시 찾은 내 이름 KBS 아침마당출연

최 대표는 늘 자신을 ‘고려대학에 빚진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2010년 고려대학교에서는 우선 박양숙 여사와과 남편 故 운초 정영호 박사의 호를 따서 운초 우선교육관을 지었다. 교육관 명칭을 기부자의 이름으로 한 것이다.

 

최 대표는 고려대에 기부하기 위해 매달 100만원을 모아 1억원을 만들어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고려대학교에서는 운초우선교육관 308호에 ‘최필금 강의실’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현판식도 했다.

 

“미래의 지도자들이 내 강의실에서 공부하고 꿈을 키운다! 그간의 삶의 애환은 사라지고 세상은 온통 푸르고 푸른 희망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 일로 인해 2010 11 30 KBS방송국 ‘아침마당’에 초대 손님으로 출연했다. 세상에 널리 알릴 만큼 거창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방송 출연으로 졸지에 유명인사가 된 것이다. 조선일보와 경찰청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제50회 청룡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tvN '리틀히어로'라는 프로그램에서 30년간 운영해온 하숙집 노하우와 봉사활동 등이 방영되었다.

 

멈출 수 없는 꿈

유정하숙집 40주년이 되는 날 지금까지 기부한 고려대 발전기금에 25천만 원을 더해 5억 원을 채우려는 것이 최 대표의 앞으로의 목표다.

 

최 대표는 “언제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뛰어가고, 내 손자가 내 강의실에서 공부할 날을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삶을 살아가다 난관을 만났을 때 쉬었다 갈지언정 포기하지 말라’

힘들 때 마다 식당에 붙어 있는 빛바랜 문구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 문구 때문에 그녀는 아직도 건강한 몸으로 끊임없이 일하는 영원한 현역. 더 가치 있는 앞날을 향한 꿈이 있기에 그 열정은 결코 식을 수 없다.

 

최근엔 고려대학교 평생대학원의 ‘액티브시니어’ 과정에 등록해 은퇴 후에도 열심히 사는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고, 미래의 삶을 위해 공부할 기회도 있었다.

 

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태어나 치열하게 살아왔고 결국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세상에 남기고 갈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웃과 함께 더불어 섬기고 나누며 살고자 했던 그 마음만은 영원히 남아서 소외된 작은 이웃들에게 햇살처럼 고르게 비추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침을 맞는다. 그리고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밥을 짓는다.

진정한 부자는 움켜쥐는 자가 아니라 나누는 사람이라 하지 않던가.

 

  • 글쓴날 : [2018-03-26 14:15: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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