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며 수필가이자 서양화가인 반윤희 씨는 지난해 5월 18일부터 5월 22일까지 3박5일 일정으로 여고동창 29명과 ‘바람이 쉬어가는 곳, 라오스’로 여행을 다녀왔다. 라오스여행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2017년 5월 19일 금요일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탓 루앙’ 45m 높이의 웅장한 기념물로 위대한 탑이라는 라오스의 대표적인 상징물을 보며 탑으로 올라가는 친구들은 올라가고 대부분 체력을 아껴야 한다며, 밑에 의자에 앉아서 담소를 하면서 기다렸다.
‘삐뚜사이’ 는 프랑스로 부터 독립을 하면서 새워졌다고 하는데, 파리의 개선문을 본 따 만들어졌다고 한다. 승리의 탑이라는 뜻이란다.
라오스 양식이라고 하는데 파리개선문 보다 멋지게 세워진 주위가 공원이다 분수가 뿜어져 있고 주위가 아름답다.
비엔티앤은 라오스의 수도로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이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물과 사찰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황금사원이란 곳엘 갔다.
부처님이 열반 하실 때 모습인 와불 불상이 엄청나게 크다. 사원의 건축양식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담이 다 작은 탑으로 죽 이어졌다. 그 담처럼 이어진 탑 속에 라오스사람들의 유골이 담겨져 있다. 와불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다른 곳의 사찰에도 들렸다. 사찰이 여기저기 모여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사찰과는 많이 다르다. 무척 화려하고 정교한 모습이다. 여기저기 꽃들도 많이 장식해 놓고, 수풀도 많이 우거져 있다. 보리수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높고 푸른 잎들이 내 손바닥 보다 훨씬 넓고 엄청난 크기로 서서, 그늘 또한 대단히 넓게 자리 잡고 있는 옆에, 난전처럼 여러 가지 불상의 물품들을 팔고 있다.
갈 길이 멀다고 서두르는 가이드에게 저기도 가보자고 했다. 에머랄드 사원이라고 했다. 여기 저기 몇 군대 사찰을 더 들려서 사진을 찍고서야 차에 올랐다.
다시 버스에 올라서 시내를 지나서 한참을 달려서 내린 곳은 ‘탕원유적지’라고 하는 남능강 주변의 풍경을 유유히 흐르면서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강가에 내렸다.
삐걱거리는 다리를 지나서 즐비하게 있는 다 차려진 준비된 식당에 들어갔다. 다 앉으니까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 이게 뭐야’ 했더니 선상식당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강을 따라서 움직이는 배들이 둥둥 떠 있다.
앞에 설치된 화면에는 우리나라 가요가 울러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입구에서 손을 씻는데 모두가 다 한국사람 일색이었다. 한참을 강을 따라 가면서 식사도 하고 흥을 돋우어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야단이 났다.
지금이 우기라서 비가 많이 오는데 이상하게 날씨가 좋다면서 가이드가 여행객이 복이 많다며 너스레를 떤다. 햇볕은 강하게 내려쬐이는데 습도가 높아서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도로는 그런대로 포장이 다 되어 있으나 지나가는 주변이 전혀 개발이 되어 있지 않아서 자연 그대로 인 환경이 어린 시절의 시골 풍경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만은 편안한 느낌이다.
이 나라는 아직 신호등 같은 교통체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어찌나 ‘빵빵’ 경적을 누르는지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쉴 틈 없이 강행을 하는지라, 졸다가 보다가 보면 동물들도 지나가고 오토바이도 지나가고 운전자가 알아서 빵빵거리며 지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울창한 숲과 띄엄띄엄 보이는 주택들과 마을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한가하게 늘어져서 모여 있는 모습들이 마치 우리나라 60년대 모습을 연상케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조리신발을 신거나 맨발에 웃통은 벗고 있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눈에 푸른 물이 들 정도로 숲이 울창하다. 땅의 색깔이 우리나라 남도 땅의 붉은 흙 색깔과 같아 보인다. 찹쌀농사가 주류라고 하는데, 온통 풀로 무성한 곳에 소들이 모여서 풀을 뜯는 모습, 동네를 질러서 닭들이 도로에도 왔다갔다 돌아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왜 논에 모가 심어지지 않았는지, 어디에도 무덤이 보이지 않는지 궁금한 게 참 많다. 가이드에게 물어 보았더니, 이곳에는 7월에 모를 심어서 9월에 수확을 하며, 그 전에는 그냥 소들이 풀을 뜯고, 배설물을 보면 그것이 거름이 된다고 한다. 완전 자연 친환경적이다. 불교국가라 다 화장을 해서 절 탑에 유골을 보관하는 장례문화라 무덤이 없다고 한다.
