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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적(阮籍)이 살아있다면

유화웅 칼럼
중국 위(魏)나라 때 완적(阮籍210~263)이란 이가 있었다. 죽림칠현(竹林七賢)중의 한사람이다.

위나라가 진(秦)나라로 바뀌면서 난세(亂世)속에 몸과 마음을 더럽힐 수 없다면서 죽림 곧 자연으로 돌아가 은거하며 노장사상(老莊思想)에 깊이 빠져 산 인물이다.

그는 술과 기이한 행적에 관한 많은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중 청안(靑眼: 검은 눈동자)과 백안(白眼: 흰 눈동자)얘기는 유명하다.
권력과 밀착된 것을 혐오했고 꼿꼿한 정신으로 고독하고 청빈하게 산 위인이다.

어느 날 그는 모친상을 당하게 됐다. 그는 상주로서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나타내기보다 문상객의 사람 됨됨이를 보고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는 기행(奇行)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한다.

문상객이 의례적, 형식적으로 문상할 때는 백안(白眼)즉, 흰 눈동자로 흘겨보고, 정성스럽게 예의를 취하는 이에게는 청안(靑眼) 곧, 정상적인 눈으로 대했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백안시(白眼視)’이다.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본다’는 뜻이다.

6?25 동란으로 모든 질서가 흐트러져 있었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던 우리나라였다.
국토는 황폐했고 자원도 없었고 기간산업과 생산성 있는 기업도 없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가난이었다. 입에 풀칠할 정도의 식량도 없었다. 선진국 특히, 미국에서 보내오는 구호물자에 우리 생명줄을 이어가던 세월이었다.

온 국민이 손톱이 자랄 틈이 없이 땅 파서 농사짓고, 공장에서 밤낮없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일했다. 그 결과, 짧은 기간 동안에 세계인이 놀랄 정도로 국부(國富)를 창출했다.
명실공이 잘 사는 나라가 됐다.

그뿐 아니라 지식 면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올리고 있다.
문맹(文盲)이란 단어가 사라졌다.
국민의 문맹률이 제로 포인트가 됐다.

국민들의 손에는 휴대폰이 없는 이가 없다. 자동차도 이제는 신발의 개념이 됐다.
집집마다 가전제품이 없는 것이 없을 정도가 됐다.

관광도 국내 명승지만이라도 다녀보았으면 하던 바람에서 이제는 세계 방방곡곡 우리나라 사람의 발길이 안 닿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됐다.

국제화(國際化)의 지수는 가늠할 수 없지만 단순 외교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민간 분야를 비롯하여 학술, 예능, 체육 등 많은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많은 인재들이 자기 성취와 국익 창출의 영역을 떠나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이바지 하는 세계인으로 많아졌다.

반면에 밝은 곳이 있으면 그늘진 곳도 있어서 고도성장을 하다 보니 성장통을 겪게 됐다. 지식 강국과 경제 대국에 걸맞은 도덕과 윤리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부패지수(CPI)에서 2010년 우리나라는 183개국 가운데 연속 3년간 43위라고 한다. 잘사는 나라의 모임인 OECD가입 34개국 중에 27위라고 한다.

‘부패’라고 하면 보통은 기득권 계층이 떠오르게 되는데 그 가운데도 권력의 중심부에서 청렴성의 모범이 되어야 할 사람들 중에 부정, 비리로 법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는 모습이 줄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한심한 생각과 더불어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정의 사회 구현’ ‘공정한 사회’ ‘청렴한 세상’하면서 국민을 채찍 하던 그들이 오히려 국민들에게 지탄 받고 욕먹고 있는 것을 보며 지금 완적(阮籍)이 살았다면 어떤 눈으로 볼까.

어디 권력층 뿐이겠는가. ‘백안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완적(阮籍)이 청안(靑眼)으로 보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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