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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저런 나무야!

두레박-반윤희
 

스무하루 만에 집에 돌아왔다. 
아들며느리와 함께 살아 온 세월이 이십 이년이 되었다. 내 젊은 시절의 꿈들도 이제 하나 씩 퇴색되어 가는 황혼이 되어 버렸다.

시체(時體)말로 아직도 며느리와 같이 사느냐고, 어떻게 그렇게 살아 내느냐고 하면서 며느리를 정말 잘 얻었나 보다고들 한다. 재작년에 아들내외에게 내 나이 칠십이 되면 안방을 내어 줄 터이니, 너희들 마음에 맞게 잘 고쳐서 살도록 하라고 하였다. 
어느 사이 자식들도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으니, 그러고 싶을 나이가 되었다 싶어서 그리 결정을 해 두었다.

봄이 되기가 무섭게 며느리는 마음이 들떠서, 온갖 구상으로 들떠 있는 기분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구닥다리물건들을 다 버리겠다고, 어머니물건도 정리하라고 은근히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음은 그리 정하였으나 마음속에 갈등(葛藤)이 수 없이 일어났다 스러지기를 반복하였다. 

수필가로 시인으로 화가로 이십여 년 작품 활동을 해 온 잔재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내 서재와 화실을 비워야 한다. 그것은 정말 큰 문제이다.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읊은 저 당대의 시인 두보는 59세에 세상을 하직하였다. 내 남편도 67세에 가족들 모두를 두고 떠나갔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여기고, 새롭게 인생 이모작(二毛作)의 꿈을 만들어 가기로 마음을 먹고, 과감하게 모든 것을 정리(整理)로 들어갔다. 
일 톤 트럭을 불러서 앞으로 사는 동안 필요한 것들을 최소한으로 만들고, 끌어안고 있던 남편 것도 내 것도 책이며, 옷이며, 화구들도 자잘한 소품들 여행지에서 사 온 것들 등등. 다 정리(整理)를 했다. 어찌 일생 살아 온 흔적들을 다 버리는 마음이 그리 좋을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마음비우는 몸살도 앓아야 하고, 대신에 자식들이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그 마음을 가꾸어 나가야 하는 인내도 필요하고, 또 다른 아픔도 겪으면서도, 함께 즐거움도 나눌 수 있는 행복감도 느끼는 것이 삶이란 것이지 않는가 싶다.

집을 리모델링하는 동안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며느리에게 모든 것을 맡겼으니 제 맘대로 아들과 의논해서 하게 하려고 궁금증을 잠재우며 참은 것이다. 말이 내 명의(名義)의 집이지 이제는 한그루의 나무이다.

돌아와 보니, 완전히 딴 집에 온 것 같다. 이게 호텔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말 잘 고쳐 놓았다. 이제부터 아들 내외의 새 생활이 시작되었다.
가을에 나갔다가 겨울에 들어 온 느낌이다. 다 정리하고 들어앉으니 훈훈하고 쓸쓸하고 기쁘고 미쁘고 만감(萬感)이 교차되지만 곧 익숙해지리라 마음을 고쳐 본다.

백봉산이 앞에 펼쳐 져 있고, 뒤쪽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천마산이 마을을 감싸 안고 있는 천혜의 고장 마을을 가로질러 흘러내리는 호만천의 아름다운 풍광을 따라 물길과 함께 걸어 보는 이 아름다운 고장을 무척 사랑하게 되었다.

강의를 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잘 생긴 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의안대군사당 담장 옆에 의연하고, 당당하고, 고고하게, 그리고 품위 있게 서 있는 나무가 가슴으로 안긴다.
붉지도 푸르지도 누렇지도 않은 연주홍색에 가까운 곤룡포 같은 의젓한 나무가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 그래, 나무야! 
나도 저런 한그루의 나무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강의(講義)장으로 가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반 윤 희 
 ? 1947년 경북 안동 출생
? 1998년 한맥문학 신인상 등단
? 2009년 시조사 출판 100주년 기념 작품공모전 최우수상
? 한국 문인협회회원
? 현 중랑 작가회 부회장
? 한국 불교 문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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