전쟁으로 인해서 중요한 보물들과 유적들은 다 파괴되었다고 한다. 한참을 달려서 불상공원이라는 곳엘 들렀다. 주변의 수풀 숲이 울창하고 울창하다. 아름드리나무와 하늘을 가리는 숲의 기운이 시원하고 좋다. 잔디가 어찌나 융단 같은지 잔디 잎이 우리나라 부추 잎처럼 넙적하다.
라오스국화(플루메리아, 참파 꽃)라고 하는 나무에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서 향내를 풍기고 있기에 사진에 담았다. 프랑스에 점령당했던 당시 프랑스 학자가 꽃향기가 좋아서 향수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꽃이 향수를 만드는 원료가 되어서 수출을 하고, 국화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한참을 달려서 우리나라 강원도 같은 산골에 내렸다. 소금마을이라고 한다. 바다가 없는 라오스에서 유전처럼 소금물을 퍼 올려서 불, 햇빛을 이용해서 소금을 만드는 마을이다.
내가 어릴 때 강원도 탄광촌에 가 보았던 그 마을의 모습과 흡사했다. 판자로 죽 이어진 마을의 모습과 어린아이들이 남루하게 보이는 모습들을 하고 관광객 주변을 졸졸 따라 다니는 모습들이 안쓰러웠다. 가이드가 절대로 돈을 주면 안 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얼른 차에 올라가서 가방에서 초콜릿과 사탕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하나 씩 나누어 주었다. 사탕 하나에도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어찌나 맑고 예쁘던지 아직까지 눈에 어른거린다.
2017년 5월 20일 토요일
밤새 비가 쏟아지더니 아침엔 말끔히 개어서 하늘이 푸르고 청명하며 햇빛이 찬란하게 비추인다.
이곳의 지형은 대형버스가 다닐 수 없고 봉고 차나 ‘툭툭’이라는 것을 이용한다고 한다. ‘툭툭’은 우리나라 기아, 현대트럭을 개조한 양쪽에 길게 나무의자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한참을 달려서 내린 곳은 숲 속의 작은 강 같은 곳이다. 설명문은 그럴싸하나, 전혀 아닌 것 같다.
마치 우리나라 산골 경상도 어디쯤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이유는 가족 단위와 젊은 쌍쌍들이 나무에 올라가서 강으로 뛰어 내려서 웃고 떠들고 하는 것이 목청껏 울러 퍼지는 메아리가 짙은 경상도 언어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모두 정자에 올라가서 무더기로 모여 앉아서 얘기꽃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다. 물에 들어가는 친구들은 물론 없다. 나는 한 바퀴 돌아서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산골의 웅덩이 같은 곳을 관광지라고 와서 텀벙거리는 모습들이, 마치 60년대 산골할머니 집에 가서 사촌들과 산으로 들로 싸돌아다니며 뛰놀고, 또 외가 집 수박밭에 가서 외삼촌이 수박 한 덩이씩 안겨 주면 고랑 물에 담가 놓고, 나무에 올라가서 물로 뛰어 내리면서 깔깔 거렸던 어린 날의 추억이 확 밀려 왔다. 왜 가이드가 이곳에 오래 머물게 하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이제 종유석으로 만들어진 천연동굴로 코끼리 모양의 자연종유석 상을 보러 간다고 한다. 가는 도중 몬도가네시장이라는 곳으로 데려갔다.
가이드가 밀 전병 같은 것을 사 주었다. 이곳의 전통음식으로 선물을 한다고 하나, 기름에 튀긴 것이어서 입에 맞지 않았다. 지저분하고 질척거리는 흙바닥이며, 파리까지 우글거려서 위생상태가 정말 엉망인 것처럼 보였다.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시골 신작로 길을 바람을 가르며 먼지를 펄펄 날리며 모자를 꼭 잡고서 달리는데, 마주 앉은 친구의 모자가 날아가서 차를 세우고 모자를 찾아서 다시 달렸다. 한참을 달려서 ‘탐쌍’이라고 불리는 코끼리 종유석 동굴에 도착했다. 종류석이 마치 코끼리 모양이었다.
동굴에는 부처님을 모셔 놓았다. 우리들은 동굴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멀어져 가는 산과 들을 보면서 먼지를 펄펄 날리며 달리는 이 순간이 정말 낭만적이다. 얼마를 달려, 동굴 속 체험을 하기 위해‘탐남‘(튜빙)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동굴까지는 걸어서 4~50분 가량 가야한다. 시골마을을 지나가는데 보니까, 나무집으로 지어진 위에는 사람이 살고, 아래는 돼지가 살고, 닭과 오리들은 온 동네를 왔다갔다.
자유분방하게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마을을 벗어나 오지체험처럼 논두렁 밭두렁 같은 길을 일렬로 가다가, 닦아진 숲길의 산 속으로 가는 길은 완전 붉은 흙길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참을 가니까 동굴 앞에 도착했다.
다음 호에 계속